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땡볕과 싸우는 외국인노동자들
폭염 단계별 작업중지 권고 ‘그림의 떡’
여주서 휴식 중 실종, 숨진채 발견
열악한 환경 노출, 매년 사고 반복
경찰·市, CCTV 등 경위 조사중

지난 10일 오후 3시께 방문한 여주시 세종대왕면의 한 단호박 밭. 그늘 하나 없는 이곳엔 말 그대로 ‘땡볕’이 그대로 쏟아졌다. 잠깐만 걸어도 땀이 쏟아지는 날씨였다. 단호박 밭을 포함해 주변 농가에서도 밭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7일 오후 1시께 여주에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던 당시, 여성 외국인 계절노동자 A(30대)씨는 이 밭에서 단호박 씨를 흙 속에 심는 파종 작업을 하고 있었다. “더위 때문에 힘들다”고 동료 작업자에게 말하고 근처의 나무 그늘에 가서 쉬던 A씨가 눈에 보이지 않자 농장주가 경찰에 신고한 시간은 오후 3시께. 이때 이 곳(여주시 가남읍 기준)의 기온은 39.8℃로 이날 최고 온도에 달했던 순간이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다음날인 8일 오후 7시께 A씨가 인근 수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8월11일자 7면 보도)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가운데, 폭염 단계별 작업중지 권고 사항이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11일 법무부의 등록외국인 현황(6월 말 기준) 상 경기도 계절노동자 외국인(E-8 비자)은 총 5천517명으로, A씨도 지난 5일 입국한 계절노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8개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아직 A씨의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매년 계절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폭염 속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사망하는 사고가 반복돼 이주민 인권단체 등은 대책 마련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체감온도 33℃ 이상인 작업장소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에는 고용주는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고기복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매년 폭염이 지나가면 관심이 사라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은 불평불만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찰과 지자체는 현재 농장주 진술과 인근 CCTV 내역 등을 종합해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12일 부검을 의뢰해 결과를 보고 조사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여주시 관계자는 “계절노동자를 고용하는 농장주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사고가 발생한) 해당 농장주를 대상으로도 지난달 말께 교육을 통해 폭염 대응 권고사항 등을 안내했다”며 “사고 경위 조사와 함께 유가족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지 기자 bbangz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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