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 팥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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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로 들어설수록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보글보글 팥 삶는 냄새다. 주인 이름이 '일호'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일호가 아닌 윤수연 대표가 운영하는 디저트 가게다. "말 그대로 1호라는 의미가 있어요. '팥' 하면 떠오르는 집이 되고 싶었거든요. 일호단팥. 네 글자라 입에도 잘 붙잖아요." 일호단팥의 특징은 팥으로 만든 디저트만 판다는 것. 대표 메뉴는 단연 팥빙수다. 1년 내내 판매하는 팥빙수는 상호명처럼 내용물이 충실하다. 고봉밥처럼 수북이 담은 얼음, 그 위에는 오직 팥과 떡만 올라간다. 새하얀 얼음은 우유 얼음처럼 보이지만 일반 얼음이다. "그냥 얼음이 고유의 팥 맛을 살리기 좋다고 생각했어요. 우유로 얼음을 만들면 팥 맛을 살짝 가리거든요. 대신 얼음에 직접 연유 소스를 뿌려 풍미를 살려요." 팥을 삶을 때도 본연의 맛에 집중하는 건 마찬가지다. 씹는 식감을 위해 압력솥에서 짧게 삶는데, 그러면 껍질과 팥알이 살아 있는 팥이 탄생한다. 팥빙수에 사용하는 팥은 일반 적두. 국내 여러 산지에서 질 좋은 팥을 모아 출하하는 선별장에서 받는다. 오방떡과 팥 아이스크림도 일호단팥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메뉴다. 윤수연 대표는 새로운 팥빵을 고민하다 일본의 오방떡을 떠올렸다. 오방떡은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는 기존 레시피에 찹쌀을 더했다. 구운 즉시 먹으면 붕어빵처럼 바삭하고, 살짝 식혀 먹으면 찰보리빵처럼 쫀득쫀득하다. '비비빅'을 좋아해서 만들었다는 팥 아이스크림은 점심시간 직장인에게 인기가 좋다. 팥 비율이 약 40%로 한 입 먹으면 묵직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을 채운다. 2년 전 문을 연 일호단팥은 어느새 대흥동 주민의 아지트가 됐다. "단골분들이 정말 많아요. 지인이 동네에 놀러 왔을 때 '이 가게는 가봐야 해'라고 하면서 같이 오실 때 가장 뿌듯하죠. 언제나 맛있는 팥빙수와 팥 디저트가 있는 대흥동의 자랑이 되고 싶어요."


