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에 한번 올만한 독한 가뭄 덮쳐… 국내 저수지 99%가 감당 못해

전채은 기자 2026. 8. 12.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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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찾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마룡마을의 주남저수지는 물이 바짝 말라 바닥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극한 폭염에 이어 '극한 가뭄'이 일상이 되고 있지만 전국 저수지의 99% 이상은 과거 기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경미한 수준의 가뭄을 견디도록 설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변화로 가뭄의 세기와 빈도가 높아진 만큼 댐과 저수지 등 '물그릇'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저수지 3422곳 가운데 3408곳(99.6%)은 '1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가뭄'에 맞춰 설계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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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이어 극한 ‘돌발 가뭄’]
저수지 대부분 옛 기준따라 설계… ‘10년에 한번 올 가뭄’만 버틸수 있어
폭염에 하루 최대 1.4만t 물 증발
기상청 “급성 가뭄 발생 뚜렷해져”… 기후변화 맞춘 ‘물그릇’ 재정비해야
11일 경북 청도군의 삼신지저수지가 바짝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청도=뉴시스
11일 오후 찾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마룡마을의 주남저수지는 물이 바짝 말라 바닥 곳곳이 갈라져 있었다. 저수지 바닥에 발을 내딛자 흙먼지가 세차게 일었다. 물에 잠겨 있어야 할 연꽃 뿌리와 어망도 그대로 보였다.

지난달 의창구에 있는 북창원 기상관측소에서 기록된 강수량(59.1mm)은 역대 가장 적었고, 평균기온(28.9도)은 가장 높았다. 이 여파로 단기간에 수자원이 고갈되는 ‘돌발가뭄’이 발생하면서 주남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마룡마을의 김태진 이장(70)은 “이렇게 큰 저수지가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마른 적은 수십 년간 없었다”며 “열흘 내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 올해 벼, 단감 농사는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극한 폭염에 이어 ‘극한 가뭄’이 일상이 되고 있지만 전국 저수지의 99% 이상은 과거 기준에 따라 상대적으로 경미한 수준의 가뭄을 견디도록 설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 변화로 가뭄의 세기와 빈도가 높아진 만큼 댐과 저수지 등 ‘물그릇’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저수지 99%, 과거 기준에 맞춰 설계

11일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저수지 3422곳 가운데 3408곳(99.6%)은 ‘10년에 한 번 발생할 수 있는 가뭄’에 맞춰 설계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저수지 대부분이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수준의 가뭄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기준이 과거 기후 환경에서는 심각한 가뭄이었지만, 지금은 이를 뛰어넘는 ‘극한 가뭄’이 흔해졌다는 점이다. 홍진규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10년에 한 번 오는 강도의 가뭄이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수자원 인프라가 이에 맞춰 설계됐다”며 “이제는 가뭄이 잦아지고 강해져 20년, 50년 강도의 가뭄도 일상화됐다”고 했다.

농어촌공사와 별도로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저수지 1만3000여 곳은 대부분 3년 안팎의 가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어져 더욱 열악한 상황이다.

댐도 말라가고 있다. 전국 8개 댐이 가뭄 단계에 진입했는데, 모두 남부 지방에 몰려 있다. 경북 운문댐은 최상위 단계인 ‘심각’ 단계이며, 전북 섬진강댐과 경남 밀양댐은 ‘경계’, 경북 성덕댐·안동댐·임하댐·영천댐과 전남광주 동복댐도 ‘주의’ 단계 상황이다. 이들 지역은 올여름 비가 적게 온 데다 기록적인 폭염이 겹치면서 ‘돌발가뭄’(급성가뭄)이 진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강수 부족에 이상 고온이 더해지면 물이 훨씬 빨리 마른다. 낮에는 강한 햇볕과 낮은 습도로 증발량이 급증하고, 밤에도 지표가 식지 않아 증발이 24시간 계속되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한국 기후위기 평가보고서’에서 “여름철 폭염으로 증발이 늘어나 ‘폭염형 급성가뭄’의 발생이 뚜렷해졌다”고 분석했다.

● “극한 기후 반영해 ‘물그릇’ 대폭 정비를”

이에 따라 각 지자체는 하천 물을 끌어와 저수지를 채우거나 비상 급수 등에 나서고 있다. 농어촌공사 창원지사는 지난달 말부터 낙동강 물을 하루 5만 t 이상 끌어와 주남저수지를 채우고 있다. 가까스로 저수율 40%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폭염으로 하루 최대 1만4000t의 물이 자연 증발하고 있다. 전남광주 영광군은 가뭄 장기화에 대비해 농어촌공사·군부대 등과 핫라인을 구축하고 취약 농경지, 도서산간 지역에 비상 급수 차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9월이 되면 가뭄 지역이 확대되면서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월까지 폭염이 계속되는 데다 강수량도 평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미 이달 1∼10일 전국 평균기온은 29.1도로 2018년과 함께 역대 가장 더웠다. 이 기간 강수량도 10.1mm로 평년의 7.3%에 그쳤다.

지금의 가뭄이 9월까지 이어진다면 가뭄의 강도가 ‘20년에 한 번 발생하는 가뭄’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계속 비가 적게 올 경우 불과 한두 달 사이에 가뭄의 세기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했다. 예상욱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현재 가뭄 인프라가 극한 기상 현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최근 기상 자료를 근거로 댐, 저수지 기준 등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창원=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
신예린 기자 y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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