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칼럼] 골든타임은 도로 위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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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한쪽 팔에 힘이 빠지고 말이 어눌해진 어르신을 두고 가족이 상의를 시작한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뇌졸중 환자 13만6천여 건을 분석한 결과, 막힌 혈관에서 혈전을 직접 빼내는 시술은 5.3%에서 11.6%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중증 환자에서는 41%까지 올라갔다.
환자안전 사건을 숨기지 않고 보고·분석하는 문화, 규정의 최소치를 넘어서는 감염관리, 상급병원 및 지역 의원과 전원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협력 체계가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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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 한쪽 팔에 힘이 빠지고 말이 어눌해진 어르신을 두고 가족이 상의를 시작한다. 십오 분 거리에 병원이 있지만 결론은 대개 같다. "이왕이면 큰 병원으로 가자." 차로 한 시간 반, 접수와 대기까지 더하면 두 시간이 훌쩍 넘는다. 도착해서 찍은 영상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 뇌가 보인다. 뇌경색은 혈관이 막힌 뒤 1분마다 약 190만 개의 신경세포가 죽는다. 두 시간이면 2억 개가 넘는다. 뇌졸중에서 시간은 비유가 아니라 조직의 양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는 이 문제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분당서울대병원 연구팀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뇌졸중 환자 13만6천여 건을 분석한 결과, 막힌 혈관에서 혈전을 직접 빼내는 시술은 5.3%에서 11.6%로 두 배 이상 늘었고 중증 환자에서는 41%까지 올라갔다. 119 구급차 이용률과 전문 치료 병원 직접 이송률도 높아졌다. 그런데 증상 발생 후 3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한 환자 비율은 35.4%에서 36.6%로 10년째 제자리였다. 기술은 발전했는데 결과가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부족한 것은 치료법이 아니라 환자가 제때 닿을 수 있는 거리이며, 그 거리를 결정하는 것이 의료전달체계다.
의료전달체계는 병원의 서열이 아니라 역할의 분담이다. 상급종합병원의 몫은 분명하다. 고난도 수술과 중증 외상, 희귀·난치질환, 그리고 어느 병원도 감당하지 못한 환자를 마지막으로 받아내는 최종 치료다. 여기에 전문의를 길러내는 수련이 더해진다. 어떤 기관도 대신할 수 없는 기능이다. 정부가 2024년 10월부터 추진한 구조전환 지원사업에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참여해, 경증 외래와 입원은 줄고 중증 수술은 늘어나는 변화가 확인되고 있다. 방향은 옳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에 집중하는 만큼, 그 아래를 받쳐 줄 층이 두텁고 단단해야 한다. 지역 종합병원과 중소병원의 자리다. 뇌졸중이 의심되는 환자의 즉각적인 영상 검사와 초기 처치, 폐렴과 골절,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앓는 고령 환자의 입원 치료. 대학병원까지 갈 만큼은 아니지만 동네의원이 감당하기 어려운 중등도 환자들이다. 이 층이 비어 있으면 환자는 새벽마다 도로 위에서 골든타임을 소모한다. 정부가 지난해 포괄 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을 시작해 175곳을 선정하고 올해 다시 20곳을 추가한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가장 앞자리에는 동네의원이 있다. 환자가 몸의 이상을 느꼈을 때 처음 여는 문이며, 혈압과 혈당, 부정맥을 꾸준히 관리하는 곳이다. 뇌졸중 예방의 대부분은 사실 이 자리에서 이루어진다. 가벼운 질환을 가까이서 해결하고 위험한 신호를 제때 넘겨주는 판단이 체계의 첫 단추다.
이 세 층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체계는 작동한다. 다만 제도로 강제해서 굴러가는 일이 아니다. 환자는 신뢰가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입증의 책임은 상당 부분 우리 중소병원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력 있는 전문의를 확보하고, 의료기관 인증을 통해 진료 과정을 외부의 눈으로 점검받아야 한다. 환자안전 사건을 숨기지 않고 보고·분석하는 문화, 규정의 최소치를 넘어서는 감염관리, 상급병원 및 지역 의원과 전원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협력 체계가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지표와 기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은 우수한 상급종합병원을 여럿 보유한 지역이다. 그만큼 2차 병원의 역할도 선명해질 수 있다. 큰 병원은 더 무거운 환자에게 집중하고, 지역 병원은 그 앞뒤를 촘촘히 메우며, 동네의원은 일상의 건강을 지킨다.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는 이 단순한 원칙이 무너질 때 응급실 앞에서 발길을 돌리는 환자가 생긴다.
지역 필수의료를 지키는 일은 거창한 선언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정확히 해내는 데서 시작된다. 새벽 두 시에 가족이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이 목표다. 가까운 곳에서, 제대로.
대구예스병원 대표원장서원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