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의 시간] ④"기초연구, 가장 오래 남고 큰 파급력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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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바이오 기술의 발전은 수십 년 전 시작된 기초과학 연구의 축적 위에서 가능했다. 2011년 출범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연구자 중심의 장기 연구 지원을 위해 설립된 국가 연구기관이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추상적인 수학도 시간이 지나면 과학기술 전반의 핵심 도구가 된다"며 "기초연구는 가장 오래 남고 가장 큰 파급력을 만드는 연구"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실생활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추상적인 수학도 시간이 지나면 과학기술의 핵심 언어가 된다. 미적분학이나 일반상대성이론도 처음에는 응용을 염두에 둔 연구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기술에 활용된다. 응용까지 걸리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는 만큼 기초수학은 파급력이 매우 큰 연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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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바이오 기술의 발전은 수십 년 전 시작된 기초과학 연구의 축적 위에서 가능했다. 기초과학은 새로운 지식과 미래 기술의 출발점이지만 성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2011년 출범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연구자 중심의 장기 연구 지원을 위해 설립된 국가 연구기관이다. 동아사이언스는 IBS 출범 초기 연구단장과 IBS에서 성장해 대학·연구기관의 독립 연구자로 자리 잡은 과학자들을 만나 장기 연구의 성과와 한국 기초과학계에 남긴 변화를 살펴본다.
수학 분야는 장기간 기초연구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 중 하나다. 다른 원천, 응용 연구로 직접 이어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공지능(AI) 같은 파괴적인 혁신이 수학을 토대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앞서 만난 오용근 IBS 기하학수리물리 연구단장은 장기간 기초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순기능에 대해 국내 연구자가 거의 없던 척박했던 연구 분야에 도전하는 젊은 연구자가 생겨난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높게 평가한 연구자가 바로 IBS 영사이언티스트펠로우(YSF) 출신 이경석 포스텍 수학과 교수다.
포항 포스텍에서 최근 만난 이 교수는 "원래는 수리물리를 연구하고 싶었는데 석·박사과정 지도교수인 김영훈 교수님의 권유로 당시 국내에서는 연구하는 사람이 드문 분야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이 연구를 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지도교수님의 말에 중간에 몇 번 연구 주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결국 계속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 교수는 곡선과 곡면 같은 기하학적 대상을 다항식의 성질을 이용해 연구하는 대수기하학을 연구하고 있다. 세부 분야는 대수다양체의 유도된 범주이론으로 서로 다른 기하학적 공간의 공통된 구조와 관계를 밝히는 데 특히 유용하다. 복소기하학, 사교기하학, 수리물리학, 정수론, 표현론 등 수학의 많은 분야와 연결된다.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에는 이 분야 연구자가 많지 않았다. 이 교수는 김영훈 교수가 추천하는 해외 논문들을 읽으며 연구 흐름을 익혔다.
이 교수는 "논문에는 모든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며 "논문의 행간을 읽고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지식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를 찾는 일도 어려웠지만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판단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 세계적 거장에게 배우며 연구의 시야 넓혔다

이 교수는 고등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2016년 IBS 기하학 수리물리 연구단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고등과학원과 IBS 지원으로 해외 학회와 국제 교류에 활발히 참여하며 연구에 몰입했다. 학회에서 우연히 만난 인도 대수기하학의 거장 고(故) 무둠바이 세샤찰루 나라시만 교수와는 이 시기에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이 교수는 IBS 재직 시절 인도를 여러 차례 오가며 나라시만 교수에게 벡터다발 이론을 배웠다. 벡터다발은 기하학적 공간 위의 함수를 일반화한 수학적 구조로 공간의 성질을 이해하는 핵심 도구다. 이 교수는 나라시만 교수와 함께 대수곡선 위 벡터다발과 이를 분류하는 모듈라이 공간을 함께 연구했고 이 작업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연구의 기반이 됐다.
안타깝게도 나라시만 교수는 2021년 세상을 떠났다. 이 교수는 "은사와도 같은 분이었다"며 "인간적으로도 큰 슬픔을 느꼈고 함께하던 연구도 한동안 동력을 잃은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연구단의 연구 문화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IBS 소속 또래 연구자들은 자유롭게 토론하며 아이디어를 나눴고 이 분위기에서 이 교수는 자연스럽게 연구의 폭을 넓혔다.
이 교수는 IBS가 한국 기초과학계에 남긴 가장 큰 변화로 신진 연구자 양성을 꼽았다. 그는 "과학자는 성장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IBS는 장기간 연구에 몰입하고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성장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학회와 공동연구로 국내 연구자들이 세계 연구자들과 연결되는 기반을 만든 것도 IBS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평가했다.
기초수학 연구의 가치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처음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추상적인 수학도 시간이 지나면 과학기술 전반의 핵심 도구가 된다"며 "기초연구는 가장 오래 남고 가장 큰 파급력을 만드는 연구"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Q. 포스텍에서 독립 연구실을 운영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연구뿐 아니라 학생 지도와 행정, 연구비 확보까지 함께 책임진다. 예전에는 연구가 본업이었다면 지금은 교육·행정·연구를 각각 3분의 1씩 맡는 느낌이다. 연구에 쓰는 시간은 줄었지만 학생들을 키우는 일에서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Q. 대학원 학생들을 지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학생 지도는 혼자 하는 연구와 다르다.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학생이 연구를 통해 얼마나 성장할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학생이 풀 만하면서도 도전적인 문제인지, 이 연구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연구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따져 연구 주제를 정한다. 처음 두세 편의 논문은 함께 쓰지만 학생이 감을 잡으면 스스로 연구해 나가도록 한다."
Q. 한국 수학계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
"우리나라 수학계는 예전보다 많이 발전했다. 운이 좋으면 앞으로 20~30년 안에 필즈상을 받는 연구자가 또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젊은 연구자들이 굉장히 잘하고 있다."
Q. 기초수학 연구는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처음에는 실생활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추상적인 수학도 시간이 지나면 과학기술의 핵심 언어가 된다. 미적분학이나 일반상대성이론도 처음에는 응용을 염두에 둔 연구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기술에 활용된다. 응용까지 걸리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는 만큼 기초수학은 파급력이 매우 큰 연구라고 생각한다."
[포항= 조가현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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