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던진 화두, 우리는 친일 후손에게 '연좌제'를 물을 수 없는가 [김지현의 게슈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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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게슈탈트'는 현상을 부분이 아닌 전체적 구조와 맥락으로 파악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친일 청산은 그 후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는 친일파 후손들에게 연좌제를 물을 수 없는가.'
우리가 하영의 가족에게서 봐야하는 것은 자유의 땅 위에 선 후손인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했지만,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는 사실 인식, 그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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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게슈탈트’는 현상을 부분이 아닌 전체적 구조와 맥락으로 파악하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단편적인 사실들의 나열을 넘어, 사건들 사이에 숨겨진 유기적 연결 고리를 추적하고 그 흐름 속에서 큰 그림을 읽어내는 데 초점을 두는 코너입니다. 기자의 개인적인 주관이 담긴 칼럼입니다.
수년 전 '부모 빚투' 의혹이 연예계를 휩쓴 적 있다. 많은 스타들이 자신도 몰랐던 부모의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가 됐다. 폭로의 대상이 된 이들은 대중의 사랑 덕에 부를 누리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비정한 사람이 됐다. 수 개월 간 몇 명의 연예인들이 재물로 바쳐지고 나서야 연좌제는 부당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언론도 공감한 것일까. 이제 '부모 빚투'와 관련된 제보는 거의 기사화 되지 않는다.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 33)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주목 받는 신예였던 하영의 미래는 현 분위기라면, 불투명하다. 배우 강동원과 이지아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지만 파장의 규모가 다르다. 안상호가 남긴 족적을 둘러싼 의혹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며, 4대 후손들에게 연좌제를 물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하영의 증조부를 친일파로 명백히 규정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모두 일리가 있는 주장들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친일 청산은 그 후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해결될 수 있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는 조선인이 아니다'라고 공공연히 밝힌 안상호가 친일파가 아니라면, 대체 친일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이 역시 일리가 있다.
이 모든 설왕설래를 듣고 있자니 혼란스럽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판단해야 하는 지 배운 적이 없다. 현재는 친일 작가로 분류된 '무정'의 이광수 작가를 한국 근대 문학의 아버지로 배운 세대가 아닌가. 조선의 근대화를 열었다는 각 계의 선구자, 개척자들의 업적을 암기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세대 말이다. 이들 중 일부에게 친일 의혹이 있다는 건 적당히 기억하면 될 뿐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도 진실을 찾는데 느슨했다.


그러나 하영을 바라보는 이 불편한 심정은 어쩔 수 없다. '4대째 의사를 배출한 의학 명문 집안'의 딸 하영의 삶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난한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삶이 교차돼 괴롭다. 이 현실에서 우리가 배우게 되는 건 무엇일까. 부끄럽지만, 무척 저열하고 천박한 현실 인식이다. '역시 기회주의의 삶을 택하는 것이 맞다'는 메시지가 부끄럽게 떠오른다.
진정 우리는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네가 배부른 이유는 내 선조들이 애국이 아닌 타협을 선택했기 때문이야'라고 가르쳐줘야 하는 것일까. 정답이 아니라면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친일파 후손들에게 연좌제를 물을 수 없는가.'
있다. 대중이 지금 하영에게 묻는 책임은 과거 빚투 스타들에게 지워진 연좌제와 차원이 다르다. 먼저 연좌제에 대한 정의부터 명백히 하는 것이 옳겠다. 연좌제는 타인의 범죄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이 신체적, 형사적 처벌을 받는 것이다.
대중이 하영의 가족에게 바라는 건 이러한 처벌이 아니다. 그러나 따져 물을 자격은 있다. 만약 내 선조의 친일 행위가 상당 부분 드러났고, 그로 인해 형성된 부가 내게 세습됐다면, 그 자산은 범죄의 산물이다. 사회가 뒤늦게라도 그 책임을 묻는다면 과연 나는 억울하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인가.
혹자들은 말한다. 하영의 집안 자랑을 대중이 괘씸해 하고 있다고, 일명 괘씸죄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일차원적인 해석이다. 사람들은 하영을 미워하는 게 아니다. 그에게 죄가 있다고 유죄 판결을 내린 것도 아니다. 하영을 일방적으로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면 부디 객관성을 찾길 바란다.
우리가 하영의 가족에게서 봐야하는 것은 자유의 땅 위에 선 후손인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했지만,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는 사실 인식, 그 하나 뿐이다. 이제 의무를 지고 차근히 풀어가면 된다. 하영과 그 가족에게 책임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비록 그의 죄는 아니지만, 짐을 안게 된 하영에게 한 인물을 소개해주고 싶다. 밴드 양반들의 보컬 전범선 얘기다.

어린시절부터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전 씨는 뒤늦게 자신의 5대 할아버지가 소설가 이인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인직은 신소설 '혈의 누'를 쓴 작가다. 이인직은 이완용의 일본어 통역가였다. 조선을 일본에 넘기겠다는 이완용의 말을 일본 관료들에게 통역한 이가 바로 이인직이다.
놀란 전 씨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친일파 후손이면 덕을 보는데 우리 집은 왜 이렇냐고.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이인직이 일본 여자에게 새장가를 가서 버려진 집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 씨는 "너무 나쁜놈인데 교과서에는 최초의 신소설을 쓴 분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명명백백하게 친일 행위를 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이후 전 씨는 공부에 집중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며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했다. 최근 그 성찰의 산물이 나왔다. 200년 근현대사를 정리한 책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를 발간했다.
하영에게 증조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다. 친일의 후손인 전 씨가 보여 준 행보들, '진정한 성찰'이 무엇인지 배웠으면 한다.
중요한 건 이 성찰은, 하영의 몫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친일의 잔재를 바라보는 우리 다음의 후손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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