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집권 땐 망해” “야당도 믿음 안 가” 둘로 쪼개진 브라질

상파울루/김보경 기자 2026. 8. 1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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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둔 브라질
김보경 기자 르포
지난 2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노동자당(PT) 전당대회에서 정식 대선 출마선언을 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F 연합뉴스

지난 5일 남미 최대도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만난 60세 택시기사는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얘기를 꺼내자 목소리가 커졌다. “나라 경제는 추락하고 있고 여당이 4년 더 집권하면 쫄딱 망할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꼭 투표하겠다.” 통산 4선에 도전하는 집권 좌파 노동자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81)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 것이다. 하지만 남부 쿠리치바에서 왔다는 비니시우스(34)는 “룰라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야당 후보(보우소나루)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날 브라질 언론들은 일제히 여론조사 업체 콰에스트 최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통산 4선에 도전하는 룰라 대통령이 44%, 우파 자유당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45) 상원의원이 39%였다.

오는 10월 4일로 예정된 브라질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브라질은 인구(약 2억530만명)와 면적(한반도의 약 40배) 모두 남미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는 라틴아메리카 패권국이다. 좌우 정치세력간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중남미를 넘어 세계정세까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최장기간 집권 중인 룰라가 4선 고지에 오를 경우 브라질은 ‘핑크 타이드’(중남미 좌파진영)를 수호하며 서반구(미주대륙)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견제 세력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반면 보우소나루가 승리할 경우 사실상 남미 전체가 ‘블루 타이드’(중남미 우파진영)에 편입되는 상황이 된다.

◇좌·우 포퓰리즘 싸움에 질려버린 국민들… “매표 행위 심판할 것”

브라질 정치사상 최악의 정적(政敵) 지간인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 수감된 아버지를 대신해 복수에 나선 아들.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대선은 이처럼 극적인 구도로 짜였다. 야권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의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2019~2023년 재임)는 직전 대선에서 룰라에 패배한 뒤 결과에 불복한 지지자들의 폭력 시위를 부추겨 정권 전복을 기도한 혐의로 징역 2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수감된 그를 대신해 아들이 야권 대표 후보로 확정됐다. 룰라 역시 1·2기 임기 후 야인 시절이던 2019년 부패 스캔들로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 수감되면서 정치생명이 끝장날 뻔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우파 야권 자유당 대선 후보인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지난 5일 수도 브라질리아의 한 행사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룰라와 보우소나루 부자(父子)의 악연에 좌우 진영간 갈등까지 얽히면서 여야는 거칠게 충돌하지만, 현장의 민심은 집권 좌파에도 정권 교체를 외치는 우파에도 싸늘했다. 상파울루 주민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보우사 파밀리아(가족수당)’였다. 2003년 집권한 룰라의 핵심 정책으로 정부 재정으로 저소득층 가정을 조건부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소득 불평등 해소’와 ‘재정 악화 주범’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던 가족 수당은 2023년 출범한 룰라 3기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부활했다. 하지만 상파울루에서 만난 중년 여성은 “사실상 룰라 정권의 매표 행위”라며 “쓸데없는 돈 퍼주기로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파울루 곳곳에서 ‘극과 극’의 풍경을 찾아보는건 어렵지 않았다. 공항을 통해 들어와 도심으로 진입하면 낙후된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빈민가 ‘파벨라’를 먼저 보게 된다. 그러다 ‘자르짐’ ‘이타임 비비’ 등 강변 지역의 초호화 빌라촌을 보면 같은 도시라는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반면 룰라 지지층에서는 가족 수당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한 여권 지지자는 “무분별한 현금 살포와는 차별화된 체계적인 지원 정책으로 실제로 많은 저소득층의 중산층 진입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룰라 3기 들어 연간 경제성장률은 2~3%를 유지하고 있고, 인플레이션도 4% 안팎에서 관리되는 등 경제 수치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다만 이런 수치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불만도 있다. 야권 지지층 사이에서는 최근 “도대체 피카냐는 어디에 있느냐”는 비아냥이 많이 들린다. 피카냐는 쇠고기 최상급 부위다. 룰라는 2022년 대선 당시 “일하는 노동자들도 피카냐에 맥주를 즐길만큼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그런 공약이 현실성이 없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불만이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감지됐다. 기업인들은 “더 고용하고 싶지만 일할 사람이 없다” “브라질은 지나치게 지출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하면서도 한결같이 “야권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전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권이 좌파 못지 않게 포퓰리즘에 천착했던 전력 때문이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권은 코로나 창궐시 미숙한 대응으로 사망자가 급증하며 지지율이 급락하자 이름만 바꾼 현금성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한 30대 남성은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모두 우파인데, 사실 우파라고 부를만한 적합한 후보가 없는 것 같다”라면서 “대안이 안 보이고 별 희망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브라질은 정치 혼란기와 군부 집권기를 거쳐 1988년 민주화 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2003년 룰라 첫 집권 후 진영 간 갈등이 커지면서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브라질 정치학자 페르난도 실러는 “각 진영은 ‘두 개의 브라질’을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외국을 보면 좌우라도 방향이 있지만, 브라질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했다.

좌우 진영 대결에 열강까지 가세해 브라질 대선은 글로벌 패권경쟁의 성격도 강해지고 있다. 1기 임기 때부터 자이르 보우소나루와 밀착했던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아들 플라비우를 지지하고 있다. 신흥경제국협력체 브릭스(BRICS) 등을 통해 브라질과 밀착해온 중국과 러시아 등은 룰라의 측면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이번 선거는 지난 대선에 이어 국민의 절반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초박빙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5일 브라질 상파울루 자르짐(Jardim) 지역의 한 고급 맨션 앞에 높은 울타리와 철창 문, 초소 같은 경비실이 설치된 모습.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잠금 장치를 최소 3개 해제해야 한다. 취약한 치안 환경 탓에 강도가 잦은 브라질 도심의 상점과 주택에 이런 보안 장치는 필수다. /김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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