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이 위험하다? 참나무 보전상태 '예의주시' 이유
종자 보관 어려운 도토리, 나무 또는 조직 보관해야 보존 가능
아시아에서 멸종위기에 놓인 참나무 종 70% 이상이 야생에서 사라졌을 때 되살릴 '백업 나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멸종위기·정보부족 참나무 54종을 조사한 결과, 40종은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살아 있는 개체가 보전돼 있지 않았다.

얼릴 수 없는 도토리, 복원하려면 '나무'로 길러야
최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희귀 참나무 상당수가 개발과 벌목으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야생에서 사라질 위험이 큰 종 상당수가 식물원이나 수목원에 살아 있는 개체로 보전되어 있지 않아서 특히 문제로 지적된다.
미국 모턴수목원이 지난 3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자생하는 멸종위기 참나무 54종 중 40종(74%)은 보전 개체가 없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위급·위기·취약·정보부족 등으로 분류한 종을 대상으로 한 조사다. 이 중 멸종 위험이 가장 큰 위급종은 16종 중 1종만 보전 개체가 확인됐다.
참나무를 수목원 등에 따로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도토리 때문이다. 많은 식물의 씨앗은 수분을 제거해 냉동고에 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도토리는 말리거나 얼리는 과정에서 발아력을 잃기 쉽다. 이 때문에 참나무는 살아 있는 나무나 식물 조직으로 보전해야 한다. 그래야 야생 자생지가 훼손되더라도 여러 그루로 늘려 다시 심을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 지역 희귀 참나무 상당수는 현재 이런 백업 개체가 없다.
보전 중인 나무가 있어도 개체 수가 적다. 보전 개체가 확인된 14종 가운데 절반인 7종은 나무가 10그루 이하였다. 이 가운데 3종은 단 한 그루뿐이다. 이 경우 산불 등 불의의 사고로 소실될 위험이 그만큼 크다.
보전된 나무가 일부 지역에서만 수집돼 유전적 다양성도 부족하다. 14종 가운데 12종은 전체 자생지의 10%에도 못 미치는 지역에서 수집한 나무로만 구성됐다. 특정 지역에서 가져온 몇 그루만 보전하면 지역마다 다른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온 종 전체의 다양한 특성을 담기 어렵다.
다만, 이는 연구진이 확보한 식물원·수목원 자료를 기준으로 한 결과여서, 조사에 응답하지 않은 기관이 해당 나무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나무가 어디에 얼마나 자생하는지, 번식은 잘 이뤄지는지 등을 충분히 조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종은 수십 년 전 한두 곳에서만 표본이 채집됐다는 기록만 있을 뿐, 현재 그곳에 살아 있는 나무가 남아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 참나무는 안전할까
한국에도 도토리와 참나무가 많다. 다만 한국 참나무는 공백 분석에서 제외됐다. 국내에는 IUCN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한 참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한국 참나무도 보전 상태를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반도의 동식물이 빠른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최근 이례적으로 많은 산불이 일어난 만큼, 생태환경과 멸종위기 여부 등을 잘 살펴야 한다는 취지다.
국제적으로는 멸종위험이 비교적 낮다고 평가됐지만, 국내에서는 위기종으로 분류된 참나무도 있다. 이를테면 한국 자생 참나무 11종은 보고서에 등장하는 멸종위기 54종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국가적색목록은 제주와 남부에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개가시나무를 위기종으로 분류한다.
국내에서는 관련 보전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2024년 개가시나무 종자의 품질을 관리하고 묘목을 길러 자연 서식지에 옮겨 심었다. 이후 제주의 대체서식지에 심은 나무가 잘 정착하는지도 관찰하고 있다.
한두 그루 보유 넘어 '복원 가능한' 백업으로
생태 전문가는 희귀종 나무를 보존하고 안전하게 '백업'하려면 단순히 한두 그루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과거 표본이 채집된 곳을 다시 조사하고 새로운 개체군을 찾은 뒤, 자생지 곳곳에서 유전적으로 다양한 나무와 조직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 시설에 몰아놓고 불의의 사고 등으로 모두 사라지지 않도록 여러 기관에 나눠 보관하는 일도 중요하다.
기본적으로는 자생지를 잘 지키고 제3의 장소에 복원용 유전자를 확보해야 한다. 이은실 기청산식물원 부원장은 10일 <뉴스펭귄>에 "멸종을 막으려면 자생지를 보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자생지는 기후위기나 재난, 개발로 사라질 수 있으므로, 보전한 자원은 서식지 밖 보전기관에 보관했다가 언제든 다시 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복원에 쓸 종은 가능한 한 유전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 이 부원장은 "복원에 사용할 인공증식 개체가 충분하지 않거나 한 유전자원을 무성생식을 통해서만 반복해서 개체를 늘릴 경우에도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질 수 있고 종의 활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종에서도 다양한 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어야 자생지가 완전히 소멸해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멸종위기종 복원을 위한 장기적 계획수립과 다양한 시도와 연구, 작은 실패와 성공의 경험들이 쌓여 제대로 된 복원기술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서식지외보전기관들과 국립생태원, 생물자원관 등이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