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다방에서 카페까지

매일신문 2026. 8. 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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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의 사랑방과 정자 문화가 '다방'으로 옮겨가는 동안, 이 나라는 일제강점기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오늘날에는 다방 대신 '카페'라는 표현이 표준이 된다.

이들은 음악다방, 커피숍 문화와도 거리가 멀었다.

대구다방문화의 산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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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커피믹스 원조가 대구 다방표 '달달커피'?
1970년대 동서식품 개발팀이 함량 분석 후 제품 출시설
오늘날에는 다방과 찻집 대신

양반들의 사랑방과 정자 문화가 '다방'으로 옮겨가는 동안, 이 나라는 일제강점기란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다방과 찻집은 닮은 듯 서로 달랐다. 어떤 데는 다방이라 했고 어떤 곳은 '찻집'이라 했다. 나훈아의 노래 '찻집의 고독'의 가사에는 다방, 제목에는 찻집을 사용했다.

원래 둘의 의미와 문화적 뉘앙스는 좀 다르다. 다방은 '차를 마시는 방'. 1960~80년대에는 커피를 주로 파는 곳으로 바뀐다. 음악감상·미팅·비즈니스·중매 장소로도 이용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방은 '오래된 커피숍'이란 이미지가 강해진다. 일부는 퇴폐업소와 연결되는 부정적인 인식도 심어준다. 찻집은 전통차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분위기가 조용하고 전통문화나 휴식을 중시한다. 오늘날에는 다방 대신 '카페'라는 표현이 표준이 된다. 요즘은 커피와 빵, 디저트, 음청료 등이 총망라된 '베이커리카페'로 통폐합된다. 심지어 레스토랑까지 브런치카페란 범주로 그 자장권으로 들어간다.

전국 다방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불리는 종로의 미도다방 전경.

◆대구다방의 종착역 미도다방
필자의 1980~81년은 음악다방과 음악감상실에 머문다. 그리고 그것과 연동해서 향촌동 판코리아, 중앙상가 지하 대보나이트와 무궁화캐빈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대구역부터 중앙파출소 화방골목 가는 길은 음악다방으로 도배됐다. 좀 높은 빌딩 지하나 스카이라운지는 나이트클럽에 점령됐다. 지금은 사라진 대구백화점의 '맥심나이트'는 당시 대구의 자랑이었던 '전국구나이트'였다.

주위를 돌아보니 그 많았던 다방이 종멸된 것 같다. 진골목의 '시나브로'와 향촌동 '청자'도 사라졌고, 겨우 진골목의 '미도다방, 경상감영공원 옆 '중앙다방', 그리고 향교 옆 향교다방 정도가 버티고 있다. 다행히 음악감상실인 '녹향'과 '하이마트'는 대구가 유네스코 선정 음악창작도시란 자존감을 입증해주고 있다.

미도다방은 언젠가부터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전국을 샅샅이 뒤져봐도 지난 세월의 다방 정서, 그리고 MZ세대와도 맞물려 돌아가는 데는 여기가 유일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대구근대화를 이끌었던 80~90대 토박이 단골까지 엄지척하는 곳이기도 하다.

미도는 '유풍'(儒風)을 소중하게 섬긴다. 그래서 '영남 유림의 여러 선비를 만날 수 있는 선비다방'으로도 소문났다.

이 공간의 상징이 된 정인숙 여사의 처세 때문이다. 항상 한복차림이다. 뜻깊은 날에는 단골 어르신을 모셔 식사대접을 하고 사회봉사도 한다. 필자도 지난 삼복 점심에 초대를 받아 여러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정 여사는 보학과 경전, 서예 공부도 한다. 당연히 '마담'이란 호칭은 너무나 경박하다면서 굳이 아호를 지어준 분이 계셨다. 퇴계 후손 한학자였고 대구향교에서 유교 경전을 강의한 소원(韶園) 이수락이었다. 덕분에 '혜정'(蕙晶)이란 아호를 갖게 된다.

