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부자’ 네이버의 변심…AI 생태계에 베팅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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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네이버를 다시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신사업에 도전할 때마다 규제의 벽에 부딪히고 해외에서는 뚜렷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던 네이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국내 검색과 커머스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현금 부자지만 노잼(재미없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네이버는 최근 엔비디아를 3대 주주로 맞이하고 AI에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내수용 플랫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AI 영토 확장에 나선 네이버의 시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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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네이버를 다시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신사업에 도전할 때마다 규제의 벽에 부딪히고 해외에서는 뚜렷한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던 네이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국내 검색과 커머스 사업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며 ‘현금 부자지만 노잼(재미없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네이버는 최근 엔비디아를 3대 주주로 맞이하고 AI에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일본에 이어 중동에서도 로봇 플랫폼 수출을 본격 추진하는 한편 차세대 AI 금융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한 두나무 인수에도 속도를 낸다.
‘은둔의 경영자’였던 이해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은 지난해 복귀 이후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을 직접 이끌며 전면에 나서고 있다.
내수용 플랫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글로벌 AI 영토 확장에 나선 네이버의 시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3대 주주’가 된 엔비디아의 계산
지난 6월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을 잇달아 만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방한 사흘 뒤 경기 성남시 네이버 사옥을 찾았다. 이날 그는 네이버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았다. “네이버에는 세계적 수준의 클라우드와 AI 전문가들이 있다. 네이버가 월드클래스 AI 기업이라는 것이 답이다.”
그의 평가는 한 달여 뒤 대규모 투자로 이어졌다. 지난 7월 27일 네이버는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10억달러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다. 발행 주식 수는 724만1564주로 엔비디아는 국민연금과 블랙록 계열 펀드에 이어 네이버의 3대 주주로 올라선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612만9725주)은 4대 주주가 된다. 네이버는 신규 주식 발행에 따른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 희석을 최소화하기 위해 490만 주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결정하며 사업 추진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번 투자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다. AI 팩토리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동맹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앞서 네이버와 엔비디아, 브룩필드는 지난 7월 24일(현지 시간) AI 팩토리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네이버는 AI 팩토리 운영을 맡고, 브룩필드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AI 기술을 담당하는 구조다.
2019년 네이버가 엔비디아의 슈퍼컴퓨팅 인프라를 최초로 상용화하며 데이터센터 운영 기술을 축적한 점도 이번 협력의 배경으로 꼽힌다. 또 네이버는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인 ‘하이퍼클로바X’를 개발했고 AI 데이터센터 ‘각 세종’을 운영하며 GPU 클러스터와 클라우드, 생성형 AI 서비스를 아우르는 ‘AI 풀스택’ 역량을 구축했다.
여기에 ‘소버린 AI(데이터 주권)’ 전략도 영향을 줬다. 각국이 자국의 언어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AI를 구축하려는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네이버는 2024년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와 소버린 AI 및 아랍어 LLM 공동 개발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중동 시장을 선점해왔다. 미·중 갈등 속에서 미국 빅테크의 기술 종속을 경계하는 중동 국가들에 네이버는 가장 매력적인 ‘중립지대 기술 강자’다. 엔비디아는 미국 중심의 AI 시장을 넘어 중동과 유럽, 동남아시아 등으로 AI 팩토리 사업을 확대하고 있어 양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네이버라는 강력한 우회로를 통해 정치적 리스크 없이 중동 전역의 거대 AI 팩토리에 자사의 최첨단 GPU를 심겠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검색과 커머스, 콘텐츠, 로보틱스 등 AI를 적용할 서비스 기반까지 확보한 것도 강점이다. 한편에선 엔비디아가 차세대 성장축으로 육성하는 ‘피지컬 AI’와도 접점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잼 기업’의 반격
시장이 놀란 네이버의 거침없는 행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이어진 성장 정체와 ‘지금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깊은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그간 네이버는 검색과 커머스 사업을 기반으로 매 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며 안정적인 수익을 냈지만 정작 미래 먹거리가 되어야 할 신사업들은 번번이 기대를 밑돌았다. 콘텐츠와 엔터프라이즈 사업은 성장 속도가 더뎠고 헬스케어 등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때마다 국내 규제에 발목을 잡히며 시장의 신뢰를 잃어갔다.
냉혹한 평가는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네이버 주가는 2021년 40만원대를 기록한 뒤 3년 넘게 20만원대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가수익비율(PER) 역시 19.88배에 머물며 카카오(34.34배)는 물론 바이두(23.74배)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보다 크게 뒤처졌다. PER이 기업의 ‘미래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를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높은 이익 체력과 별개로 네이버의 미래 동력에 대해 시장이 얼마나 보수적인 점수를 매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장 정체를 돌파하기 위해 이해진 의장이 직접 전면에 나섰다. 그의 복귀를 기점으로 네이버는 인프라와 서비스, 중동, 금융을 아우르는 글로벌 AI 밸류체인을 무서운 속도로 조립하기 시작했다.
이해진 의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외부로는 글로벌 기업들과 각 기업 주요 인사들을 만나며 글로벌 AI 동맹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내수 공공 시장의 안보 장벽과 금융 영토를 동시에 겨냥했다. 최근 군 전력 및 기획 최고 전문가인 김선호 전 국방부 차관을 상근 경영고문으로 전격 영입하며 공공·국방 부문 AI 전환(AX) 사업과 소버린 AI 전략에 속도를 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장기화와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특정금융정보법 및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등 암초 속에서도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인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는 네이버가 구축 중인 초개인화 AI 서비스에 블록체인 인프라를 결합해 차세대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선점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다양성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더욱 다양한 파트너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이해진 의장의 공언처럼 네이버의 시선은 이미 홀로 서는 플랫폼이 아닌 거대한 ‘AI 연대’의 중심축을 향하고 있다.
이제 시장의 시선은 네이버가 구축한 이 거대한 밸류체인이 실제 숫자로 증명될 타이밍을 향한다. 곳간에 현금만 쌓아두던 ‘노잼 기업’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진 네이버가 과연 박스권에 갇힌 주가와 시장의 보수적인 평가를 뒤집고 생성형 AI 시대의 판도를 흔들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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