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사이렌 울리면 5초 안에 방공호로”… 3년째 ‘죽음의 문턱’ 넘는 이스라엘 마을

김소희 2026. 8. 13. 04:3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주둔지를 마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북부 최전선 도시 키르얏시모나.

하지만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생한 뒤 헤즈볼라는 하마스 지원을 내세워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2024년 11월 휴전에 합의한 지 1년 4개월 만에 이를 깨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인근에 공습을 가하고 레바논 남부 지역을 초토화했다.

6월 19일 미국의 중재로 레바논과 임시 휴전에 들어선 후 이스라엘 북부에 울리는 공습 경보 사이렌은 잦아들었지만, 전쟁이 남긴 상흔은 여전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 전쟁의 늪, 한계 달한 이스라엘
레바논 헤즈볼라 인접… 위태로운 일상
보복 공습·대피 반복에 트라우마 심화
이스라엘군 레바논 남부 주둔에 악순환
협상도 난항… 안보 불안에 떠는 주민들
6일 이스라엘 키르얏시모나의 주택 2층이 헤즈볼라의 로켓 폭격을 받아 파괴된 모습. 4월 1일 발생한 폭격으로 주민 1명이 부상을 당했다. 김소희 특파원

레바논 내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 주둔지를 마주하고 있는 이스라엘 북부 최전선 도시 키르얏시모나. 산과 계곡이 있어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관광객 사이 '숨겨진 보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6일(현지시간) 찾은 마을에는 무거운 적막만 흘렀다. 국경 너머에서 날아온 로켓과 미사일은 한때 평화로웠던 마을을 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언제 교전이 재개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여전히 도시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곳은 약 2만5,000명이 살아가는 활기찬 도시였다. 하지만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생한 뒤 헤즈볼라는 하마스 지원을 내세워 이스라엘 북부를 공격했다. 양측의 교전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주민들은 대피와 귀환을 되풀이해야 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1만8,000명의 주민이 돌아왔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의 실상은 달랐다. 현지 주민들은 "실제 남아 있는 주민은 기껏해야 1,000~2,000명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스라엘-헤즈볼라 교전에 피해

지난 2월 미국·이란 전쟁 개전 이후 헤즈볼라가 참전하면서 키르얏시모나에는 또다시 사이렌이 울렸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2024년 11월 휴전에 합의한 지 1년 4개월 만에 이를 깨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이스라엘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인근에 공습을 가하고 레바논 남부 지역을 초토화했다. 상호 보복 공습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으면서 민가와 상업 시설 등이 직접적인 타격 피해를 보았다.

한국일보는 미국과 함께 대이란 전쟁을 개시하고 이후에도 레바논에 폭격을 가하며 이란 및 대리세력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이달 초 찾았다. 6월 19일 미국의 중재로 레바논과 임시 휴전에 들어선 후 이스라엘 북부에 울리는 공습 경보 사이렌은 잦아들었지만, 전쟁이 남긴 상흔은 여전했다. 주민들에게 일상이란 '5~10초'라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사이렌이 울린 뒤 로켓이 떨어지기까지 주어지는 대피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6일 이스라엘 키르얏시모나의 한 도로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 지역은 헤즈볼라가 주둔하고 있는 레바논과 산을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다. 김소희 특파원

4월 1일 유월절(구약성서 출애굽기의 이집트 탈출에서 유래한 유대인 주요 명절) 전야, 아브라함(58)은 일가친척 20명과 집에 모여 명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돌연 공습 경보가 울렸다. 가족들은 비명을 지르며 집 방공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철문을 닫자마자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강렬한 폭발 진동이 전해졌다. 로켓이 바로 앞집에 떨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은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골목 전체의 지붕 기와가 흔들리며 쏟아져 내렸습니다. 우리 집도 2층 블라인드가 통째로 뜯겨 날아갔어요."

이스라엘 키르얏시모나의 한 주택 내부에 위치한 방공호. 평소엔 방으로 쓰인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외부의 충격을 보호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외부에서 방공호 안으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이중 잠금장치를 덧댔다. 김소희 특파원

당시 로켓이 떨어진 맞은편 주택을 찾아가 보니 2층 전체가 파괴된 상태였다. 앙상하게 드러난 철골이 위태롭게 방치돼 있었고, 마당에는 부서진 의자와 지붕 파편들이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아브라함은 "폭격당한 집주인이 보수 공사를 하려 하자 주변 이웃들이 '어차피 한 달 뒤에 헤즈볼라가 또 (로켓을) 쏠 텐데 지금 고쳐서 뭐 하냐'고 말렸다"고 말했다. 언제 다시 폭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무력감과 냉소가 마을에 깔려 있었다.