그동안 신암동 무궁화다방, 동국다방, 27세 때 드디어 독립해서 북구 대현동 경대교 근처에서 백림다방을 연다. 시청 앞으로 와서 우정다방을 열었다. 우정다방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1982년 중앙파출소 옆 화방골목 안 미도화방 2층에서 미도다방을 열었다.

기품있는 처신 때문에 도운회(陶雲會·퇴계 선생 제자들의 후손 모임) 연례 행사에도 초청받는다. 예전에는 문중·유림 위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모두가 주인이다. 여기서는 있는 자랑, 배운 자랑, 가문 자랑, 아는 자랑, 관직 자랑 등은 금한다.

미도다방의 시그니처 메뉴인 약차와 쌍화차. 그리고 추억의 과자.

청궁, 당귀, 백작약, 감초 등 18가지가 들어가는 한약재를 갖고 약차와 쌍화차 옆에 항상 추억의 전병류가 붙어다닌다. 항상 나누고 퍼준다. 자기 부모 모시듯 어르신을 챙겨준다. 어떻게 보면 '지역문화재' 같은 공간이다.

대구 커피문화의 첫 단추격인 박청강 여사가 오픈한 풀하우스 전경.

◆커피믹스와 대구 다방커피
60년대는 '시골다방', 70~80년대는 '음악다방', 90년대부터는 '커피숍 시대'. 하지만 커피가 보편 음료가 된 것은 1970년부터. 물론 원두커피 스타일은 아니다.

동서식품이 일을 낸다. 1970년 국내 최초로 '맥스웰하우스'란 인스턴트커피로 커피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하지만 68년 동서와 함께 등장한 미주산업이 유통시킨 드럼통커피 'MJC'는 동서보다 더 포스가 강했다. 당시 각종 다방에선 다들 이 커피를 받아 사용했다. 미주는 '메이저급', 동서는 '마이너'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미주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82년 '맥심'까지 추가한 동서가 한국 커피시장의 대명사로 군림한다. 이 동서의 최대 상품이 바로 76년쯤 출시된 커피믹스이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기술개발팀이 대구 여러 다방의 '달달커피' 함량을 분석했고 그걸 토대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78년 커피자판기 1천100대가 전국 주요 공공장소에 설치됐는데 하루 평균 15만여 컵이 판매됐다는 기록이 있다. 78년 말 전국의 다방은 1만752곳에 달했다. 새로운 감각의 차세대 다방이 등장한다. 79년 서울 대학로 샘터사 건물에 전국 첫 체인커피격인 '난다랑'이 문을 연다. 87년 커피 수입자유화로 원두수입이 본격화된다. 88년 12월 서울 압구정파출소 앞에 문을 연 '자뎅'을 시작으로 마침내 국내에서도 원두커피 전문점 시대가 열리고 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진을 친다.

◆그시절 다방 줌인
커피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커피도 요즘 원두커피와 차원이 달랐다. 그냥 무늬만 커피였다. 상당수 전통차는 물론 우유, 사이다, 약차, 계란 노른자 띄운 쌍화차, 샌드위치까지 팔았다. 그리고 농염한 상술을 앞세운 마담, '레지'(Register의 일본어)의 환심을 사려고 큰맘 먹고 시켰던 '찐'(위스키 잔술)까지도 메뉴에 포함됐다.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 나오는 도라지 위스키와 새빨간 립스틱의 마담이 연출해내는 'B급 정취'라고나 할까.

이들은 음악다방, 커피숍 문화와도 거리가 멀었다. 당시 저렴한 비닐의자와 비로드천으로 만든 의자는 하나같이 무뚝뚝했고 디자인 감각도 빵점이었다. 각이 져 있었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등받이 부분에는 상호와 전화번호가 찍힌 흰색 덧천이 씌워져 있었다. 지금은 기겁하겠지만 그때 다방은 '흡연 강추 공간'이었다. 뽀얀 담배연기가 다방을 가득 집어삼켰다. 성냥과 재떨이는 항상 세트로 붙어다녔다. 10원짜리 동전만 집어넣으면 일일 운세를 볼 수 있는 운세통도 있었다.

