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 “반도체 최소 10년 더 성장…오버슈팅 뒤 또 다른 파도 온다”

심화영 2026. 8. 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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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조선팰리스 서울 강남 호텔에서 열린 ‘디지털인사이트포럼’에서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카이스트(KAIST) 장영재 석좌교수와의 대담 및 청중 질의응답을 통해 AI 시대 반도체 산업의 미래와 국내 기업·정부 시스템의 근본적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심화영기자

[대한경제=심화영 기자]“우리는 지금 신생대에 와 있는데, 여전히 중생대가 좋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한국 반도체 ‘초격차’ 신화를 이끈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 AI 시대를 맞아 한국 산업과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를 촉구했다. 반도체는 AI를 비롯한 새로운 수요처 확대로 최소 10년간 성장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한국이 과거의 ‘패스트 팔로워’ 성공 방식과 정답을 맞히는 교육·평가 시스템에 머물러서는 새로운 산업을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권 전 회장은 13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디지털 인사이트 포럼에서 장영재 KAIST 석좌교수와 대담을 갖고 “앞으로 최소 10년간 반도체는 성장산업”이라며 “현재의 프라이싱(가격)은 비정상적”이라고 진단했다. AI를 시작으로 피지컬AI와 휴머노이드 등 새로운 수요처가 계속 등장하면서 반도체 시장의 파이는 커지겠지만, 현재와 같은 높은 가격과 이익률이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권 전 회장은 특히 한국 산업이 선진국의 기술과 사업모델을 빠르게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워’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카피해서 더 싸고 좋게 만드는 것은 잘한다. 개선은 하지만 혁신은 없다”며 “그 성공 모델이 계속 유효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기업의 인사·평가제도뿐 아니라 교육과 노동시장, 정부의 제도까지 바꿔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 실패할 가능성을 감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고서는 AI 시대의 ‘퍼스트 무버’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 최소 10년 더 성장…오버슈팅 후 파도 타는 선순환 올 것”

권 전 회장은 “메모리 시장의 이 같은 대호황은 저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라며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최소 10년 간 반도체는 확실한 성장 산업이라는 점”이라고 단언했다.과거 1980년대 메모리 시장이 PC 단일 응용처에 80~90% 의존하며 극심한 변동성을 겪었다면, 이후 스마트폰과 서버를 거쳐 최근 응용처가 다변화되면서 산업의 체질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재의 높은 프라이싱(가격)과 이익률에 대해서는 시장의 ‘오버슈트(과열)’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권 전 회장은 “수요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현재의 비정상적 가격은 향후 조정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연의 무게중심은 반도체 업황 전망을 넘어 ‘체질 개선’에 실렸다. 권 전 회장은 한국 산업 전반이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는 데만 익숙해 정작 세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대만 TSMC는 ‘파운드리’라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지만, 우리는 남의 것을 더 좋고 싸게 만드는 개량에만 매몰되어 있다”며 “지난 10년 간 우리 산업계에서 진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있느냐”고 반문했다.이 같은 정체의 원인으로 권 전 회장은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제도와 교육’을 지적했다.정답을 맞히는 ‘모범생’만 양성하는 교육 제도로 인해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해 있다고 했다.

기업 내 조직 운영에선리더가 목적을 공유하지 않은 채 지시와 이행 확인에 그치는 ‘의미 없는 회의’가 조직의 유연성을 가로막고 있다고 봤다.권 전 회장은 “내가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이 된 이후 회의를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집에 가서 매일 회의를 하지 않아도 잘 돌아가듯, 회사에서도 지시 위주의 회의를 줄이는 것이 좋다”고 했다.

DS·DX 사업 구조에도 변화 주문…“5~10년 미래 보고 인사·평가제도 판 짜야”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겪고 있는 성과급 논란과 사업 구조 비효율에 대한 뼈아픈 제언도 이어졌다.

세트(DX) 사업과 부품(DS) 사업의 통합 운영에 대한 질의에 그는 “B2C인 세트와 B2B인 부품 사업은 속성이 완전히 다르다”며 “남매가 어릴 때는 한방을 써도 되지만 성인이 되면 각자의 방을 써야 하듯, 기업 규모가 커지면 조직과 의사결정 구조를 과감히 분리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영업이익에 연동된 성과급 갈등에 대해서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평가 제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여파”라고 꼬집었다. 권 전 회장은 “단순히 보상의 호불호를 따질 것이 아니라, 기업이 5년, 10년 뒤 지향할 장기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춰 평가·보상 시스템을 완전히 재설계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끝으로 노동 및 R&D 환경 개혁과 관련해서도 주 52시간제 유연화와 유연한 해고 및 저성과자 관리 권한의 필요성을 제언했다.저성과자에 대한 인사 유연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처럼 대규모 구조조정을 허용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일정 수준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권 전 회장은 “개혁할 힘이 있는 사람들은 개혁할 이유가 없고, 개혁을 외치는 이들은 힘이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이병철 창업회장의 ‘사업보국’, 이건희 선대회장의 ‘초일류’를 언급하며 “돈을 많이 벌자는 것만으로는 목표가 될 수 없다”며 목적과 목표를 구성원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조직 실패의 핵심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심화영 기자 doro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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