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왜 죽기 전 '일본 제국주의 스승' 인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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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이듬해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맞기 전 안중근 의사는 무수한 유묵을 남겼다. 그 가운데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일본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가 '통속국권론'에 적은 "백 권의 만국공법이 수문의 대포에 못 미친다"는 문장과 의미가 같다.
후쿠자와가 국제법 질서에 대한 불신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했다면, 안 의사는 같은 문장으로 제국주의 현실 속 국제법의 무력함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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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지난해 11월 일본서 환수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이듬해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죽음을 맞기 전 안중근 의사는 무수한 유묵을 남겼다. 그 가운데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일본 근대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가 '통속국권론'에 적은 "백 권의 만국공법이 수문의 대포에 못 미친다"는 문장과 의미가 같다. 후쿠자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 개화파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곧 현실주의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고 일본 제국주의의 스승으로서 조선과 청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까지 나아간 인물이기도 하다.
서구 문명에서 들어온 국제법을 붙든 채 대한제국을 세우고 서구식 개혁 정책을 펼치려 했던 조선 관리와 지식인들 또한 을사조약을 전후해 일본의 침략 의도가 본격화하자 좌절했다.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안 의사도 이런 인물 중 하나였다. 이토를 저격한 후 스스로를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칭하며 전쟁 행위를 수행한 것이라 주장했지만, 단순 살인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후쿠자와가 국제법 질서에 대한 불신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했다면, 안 의사는 같은 문장으로 제국주의 현실 속 국제법의 무력함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표현했다. 장지훈 경기대 교수는 "당시 '만국공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표현은 한중일을 막론하고 동아시아에 널리 퍼져 있는 인식이었기에 안 의사가 이를 받아 여덟 글자로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13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일본에서 환수한 이 유묵을 공개했다. 안 의사가 당시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1941)에게 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리하라는 안 의사의 수감 기간 인간적 배려를 보였던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해 5월 국외재단이 현지 협력망을 통해 작품의 존재를 확인했고, 국가유산청의 협조와 복권기금 지원을 받아 조사와 협상을 거쳐 같은 해 11월 국내에 반입했다.
전문가들은 이 유묵에서 해서(정자 글씨체)와 초서(흘려 쓴 글씨체)의 중간 형태로 쓰면서 특히 '만(萬)'이란 한자를 두드러지게 흘려 쓰는 특징이 안 의사의 독자적 글씨체를 드러낸다고 봤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유묵 30점에서 나타난 특징의 범주 내에 들어 있는 글씨로, 힘차지만 과하지 않은 균형미가 있다"고 말했다. 글씨 왼편에는 '경술(1910년) 3월 여순 옥중 대한국인 안중근이 씀'이라는 문구와 함께 도장을 대신한 손도장이 찍혀 있는데, 이 역시 다른 유묵들과 일치했다.

뒤편에 이 유묵을 보존하기 위해 표구(서화 뒤에 종이나 비단을 덧댐)한 인물이 수장 이력을 남겨 놓은 것도 이채롭다. '뇌협'을 자칭한 이 인물은 "적괴(일본 입장에서 항일 의병장을 일컫는 말·나중에 삭제됨)의 글씨라 소장할 가치는 없지만, 이토의 충성과 구리하라의 후의를 기념하고, 안중근의 마음을 가련하게 여겨 표구해 보존한다"고 적었다. 장 교수는 "뇌협이 누구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안 의사 유묵 중 수장 이력을 명확하게 남긴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광복절을 앞둔 뜻깊은 시점에 안중근 의사의 독립과 평화에 대한 열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유산을 국민께 공개하게 돼 의미가 크다"며 "선열의 광복을 위한 염원과 헌신을 되새기고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혜 국외재단 이사장은 "국제정세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던 안 의사의 통찰이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어 가치가 높다"며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발굴·환수해 그 가치를 국민과 함께 널리 공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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