◆사이펀커피의 추억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시내엔 나름 한 커피 한다는 커피숍 개념의 다방이 생겨난다. 지금과 비교하면 참 촌스러웠지만 당시로는 파격적인 데도 여럿 있었다. 대표적인 게 명작, 왕비, 전원, 보리수, 가전, 늘봄, 가배, 레떼, 예전, 아세아, 은좌, 미주, 반쥴 같은 곳이었다.

이 중 대구다방시대를 커피숍시대로 물꼬를 터준 사람은 단연 박청강 여사. 대구다방문화의 산증인이다. 속초 출신인 그녀는 중앙파출소 옆 화방골목 중간에 있는 '풀하우스'를 끝으로 이 세계에서 떠났다. 77년 '보리수', 그 다음은 '전원', 이어서 당시 대학생 등에게 가장 앞서가는 다방으로 인정받았던 '늘봄1과 2'까지 연이어 성공시켰다. 늘봄1은 동아백화점 건너편, 늘봄2는 대구백화점에서 대백 별관 쪽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있었다. 빼어난 인테리어는 여느 다방 사장의 시선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어놓았다. 특히 그녀의 고품격 목소리와 처세는 당시로선 이국적이었다. 서양식 매너로 무장했다. 다방에서 '쌍화차타령'을 못 하게 만들었다. 모던 카페 지킴이였다. 늘봄은 영신상회로부터 MJC 통커피를 받아 사용했다. 물론 요즘 같은 원두커피는 아니었다. 늘 '사이펀(Syphon)식'으로 커피를 추출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레게풍이 압도하는 화원읍

◆대구에 웬 레게카페!
정말 독특한 패션감각을 가진 사내가 있다. 홍대 조소과 출신으로 작가의 길을 버리고 대구로 내려와 30년째 버려진 물건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정크아티스트의 삶을 살고 있는 임종이다. 12년 전 그는 자신만의 카페를 오픈한다. 화원읍 남평문씨 세거지 근처 '작가와 커피'란 레트로 감성 공간이다. 그리고 전통 막걸리 재현에 올인한 끝에 달지 않는 '사문진막걸리'를 출시했다. 그리고 그만의 패션 의류를 접할 수 있는 패션숍도 겸행했다. 카페 디자이너 겸 연극무대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지난달 또 사고를 쳤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레게카페'를 오픈한 것. 여기는 뼛속까지 레게풍. 'NO WOMAN NO CRY'로 유명한 자메이카 출신의 세계적 뮤지션인 밥 말리 얼굴이 염직된 브로마이드 현수막을 가게 정면 벽에 붙여놓았다. 그리고 자메이카의 상징색인 빨강·노랑·초록으로 특화된 인테리어를 셀프시공했다. 천장에는 스위스에서 수입한 통나무 카누를 매달아놓았다. 메뉴도 레게풍이다. 레게아이스크림·레게라떼…. 바텐에서 주문받는 스태프도 레게 가발을 착용한다. 당연히 그도 문신도 새기고 레게 빵모자도 쓴다.

그는 이 가게를 단순한 영업장으로 보지 않고 카페로 작품전시를 한다고 믿는다.

바로 옆에 이전한 화원교도소와 화원성당이 있다. 교도소 후적지 개발 일환으로 청년문화복합센터가 들어설 모양인데 그는 이참에 주변을 '아트카페스트리트'로 변화시키고 싶어 갬성 강한 친구들과 연대 중이다. 대구 출신 레게디제이 이기훈, 레게보컬 송유식, 그리고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 레게타투 전문가 호현 등이 합류했다. 매주 토요일 여기서 '레게파티'를 열 모양이다.

일반 노래는 사절. 레게풍으로 편곡된 곡만 들려준다. 노을이 좋은 날 가게 옆에 쿠바에서나 어울릴 법한 91년산 한정판 휘가로 빨강 승용차가 오브제처럼 정차해있다. 레게 뮤직, 노을, 그리고 카페의 불빛과 승용차. 무슨 홍콩 르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아 한 컷을 찍어봤다. 화원읍 명천로 142.

wind30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