팥쉐는 올해 초 문을 연 신생 가게다. 이곳 주인인 박정수는 그저 팥이 좋아서 팥빙수 집 사장이 됐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가게 이름의 정체는 '팥셰이크'. 사실 팥셰이크를 판매하려다 예상보다 큰 블렌더의 소음에 메뉴를 바꾸게 됐다고 한다. 이는 무엇보다 찾아오는 이가 편안하길 바라는 지향점과 달랐다고. 무작정 뛰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팥쉐는 수련하는 자세로 가게를 준비했다. 창업 전부터 틈틈이 팥빙수를 먹으러 다녔고, 유튜브를 보며 팥 삶기를 독학했다. 혼자서 1kg이 넘는 팥을 삶고 맛보는 날이 이어졌다. "실제로 만들어보니 설탕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적게 넣으니까 맛이 나지 않아서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팥은 맛과 환경을 보장하는 국내 농가에서 들여온다. "돌과 벌레, 상한 팥을 하나하나 골라낸 뒤 매일 삶아요. 한 번 더 손이 가는 일이지만 믿을 만한 산지라서 기꺼이 선택했어요." 우유와 연유, 물을 배합해 만든 얼음은 깔끔한 맛을 낸다. 우유와 연유만 넣으면 느끼해지기 때문에 물을 더해 균형을 맞춘 것이 비결이다. 한 입 먹으면 담백한 팥과 얼음 사이로 건대추가 재밌는 식감도 더한다. 팥쉐 빙수는 1인 기준으로, 함께할 차를 내어주는 게 특징이다. 커피보다 차를 좋아하는 박정수 대표가 국내외 빙수 집을 찾아다니며 영감을 얻었다. "교토에서 직접 우린 차를 빙수와 함께 내어줬는데, 차가운 빙수를 먹다가 따뜻한 차를 마시면 훨씬 편안하게 즐길 수 있더라고요." 팥쉐는 직접 고른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다회와 독서 모임, 작은 전시까지 열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했다. 호텔에서 6년간 서비스업에 몸담은 박정수 대표는 손님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팥빙수와 차를 파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고 문화를 나누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남동 한편을 6년째 지키는 작은 가게가 있다. 스스로 '팥티시에'라고 칭하는 송민지 대표의 팥알로다. 팥알로의 시작은 그가 일본 유학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과를 배우러 떠난 곳에서 그는 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다. "팥을 먹는 나라가 많지 않아요. 한국이나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권이죠. 일본 국민은 팥을 너무 사랑하는 거예요. 우리나라 백화점 지하에는 케이크나 빵이 많지만, 일본은 반이 제과고 반이 화과자 가게였어요." 그 경험을 계기로 팥의 매력을 남녀노소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팥티시에의 가게답게 이곳은 팥빙수도 남다르다. 먼저 팥은 전북 고창과 충남 천안, 두 곳에서 재배한 것을 쓴다. 그리고 곱게 간 얼음에 직접 만든 연유 소스를 뿌린다. 특별한 점은 얼음 속에 숨겨진 오미자 젤리다. 팥빙수를 먹다가 텁텁해질 즈음 등장하는 젤리는 입안을 상쾌하게 한다. 팥 위에는 로스팅한 백태를 뿌려 식감을 더했고, 사블레 쿠키 사이에 팥 캐러멜을 넣은 '팥알로 샌드'로 장식한다. "한 그릇 안에서 고소한 맛과 산뜻한 맛, 부드러운 풍미를 모두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그래서인지 빙수를 먹고 나면 고급스러운 디저트를 즐긴 기분이 든다. 월별로 팥에 제철 재료를 더해 만드는 피낭시에도 별미다. "팥빙수 주문하고 팥을 빼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럴 때 아쉽죠. 피낭시에나 샌드 쿠키, 모나카처럼 맛있는 디저트로 팥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송민지 대표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한국식 팥 디저트를 알리는 게 꿈이다. "외국인은 팥에 대한 거부감이 없더라고요. 한국 디저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니 팥빙수를 비롯해 맛있는 K-디저트를 선보이고 싶어요." 팥알과 프랑스어 인사말 알로(All.)를 합쳐 만든 이름처럼, 친숙한 팥을 보다 가볍고 새로운 방식으로 건네겠다는 팥알로를 기대한다.


"팥이 아주 달지 않아서 좋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특별하거나 낯선 재료가 아니라서 누구나 편하게 즐기더라고요." '팥빙수 맛집'으로 알려졌지만 모키 문래의 본체는 카페다. 커피를 중심으로 시작한 공간이지만 시그너처 디저트는 팥빙수. 한국적이고 아늑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강태명 대표의 생각은 팥빙수로 이어졌다. 티백 대신 찻잎을 직접 우려내는 방식도 같은 맥락이다. 커피와 차, 디저트를 함께 즐기며 천천히 머무는 공간을 지향한다. 빙수는 따뜻한 봄에 판매를 시작해 여름 끝자락에 마무리한다. 직접 삶은 국내산 팥은 담백하고 씹는 맛이 좋다. 종종 팥만 추가 요청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빙수의 또 다른 비결은 얼음에 있다. 우유와 생크림, 설탕, 물을 배합해 만드는데, 생크림을 넣어 한층 부드럽고 진한 풍미를 살렸다. "생크림을 넣으면 얼음 결이 다소 거칠어져요. 하지만 모양보다 맛을 택했어요. 여러 번의 테스트 끝에 지금의 만족스러운 조합을 찾았습니다." 완성한 팥빙수 위에는 아몬드 크로칸트를 올리고, 토핑으로 피칸 강정과 인절미, 연유도 따로 낸다. 그대로 먹거나 토핑을 더하면서 기호에 맞게 조합하면 된다. 커피를 오래 다뤄온 경험도 모키 문래의 강점이다. 팥빙수와 함께 향긋한 커피도 즐길 수 있다.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며, 고소한 '007' 블렌드와 산뜻한 산미의 '베이비 브레스'를 기본으로 선보인다. 필터 커피는 에티오피아와 케냐, 과테말라 등 다양한 산지의 싱글 오리진을 주기적으로 바꿔 소개한다. 베이커리 역시 직접 만든다. 본점은 커피와 차, 빙수를 중심으로 운영하고, 오목교점은 다양한 베이커리와 샌드위치를 앞세운 카페로 차별화했다. 여름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그릇의 팥빙수처럼, 모키 문래는 오래도록 편안하게 기억되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

Editor 김지수
Photographer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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