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미식과 지역 이야기] ④진정성이라는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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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세 편에서 우리는 지역 미식의 경쟁력이 '그곳에서만'이라는 대체 불가능성에서 나오며 그것을 자원에서 목적지로 키우는 데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누구나 '진정성 있는 지역 음식'을 말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어렴풋하다.
음식의 진정성은 '이 조리법이 몇 백 년 전 원형 그대로냐'라는 박제된 질문만이 아니라 '여행자가 이 음식을 통해 그 지역의 삶과 문화를 진짜로 만났다고 느끼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정성을 지키는 마지막 주체는 다름 아닌 그 지역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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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는 무엇을 '진짜'라고 느끼는가
먼저 관광학이 진정성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지 짚어 보자. 이 논의의 출발점에 사회학자 딘 매캐널(Dean MacCannell)이 있다. 그는 1970년대에 '무대화된 진정성(staged authenticity)'이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여행지에는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며 놓은 '앞무대'와, 그 지역 사람들의 실제 삶이 있는 '뒷무대'가 있다는 것이다. 여행자는 늘 진짜, 즉 뒷무대를 갈망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진짜처럼 잘 꾸며진 앞무대인 경우가 많다는 통찰이다.
이후 학자들은 진정성이 하나가 아님을 밝혀냈다. 크게 보면 대상 자체가 진짜냐를 따지는 '객관적 진정성'과 그 경험을 통해 여행자가 진짜라고 느끼고 몰입하느냐를 보는 '실존적 진정성'이 있다. 이 구분이 지역 미식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음식의 진정성은 '이 조리법이 몇 백 년 전 원형 그대로냐'라는 박제된 질문만이 아니라 '여행자가 이 음식을 통해 그 지역의 삶과 문화를 진짜로 만났다고 느끼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진정성은 유물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만드는 이의 태도와 먹는 이의 경험이 만나는 자리에서 살아 움직인다.
'로컬'이라는 이름표의 함정
그런데 현실에서 이 진정성은 손쉽게 위조된다. 나는 이것을 '로컬워싱(local-washing)'이라 부른 바 있다. 실제로는 지역과 별 상관이 없으면서 '지역', '전통', '수제'라는 이름표만 앞세워 진짜인 척하는 마케팅이다.
관광지에서 이 현상은 특히 심하다. 메뉴판에 '지역 특산', '향토 음식'이라고 적혀 있어도 정작 그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 여행자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관광객은 어차피 한 번 스쳐 가는 뜨내기라는 생각에 지역색이라고는 없는 음식에 지역 이름만 붙여 비싸게 파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가짜가 진짜의 신뢰까지 갉아먹는다는 데 있다. 한 곳에서 '지역 음식'이라며 실망스러운 한 끼를 경험한 여행자는 그 지역의 음식 전체를 의심하게 된다. 정직하게 지역 재료로 애쓰는 가게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앞무대만 요란하고 뒷무대가 비어 있을 때, 여행자는 결국 그 텅 빈 곳을 알아챈다.
진정성을 무너뜨리는 진짜 위협 - 상업화와 획일화
진정성을 위협하는 더 근본적인 힘은 역설적이게도 '성공' 그 자체다. 어떤 지역 음식이 뜨면 그 인기를 좇아 상업화와 획일화가 밀려든다.
지역 축제의 먹거리 장터가 대표적이다. 많은 지역 축제가 겪는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바로 바가지요금, 불투명한 가격과 중량, 그리고 어느 축제를 가든 똑같이 반복되는 천편일률적인 먹거리다.
정작 그 지역만의 음식은 사라지고 어디서나 파는 똑같은 볶음면과 튀김이 그 자리를 채운다. 지역의 정체성으로 사람을 불러 놓고 막상 그곳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지워 버리는 자기모순이 벌어지는 것이다.
관광객이 몰릴수록 임대료가 오르고 개성 있는 노포가 밀려나며 그 자리를 어디서나 본 프랜차이즈가 채우는 젠트리피케이션도 같은 얼굴이다. 성공이 진정성을 잡아먹고 진정성을 잃은 그곳은 결국 매력도 함께 잃는다. 미식 도시의 가장 위험한 적은 경쟁 도시가 아니라 성공에 취해 자기 색을 스스로 지우는 일인 셈이다.
진정성은 '박제'가 아니라 '뿌리'다
그렇다면 진정성을 어떻게 지킬까.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고 싶다. 진정성을 지킨다는 것이 음식을 옛날 그대로 박제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음식은 원래 시대에 따라 변한다. 새로운 재료가 들어오고 조리법이 발전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진정성의 핵심은 '변하지 않음'이 아니라 '뿌리를 잃지 않음'에 있다.
그 지역의 땅과 역사, 사람들의 삶이라는 뿌리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다면 그 위에서 얼마든지 새롭게 변주해도 그것은 여전히 진짜다. 반대로 뿌리 없이 유행만 좇으면 아무리 새것이라도 가짜다. 진정성이란 낡은 것을 지키는 보수(保守)가 아니라 뿌리에서 자라나는 정직한 창조인 것이다.
그리고 이 진정성을 지키는 마지막 주체는 다름 아닌 그 지역의 사람들이다. 지역 주민이 축제와 미식의 주인으로 참여하고 생산자와 상인이 정직을 자산으로 삼으며 행정이 지역색을 지우는 획일화를 경계할 때 진정성은 비로소 지켜진다.
결국 진정성은 마케팅 문구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함께 지켜 내는 '살아 있는 자산'이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자산에 국가가 이름을 보증해 주고 값을 지켜 주는 제도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는 지역의 이름을 브랜드로 만드는 구체적 전략, 지리적표시제와 미식 브랜딩을 깊이 있게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문상윤 식품학 박사(filmms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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