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정당성과 운동의 정당성 사이

유정원 2026. 8. 12.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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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투쟁을 생각해 보자. 대학병원 하청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돼 인근 조선소 해고노동자 등이 그와 연대하기 위해 병원 내에서 피케팅, 농성 등을 함께했다.

그러나 법 권력이 어떤 투쟁을 '불법'이라 낙인찍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연대와 투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자들의 초월적 연대를 두려워하고 저지하려는 자본과 그 자본을 뒷받침하는 법질서의 본질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뿐이다.

오늘의 이 연대가 죄가 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자본과 그의 편인 법의 관용 또는 일부 엘리트의 매개 덕택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이 만들어 낸 결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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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울산사무소)
▲ 유정원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울산사무소)

한 투쟁을 생각해 보자. 대학병원 하청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돼 인근 조선소 해고노동자 등이 그와 연대하기 위해 병원 내에서 피케팅, 농성 등을 함께했다. 두 노동주체는 사업장도 다르고, 형식상 사용자도 다르고, 원청 사용자도 다르고, 속한 산별노조도 다르다.

이런 투쟁 과정에서 사용자쪽이 연대자에게 퇴거를 요구하자 해당 퇴거요구에 불응한 일로 인해 형사 기소됐다. 이때 피고인의 변호인이 무죄를 주장하는 법적 논거 중 하나는 해당 행위가 특정 죄목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정당한 쟁의행위(또는 조합활동)'로 인정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4조에 의해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해당 행위가 퇴거불응 등에 해당하는 것은 맞지만, 정당한 노조활동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니 특별히 무죄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주장으로서 핵심은 해당 행위가 노조법 4조 정당한 쟁의행위(또는 조합활동)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법상 정당한 쟁의행위란 무엇일까. 현행법상 정당한 쟁의행위의 요건은 굉장히 까다롭고, 법원도 이를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다. 이런 연대자의 경우에 대해서도, 우리 법은 명시적인 법령과 판례 등으로 이를 무죄로 볼 근거를 마련해 두고 있지는 않다. 2021년 신설된 노조법 5조2항과 그 이전부터 형성됐던 판례는 해당 사업장에서 종사하지 않는 산별노조 간부 등이 산하 노조의 쟁의행위 또는 조합활동 지원을 위해 필요한 한도 내에서는 사업장에 출입할 수 있다는 법리를 명시적으로 마련해 두긴 했지만, 앞선 사례처럼 산별노조가 다른 경우 또는 노조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연대자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리는 아니다.

결국 해고노동자에게 연대하기 위해 해당 사업장에 출입해 투쟁을 함께하는 '외부 세력'이 있다면, 이들을 쫓아내고 싶은 사용자에게 우리 법은 유용하고 탁월한 무기다. 우리 법은 사업장을 사용자의 지배권을 거스를 수 없는 일종의 성역처럼 여길 뿐, 그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노동자의 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우리 법의 태도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자본의 편임을 고려하면 놀랍지 않다. 노동자의 사업장·사용자·산별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연대와 단결은 사용자, 즉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군부독재 시기에 제정됐던 제3자 개입금지법과 기업별노조 강제 등 이러한 취지를 지금보다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법의 시도는 유구했고, 민주화 이후로 노동자의 투쟁 압력에 못 이겨 우회적이고 교묘해졌을 뿐이다. 법이 이들의 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명시적인 근거를 내놓지 않는 것은, 이러한 연대와 단결을 저지하고자 하는 자본의 유용한 도구이기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은 노동자 개개인의 권리 주장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결합과 단결만큼은 결코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자본이 쌓아온 질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법 역시, 그리고 그 법을 만들고 해석하는 이들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적 정당성이란 것이 운동의 정당성과 애초에 전혀 다른 층위에 위치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투쟁을 변호하는 변호인으로서 법정에서 노조법 4조와 5조2항의 취지를 최대한 확장하고자 다퉈야 하고, 그 다툼 자체가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법 권력이 어떤 투쟁을 '불법'이라 낙인찍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연대와 투쟁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노동자들의 초월적 연대를 두려워하고 저지하려는 자본과 그 자본을 뒷받침하는 법질서의 본질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뿐이다.

운동의 역사에서 수많은 투쟁은 불법이었다. 법은 언제나 뒤늦게, 그것도 마지못해 투쟁의 성과를 추인하는 방식으로만 움직여 왔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마주한 법이 연대를 범죄로 규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의 연대를 막을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늘의 이 연대가 죄가 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자본과 그의 편인 법의 관용 또는 일부 엘리트의 매개 덕택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이 만들어 낸 결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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