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 “50년치 피해 배상하라” 맞불 놓은 트럼프, 중동이란 ‘늪’에 빠졌다

최민지 기자 2026. 8. 1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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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아동의 예방접종 권고 대상을 기존 18개 질병에서 11개로 줄이는 행정명령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전쟁 배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미·이란 전쟁은 물론 지난 50년간 분쟁에서 미국이 입은 인적·물적 피해를 이란이 배상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조건으로 전쟁 배상·역내 미군 철수 등을 내건 데 대한 ‘맞불’ 성격이지만, 한편으론 중동에서 외교적 좌절을 잇달아 겪으면서 진퇴양난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이란의 요구가 “흥미롭다”고 언급한 뒤 “왜냐하면 나도 이란에 배상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또 이번 전쟁뿐 아니라 지난 50년간 있었던 이란 관련 사건 모두를 배상 범위에 포함하겠다며 “앞으로의 모든 협상에서 이 요구를 확고하게 제기하도록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올린 게시물에서는 한층 범위를 넓혔다.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레바논과 시리아, 예멘, 가자지구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이란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같은 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그들이 우리가 입힌 피해에 대해 돈을 요구해 나도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며 “지난 50년간 그들이 우리에게 준 피해에 돈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이란에 대해 “‘로키’(low-key·신중하게)로 대응하겠다”던 전날과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 가디언은 “전쟁 종식과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중간 선거가 채 3개월도 남지 않은 가운데 종전 협상은커녕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합의조차 교착 상태에 빠진 데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에서 잇따라 좌절을 맛보고 있다. 미국 주도의 평화위원회가 제안한 가자지구 평화합의안을 그의 최측근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미·이란 전쟁 이후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의 브라이언 카툴리스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 선거를 앞두고 모든 사안을 어떻게든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방법을 찾고 있지만 현실은 그의 뺨을 세게 때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NYT는 “트럼프는 중동에서 이제 손을 떼고 싶어하지만 중동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고 짚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10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우리는 트럼프를 죽일 것’이라고 적힌 현수막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 및 후계자 모즈타바 초상화 앞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을 미국이 통제하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호르무즈 해협은 열려있고 미 해군만이 통제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란이 해협에 설치한 기뢰 역시 미군이 모두 제거했다고도 주장했다.

통계는 다른 말을 한다. 선박 추적 업체 케플러에 따르면 최근 며칠 사이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통항량은 크게 감소했다. 이날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6척에 불과했다. 최근 열흘간 일일 평균인 11척보다 크게 줄어든 규모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전쟁의 심각성을 축소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거짓말”이라고 꼬집었다.

해협 재개방에 대한 기대로 한동안 안정되는 듯했던 국제 유가 역시 상승으로 반응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합의가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약해졌다”고 전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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