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왜 채소가 많아도 채식하기 어려울까 [최지아의 미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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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온 한식. 20여 년간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맛을 알려온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가 한식과 K관광의 트렌드를 소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한식은 정말 신기해요. 이렇게 다양한 채소를 사용하는 식문화는 드문데, 정작 채식주의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음식이거든요." 처음에는 이 말이 조금 의외로 들렸다.
비빔밥과 나물, 쌈 채소를 떠올리면 한식은 오히려 채식 친화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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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미식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온 한식. 20여 년간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의 맛을 알려온 최지아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가 한식과 K관광의 트렌드를 소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얼마 전 한식 푸드투어에 참가한 사라는 된장찌개를 먹기 전 육수를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물었다. 식당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건 맛의 비밀이라 알려드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라는 레시피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었다. 채식주의자인 그녀에게 멸치나 고기로 만든 육수는 먹을 수 없는 재료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비법이 아니라, 자신이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에 대한 정보였다.
문제는 음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식의 차이였다. 식당은 질문을 ‘비법을 알려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였고, 손님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인지 확인하기 위한 질문’으로 생각했다. 오랫동안 음식점의 경쟁력은 맛이었다. 음식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일일이 설명하기보다 맛의 비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고, 소비자 역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음식의 재료를 자세히 묻지 않았다. 된장찌개 육수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김치에 젓갈이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한식이 세계인의 음식이 되면서 필자가 현장에서 받는 질문도 달라졌다. 최근 프랑스, 체코, 멕시코 등에서 한식당을 열고 싶다며 한국을 찾는 사람들과 수업을 하면서 이런 변화를 자주 느낀다. 예전에는 “불고기 양념은 어떻게 만드는가”, “김치는 어떻게 발효시키는가”가 주요 질문이었다. 요즘은 “비건 손님도 먹을 수 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나요?”, “할랄 손님을 위한 떡볶이도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한식의 맛을 배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고객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다. 이제 한식을 찾는 사람은 한국인만이 아니다. K콘텐츠를 통해 한식을 접하고 한국을 여행하며 한식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도 한식을 찾는다. 그중에는 비건과 채식주의자, 무슬림, 알레르기나 특정 식재료를 피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한식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식습관이나 신념을 유지하면서도 한식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 채식을 하는 프랑스인 마리도 이런 말을 했다. “한식은 정말 신기해요. 이렇게 다양한 채소를 사용하는 식문화는 드문데, 정작 채식주의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음식이거든요.” 처음에는 이 말이 조금 의외로 들렸다. 채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채식하기 어려울까?
비빔밥과 나물, 쌈 채소를 떠올리면 한식은 오히려 채식 친화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된장찌개에는 멸치 육수가, 김치에는 젓갈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고기를 뺀 비빔밥의 나물에도 액젓이 들어갈 수 있다. 채소가 많다는 것과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한식을 비건이나 할랄 음식으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무엇이 들어갔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멸치 육수인지, 고기 육수인지, 김치에 젓갈이 들어갔는지, 나물에 액젓을 사용하는지 알려주면 손님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먹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조리법 전체를 공개하라는 것이 아니다. 식재료를 알려주는 것은 영업비밀을 공개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과거 음식점의 경쟁력이 ‘맛’이었다면 앞으로는 맛에 더해 ‘신뢰’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특히 한식을 찾는 사람이 다양해질수록 음식에 대한 정보와 선택권을 원하는 사람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식은 이런 변화에 비교적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음식이다. 한식에는 하나의 음식에 하나의 정답 레시피만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김치도 누가, 어느 지역에서, 어느 시대에 만드느냐에 따라 맛과 재료가 달라진다. 된장찌개도 집집마다 다르고, 만드는 사람의 취향과 형편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음식이 된다. 한식은 원래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며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다양한 식습관과 요구에 맞춰 재료와 조리법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 역시 한식의 본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한식의 세계화는 더 많은 나라에 한식당을 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한식을 선택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한식 세계화의 다음 단계일지도 모른다. 사라가 원했던 것도 특별한 배려가 아니었다. 자신이 먹는 음식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어쩌면 한식의 다음 변화는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묻는 질문에 기꺼이 답하는 작은 일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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