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차별에 못받은 연필, 82년만에 ‘한 다스’ 채웠다

조승연 기자 2026. 8. 13.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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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본 나고야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그러나 일본인 담임교사는 "너는 조선인이라 다 줄 수 없다"며 연필을 한 자루만 꺼내 줬다.

연필이 조 씨에게 닿기까지 한국과 일본의 여러 사람이 손을 보탰다.

주나고야 한국총영사관이 조 씨가 다녔던 학교 등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소식을 접한 와타나베 마사에 씨(75)가 "내가 대신 연필을 보내고 싶다"고 나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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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비행기 날리기 1등 조무판씨… 일본인 담임 “넌 조선인이라 다 못줘”
상품인 연필 한 다스 아닌 한 자루만… 소식들은 日 전직교사, 11자루 보내
조씨 “소식 듣고 눈물… 응어리 풀려”
11일 일본인 퇴직 교사 와타나베 마사에 씨가 보낸 연필 11자루를 들어 보이는 조무판 씨.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일제강점기인 1944년, 일본 나고야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 교내 종이비행기 날리기 대회에서 참가 학생 50명 중 1등을 한 1학년생은 상품인 ‘잠자리 연필’ 한 다스(12자루)를 받을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일본인 담임교사는 “너는 조선인이라 다 줄 수 없다”며 연필을 한 자루만 꺼내 줬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소년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어머니는 “그냥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조무판 씨(88)가 여든을 넘기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런데 조 씨가 받지 못했던 나머지 연필 11자루가 긴 세월을 지나 최근 일본에서 날아왔다. 당시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본인 퇴직 교사가 뒤늦게 그의 사연을 접하고 선물로 보낸 것이다. 연필이 조 씨에게 닿기까지 한국과 일본의 여러 사람이 손을 보탰다.

1938년 나고야에서 태어난 조 씨는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부모와 한국으로 건너왔다. 17세에 학도병으로 입대한 뒤에는 25년간 육군에서 정보통신 장교 등으로 복무하고 대위로 전역했다.

긴 세월 마음 한구석에 맺혔던 응어리가 밖으로 나온 것은 지난해였다. 조 씨의 회고록을 정리하던 육군정보통신전우회(통우회) 안철주 감사가 “그 응어리를 풀어주고 싶다”며 주한 일본대사관 등에 도움을 청한 것. 하지만 조 씨가 다닌 학교는 이미 사라졌고 이름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뜻밖의 답은 나고야에서 돌아왔다. 주나고야 한국총영사관이 조 씨가 다녔던 학교 등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소식을 접한 와타나베 마사에 씨(75)가 “내가 대신 연필을 보내고 싶다”고 나선 것. 영사관에 따르면 와타나베 씨는 3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17년 전 퇴직했지만 조 씨가 다닌 학교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와타나베 씨의 소포는 영사관을 거쳐 6일 안 씨에게 도착했다. 상자 안에는 조 씨가 82년 전 받지 못한 연필 11자루와 연필깎이, 필통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최근 한국어를 배운다는 와타나베 씨가 직접 쓴 두 장짜리 한글 편지도 함께였다. 그는 “80년간 마음 깊은 곳에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니 저도 마음이 아파졌어요”라고 적었다. 영사관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와타나베 씨는 건강 문제 때문에 사양했다.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통우회 사무실에서 마침내 선물을 받아 든 조 씨는 한동안 연필을 바라봤다. 그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눈물이 계속 났다”며 “오랜 응어리가 모두 다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씨는 “조만간 와타나베 씨를 초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조승연 기자 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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