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손대니 쑥 뽑혀"…폭염 못 버틴 해남 6년근 인삼

박지현 기자 2026. 8. 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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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맘때면 잎이 빽빽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천희구 씨(70)가 검은 차광막 아래에서 누렇게 말라붙은 6년근 인삼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6년 동안 물과 미생물, 영양제를 챙기며 키워 이제 수확만 남겨뒀지만, 인삼은 납품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고온을 견디지 못했다.

천 씨는 "4월 말 인삼 싹이 올라올 때는 냉해가 걱정이고, 여름에는 폭염이 문제"라며 "농사를 지을수록 해마다 날씨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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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도 넘는 고온에 잎 누렇게 말라…예상 수확량 15% 감소
농민 "봄엔 아들 데려와 자랑했는데…속상해서 밭에도 못 가"
13일 전남광주 해남군의 한 인삼밭에서 천희구 씨(70)가 폭염으로 말라붙은 6년근 인삼 잎을 살펴보고 있다. 2026.8.13 ⓒ 뉴스1 박지현 기자

(해남=뉴스1) 박지현 기자

"원래 이맘때면 잎이 빽빽하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13일 오후 전남광주 해남군 산이면의 한 인삼밭. 천희구 씨(70)가 검은 차광막 아래에서 누렇게 말라붙은 6년근 인삼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밭에서도 인삼의 상태는 확연히 갈렸다. 지대가 높은 곳에는 푸른 잎을 유지한 인삼이 남아 있었지만, 밭 가운데 낮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누렇게 변하거나 갈색으로 타들어 간 포기가 눈에 띄게 늘었다.

천 씨가 말라버린 인삼 한 포기를 잡고 당기자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땅에서 쑥 뽑혀 나왔다. 땅속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할 뿌리는 이미 힘을 잃은 상태였다.

천 씨는 "이렇게 쉽게 뽑힌다는 것은 뿌리가 썩었다는 뜻"이라며 "밭 가운데는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피해가 더 심하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자라는 6년근 인삼은 오는 9월 28일 납품을 앞두고 있다. 6년 동안 물과 미생물, 영양제를 챙기며 키워 이제 수확만 남겨뒀지만, 인삼은 납품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고온을 견디지 못했다.

천 씨는 "장마가 끝나고 날이 뜨거워지면 잎이 데쳐진 것처럼 노랗게 변한다"며 "30도가 넘는 날이 계속되니까 잎이 갑자기 확 가버렸다"고 말했다.

피해는 2~3년근보다 오랜 기간 키운 5~6년근에서 두드러졌다. 장마 뒤 찾아온 폭염을 버텨낼 힘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게 천 씨의 설명이다.

그는 "장마가 끝난 뒤 폭염이 찾아왔을 때 버티느냐, 버티지 못하느냐가 문제"라며 "지금 상태라면 올해 수확량이 당초 예상보다 15% 정도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봄까지만 해도 상황은 전혀 달랐다. 잎이 무성하게 돋고 생육 상태도 좋아 풍작에 대한 기대가 컸다.

천 씨는 "처음부터 인삼이 좋지 않았다면 모르겠는데 봄에는 정말 잘 자랐다"며 "아들들에게 자랑하려고 밭까지 데려왔을 정도였다"고 돌이켰다.

그만큼 수확을 앞둔 인삼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고역이다. 6년 동안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폭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어서다.

천 씨는 "인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한다"며 "요즘은 밭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천희구 씨(70)가 13일 전남광주 해남군에 위치한 자신의 인삼밭에서 폭염으로 말라붙은 6년근 인삼 잎을 살펴보고 있다. ⓒ 뉴스1 박지현 기자

농민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많지 않다. 차광 시설의 높이를 조절하고 물과 영양제를 공급하고 있지만,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이 이어지면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폭염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인근 밭의 흙도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인삼뿐 아니라 다른 작물의 생육도 예년만 못했다.

천 씨는 "예년에는 씨를 심고 물을 두세 차례 주면 대부분 싹이 올라왔다"며 "올해는 일주일 동안 물을 줬는데도 팥 발아율이 50% 정도에 그쳤다"고 말했다.

그가 체감하는 기후변화는 여름에만 머물지 않는다. 봄에는 냉해를 걱정하고 여름에는 폭염과 가뭄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천 씨는 "4월 말 인삼 싹이 올라올 때는 냉해가 걱정이고, 여름에는 폭염이 문제"라며 "농사를 지을수록 해마다 날씨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했다.

결국 그는 지난해부터 새 인삼을 심지 않고 있다. 현재 재배 중인 인삼을 관리해 수확한 뒤에는 재배보다 홍삼 가공의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천 씨는 "우리 지역에서 인삼 농사를 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미 심어놓은 것은 어떻게든 관리해야 하니 달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고온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지역 농업 관련 기관에서 지원받은 영양제를 사용했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고온을 견디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영양제를 여러 차례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농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농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물을 주고 영양제를 공급하는 정도인데, 고온이 계속되면 그것만으로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기준 전남광주 지역의 농작물 피해 면적은 누적 132.4㏊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폭염 피해가 87.4㏊, 가뭄 피해가 45㏊다. 폭염으로 피해를 본 인삼 재배지는 10㏊에 달했다.

war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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