4월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을 받은 주택 마당에 부서진 기와 조각이 나뒹굴고 있다. 김소희 특파원

키르얏시모나에서 네일숍을 운영하는 오르나(57)는 지난달 30일 새벽 3시쯤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매장 앞 공터에 로켓이 떨어졌다"는 전화였다. 서둘러 달려간 현장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새벽 시간이라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매장 내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창문은 산산조각 났고 바닥 타일부터 에어컨, 가구 등 모든 집기가 완파됐다. 한 달 넘게 지났지만, 상가 앞에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청소되지 않은 채 산산히 흩어져 있었다.

6일 이스라엘 키르얏시모나의 한 미용실이 로켓 공격 여파로 파괴됐다. 왼쪽은 당시 오르나가 촬영한 영상. 매장 안에는 당시 공격으로 부서진 의자가 그대로 있다. 김소희 특파원

2년간 피란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다시 문을 연 가게였지만, 삶의 터전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다. 정부의 보조금을 가까스로 지원받아 복구 작업을 시작했으나 가게를 고친다고 해서 손님이 찾아올지는 미지수다. "휴가철이라 스쳐지나가는 여행객이 조금 있을 뿐, 단골 손님들은 모두 피란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당장 매달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운 지경입니다." 오르나의 수첩에는 일하지 못한 날들을 표시한 검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공격과 대피가 반복되는 삶은 2023년 10월부터 3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지역에 남은 주민, 특히 방공호가 없는 오래된 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경보가 울릴 때마다 외부의 공용 방공호로 목숨 걸고 달려야 한다. 이스라엘 마티 일루즈(62) 목사는 임시로 세워진 키르얏시모나 교회 건물 밖 수백 개의 돌 무더기로 만들어진 방공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새벽에 자다가도 사이렌이 울리면 그냥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가는 겁니다. 사실상 매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기분입니다. 방공호 안에서 극심한 패닉에 빠져 비명을 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적응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건 사실 인간이 적응할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 아닙니다."

6일 이스라엘 키르얏시모나에서 만난 일루즈 목사가 자신의 사무실에 있는 파편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소희 특파원

일루즈 목사의 사무실 벽 한가운데에는 나무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액자 속을 채운 것은 2년 전 교회 바로 앞에 떨어진 미사일 파편이다. 당시 폭격으로 예배당이 무너지고 문에는 구멍이 뚫렸다. 경각심을 갖기 위해 남겨둔 것이다. "이런 금속 조각들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액자에 파편이 추가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안전 위해 이스라엘군 주둔 불가피?

8일 레바논 남부 자우타르 알가르비야 마을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파괴된 주택 입구에 주민들이 앉아 있다. 자우타르=AFP 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소탕을 이유로 레바논 남부에 '완충지대'를 구축해 잔류하고 있다. 교전 과정에서 이스라엘도 레바논 민간 지역을 포함한 접경 지대에 무자비한 공습을 해 왔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집계된 누적 사망자는 4,300명이 넘지만 이스라엘 사상자는 극소수다. 이달 5일엔 휴전 이후 처음으로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군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이스라엘은 '휴전 협정 위반'이라며 곧바로 보복 공습에 나섰다. 이스라엘군은 주민 대피령을 내리고 레바논 남부 만수리 마을과 마즈달 준 마을 등을 공습했다.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이지만, 북부 주민들 사이에선 자국 안보를 위해 이스라엘군의 주둔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강하다. 레바논 정부가 헤즈볼라를 통제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군이 '경찰' 역할을 자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불안이 임계점에 달하면서 전통적으로 우파 집권 여당인 리쿠드당의 '텃밭'이었던 북부 민심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일루즈 목사는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리쿠드당을 찍어왔지만, 이번엔 찍지 않겠다"며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평판과 국격을 크게 실추시켰다"고 비판했다. 반면 아브라함의 아내 일리나는 "그래도 비비(네타냐후의 애칭)밖에 선택지가 없다. 비비가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고 옹호했다.

6일 이스라엘 키르얏시모나에 설치된 방공호 앞으로 주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키르얏시모나=김소희 특파원

이스라엘은 다음 달 이탈리아 로마에서 레바논과 8차 협상을 앞두고 있다. 헤즈볼라의 무장해제와 함께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레바논군이 통제권을 넘겨받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의 직접 협상에 반대하면서 무기 반납을 거부하고 있고, 이스라엘 역시 레바논군이 시범 구역을 완전히 통제하기 전까지는 추가 철군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실제 이행까지는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을 꿈꾸면서도 "헤즈볼라와 영원한 평화는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그럼에도 남은 이들은 자신마저 이곳을 떠날 순 없다고 한다. "여기가 제 집입니다. 결국 이런 삶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요." 오르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스라엘 키르얏시모나에 위치한 방공호에 그림을 그려 긴장을 완화하는 예술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 @Why_p1 제공

키르얏시모나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방공호가 눈에 띈다. 북부 주민들에 대한 연대를 위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스라엘 예술가 유발 펠레그(28)는 "불안한 안보 상황을 상기시키는 무거운 풍경에 색채를 더해 일상 회복을 돕고 싶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주민들은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방공호 앞을 오가며 전운 속에서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키르얏시모나(이스라엘)= 김소희 특파원 kimsh@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