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동꾼' 프레임에 갇힌 코끼리...파괴자 아니고 '정원사'

김고원 기자 2026. 8. 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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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이동하고 있는 아프리카코끼리. (사진 pixabay)/뉴스펭귄

코끼리를 '난동을 부린 침입자'로 묘사하는 언론 보도 행태가 인간과 코끼리 갈등의 근본 원인을 가리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극적인 묘사에만 집중하면 서식지 감소 등 실제 생태계의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취지다. 

매년 8월 12일은 세계 코끼리의 날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코끼리를 보호하자는 취지로 제정된 국제 기념일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외신 등에서는 코끼리가 인간을 '공격'하고 마을에 '침입'했다는 관점의 기사가 많이 보도된다. 

인도 팔라카드공과대학과 영국 버밍엄대 두바이캠퍼스 공동 연구진이 지난 5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22년 1월부터 2025년 9월까지 인도 주요 영자신문에 실린 코끼리 관련 기사 1968건 중 28.7%에서 공격·폭력을 강조하는 표현이 확인됐다. 

가장 많이 쓰인 표현은 '공격적인(aggressive)', '난동(rampage)', '짓밟다(trample)', '살인자(killer)' 등 공격·폭력을 나타내는 단어였다. 이어 파괴·피해, 공포·불안을 강조하는 표현이 뒤를 이었다. 인명피해가 없는 사건에서도 '침입·공포·파괴' 등 부정적 묘사가 쓰인 기사는 전체의 17.2%에 달했다.

"적대감 키우고 생태 문제 가릴 위험 있어"

연구진은 이런 보도 방식이 갈등의 책임을 코끼리 행동에만 돌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코끼리가 마을에 '침입'해 '난동'을 부렸다는 뉘앙스로 보도되면, 서식지 감소와 이동로 단절, 농경지·정착지 확대 등 갈등을 유발한 구조적 원인은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취지다. 이 같은 보도는 코끼리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고, 서식지 보전 대신 포획·격리·제거 정책에 힘을 실을 위험도 있다. 다만 연구진은, 보도가 실제 독자 인식이나 정책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동물보호단체 관계자 역시 대형 야생동물의 기본적인 위험성은 인정하면서도, 현상에 대한 분석 없이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채은 동물을위한행동 대표는 12일 과의 통화에서 "코끼리는 야생동물이고 몸집이 크기 때문에 사람에게 당연히 위험할 수 있다"면서도 "코끼리가 마을에 들어왔다면 왜 들어왔는지에 대한 분석도 함께 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동물은 공격성을 가지고 있지만 몰리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드러낼 수 있다"며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코끼리와 사람 모두 살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끼리가 '침입자' 된 이유? "서식지 64% 사라져"

코끼리는 농장과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가 아니라, 개발로 인해 인간과 생활권이 겹치게 된 동물에 가깝다.

2023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코끼리가 서식하기 적합한 공간은 1700년 이후 64% 이상 줄었다. 사라진 면적은 약 336만㎢에 이른다. 같은 기간 적합 서식지 한 덩어리의 평균 크기도 약 9만9000㎢에서 1만6000㎢로 83% 줄었다. 연구진은 남아시아에서는 식민지 시기 이후의 목재 채취와 토지 전환이, 동남아시아에서는 농업 확대가 서식지 감소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서식지가 끊기면서 코끼리와 사람은 같은 길로 내몰리고 있다. 먹이와 물을 찾아 넓은 지역을 이동하는 코끼리 이동로에 농장과 마을, 도로와 철도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코끼리는 결국 남은 숲과 물가를 오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생활권을 지나게 됐다. 이런 가운데 벼·옥수수·사탕수수 등 고열량 먹거리가 있는 농장에도 코끼리가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과정은 코끼리에게도 위험하다. 현재 남아 있는 야생 코끼리 3종은 모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상 멸종위기 범주에 속한다. 아시아코끼리와 아프리카사바나코끼리는 '위기(EN)', 아프리카숲코끼리는 '위급(CR)' 등급이다. 야생 아시아코끼리는 13개국에 약 4만8000~5만 마리가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부수면서 생태계 지키는 코끼리...발자국엔 개구리, 배설물엔 씨앗

코끼리는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큰 몸집으로 밟고 쓰러뜨린 자리는 새로운 생명이 깃드는 공간이 된다. 코끼리가 풀과 나무껍질을 먹고 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나무를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햇빛이 드는 빈터와 그늘, 쓰러진 나무 아래와 흙이 드러난 땅 등 다양한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010년 국제학술지 '아프리카생태학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탄자니아 북부 사바나 중 코끼리의 영향이 가장 큰 지역에서 양서류와 파충류 18종이 확인됐다. 코끼리 흔적이 적거나 코끼리 유입을 막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수치다.

코끼리 발자국이 개구리의 산란지가 되기도 한다. 2018년 국제학술지 '매멀리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얀마 흐타만티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 물이 고인 아시아코끼리 발자국에 개구리 알과 올챙이가 발견됐다. 당시 연구진은 물웅덩이가 부족한 건기에 큰 발자국이 산란지 역할을 하고, 길을 따라 이어진 발자국들이 떨어져 있던 개구리 집단을 연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코끼리의 배설물은 씨앗을 멀리 옮겨 숲의 생물다양성을 키우는 역할도 한다. 2009년 국제학술지 '바이오트로피카'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콩고 숲코끼리의 배설물 855개를 조사한 결과 최소 73종의 나무 씨앗이 검출됐다. 코끼리가 먹은 씨앗의 약 88%는 어미나무에서 1㎞ 이상, 14%는 10㎞ 이상 떨어진 곳까지 이동한 것으로 추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