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동공제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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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일이 끊기면 그날부터 소득이 0원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이 사정을 설명할 곳이 없다." 그는 3.3% 사업소득세를 내는 '유령 노동자'다.
국세청 인적용역 사업소득 귀속납부자,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를 아우르는 이 '제도 밖 노동자'들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한 인원은 79만9천명에 불과하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콘텐츠 창작자, 1인 자영업자처럼 어떤 안전망도 갖지 못한 청년에게 공제회는 자신의 불안정성을 처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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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리랜서 디자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일이 끊기면 그날부터 소득이 0원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이 사정을 설명할 곳이 없다." 그는 3.3% 사업소득세를 내는 '유령 노동자'다. 회사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플 때도, 일이 끊겼을 때도 그를 받쳐줄 제도는 없다.
이런 청년은 소수가 아니다. 국세청 인적용역 사업소득 귀속납부자,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를 아우르는 이 '제도 밖 노동자'들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한 인원은 79만9천명에 불과하다. 고용보험을 상실한 이들 중 실제로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5천531명에 불과했다. 사회안전망이라는 말이 무색한 숫자다.
청년노동시장 전반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대규모 공채는 사라지고 '기간제 후 정규직 전환'이 채용의 표준이 됐다. 36시간 미만 일자리는 2019년 540만명에서 2024년 881만명으로 증가했다. 인공지능(AI) 노출도가 높은 업종에서는 2022년부터 2025년 사이 15~29세 고용이 20만8천명 줄었다. 신입 채용의 문은 좁아지고, 그 자리를 제도 밖 노동이 채우고 있다.
청년의 반응도 뚜렷하다. 20~30대 개인투자자 비중은 전체의 58%를 넘어섰고, 파이어족을 꿈꾸는 청년은 열에 여섯이다. "열심히 일해도 돈을 벌 수 없다"고 답한 20대가 44%다. 노동을 통해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감각이 노동 자체에 대한 냉소로 번지는 것이다. 이 냉소를 개인의 태도 문제로 돌릴 수는 없다. 노동을 배신당한 경험이 쌓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존 금융시스템이 이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는 데 있다. 소득이 불규칙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청년일수록 은행은 이들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대출과 보험에서 배제한다. 안정적인 소득 흐름을 증명해야 신용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에서, 정작 안전망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가장 먼저 밀려나는 역설이 반복된다.
노동공제회는 이 역설에 대한 대안적 실험이다. 신용평가가 아니라 구성원 간 신뢰와 참여를 기반으로 위험을 분산하는 상호부조 모델이다. 조합원의 회비가 서로의 삶을 뒷받침하는 재원으로 순환하는 구조는, 시장이 계산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안전망을 만들어 낸다. 소액 대출, 경조사 지원, 상호구제 같은 구체적인 혜택은 부수적인 효과일 뿐 핵심은 "내가 어려울 때 이 조직이 나를 도울 것"이라는 신뢰 그 자체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결사하고 교섭하고 서로를 부조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가장 오래된 기능이다. 초기 노조운동은 파업기금과 상호부조기금에서 출발했다.
공제사업은 단순한 복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노조 조직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회비를 내고 서로를 돕는 경험 자체가, 흩어져 있는 (예비)조합원을 하나의 결사체로 묶는 가장 구체적인 매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공제회는 노동시장의 변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당사자들에게 향해 열려 있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콘텐츠 창작자, 1인 자영업자처럼 어떤 안전망도 갖지 못한 청년에게 공제회는 자신의 불안정성을 처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이들은 노조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을 조합원으로 상상해 본 적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제회라는 문턱 낮은 입구를 통해서라면, 이들도 자연스럽게 결사의 경험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의 이름은 이제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새로운 표준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들을 위한 사회보험 체계는 여전히 정규직 임금노동을 전제하고 있다. 제도가 이 간극을 메우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당사자 스스로 만들어 내는 상호부조의 경험은 훗날 제도가 따라와야 할 방향을 먼저 보여주는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청년이 노동을 회피할 대상으로 여기는 정서와, 정작 노동에서 밀려나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현실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이 둘의 뿌리는 사실 하나다. 노동이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하지 못하니, 노동을 믿지 않게 되는 것이다. 노동공제회는 이 악순환을 끊는 작은 실험이다. 제도가 만들어 주지 않는 안전망을, 당사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실험. 그 실험의 첫걸음이 필요하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ti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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