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김다은의 웹소설] <27회>

최수문 선임기자 2026. 8. 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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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구덩이! 마른."

마른 구덩이! 내 입에서 나올 표현은 아니었다.

마른 구덩이라고 해도 누가 꺼내주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갑작스러운 폭우로 물이 넘쳐 요셉을 삼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교만을 무릎 꿇렸으니, 하나님이 구덩이에서 건져줄 도움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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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교보문고

III. 죄의 종의 기원

27. 마른 구덩이

“마른 구덩이! 마른…….”

잠에서 깨어나면서 내가 들은 선명한 목소리는, 내 목소리였다. 비몽사몽 간에 내 입술이 뱉은 소리였다. 침대의 하얀 시트에 감긴 몸은 여전히 수면 상태였지만, 내 목소리에 놀란 정신은 번개처럼 번쩍 눈을 떴다. 마른 구덩이! 내 입에서 나올 표현은 아니었다. 생전에 아버지가 썼던 표현이었다. 아버지 전용 표현이었다. 꿈을 꾼 것도 아닌데, 아버지가 특별한 경우에 아끼듯 사용하시던 그 절제된 표현을 내 입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뱉어내다니!

아버지가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나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켜, 앉았다. 절망과 게으름의 구덩이에서 몸을 드디어 일으켜 세운 느낌이었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칠수록 끈적끈적한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서, 나는 차라리 미동하지 않으려, 자포자기 상태였다. 하지만 잠결에 뱉어진 단어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침대에서 서둘러 내려섰다. 등뼈에 힘을 주고 전신을 제대로 세웠다.

방의 전신 거울이 나를 비추어주었다. 멋을 내기 위해서, 멋진 스타일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의 존재감을 점검하기 위해 기꺼이 사들인 비싼 거울이었다. 지금은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예상보다 나빴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고, 몸은 매력적인 선이 무너져 커다란 소시지처럼 둥글둥글해졌다.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받아서 달라 보인다고들 했다. 내가 나에게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나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빠져나온 구덩이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빨리 씻고 싶었다. 구덩이의 흔적이 남아 다시 빨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전의 삶과 결별하기 위해, 화려한 만큼 오만했던 삶과 결별하기 위해, 지금도 끊임없이 나를 부르는 세상에 혹해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나는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며칠 전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TV를 틀었더니,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특집에 아들의 사회적인 활동이 함께 소개되고 있었다. 나의 ‘세계적인 대담’도 매우 잘 편집되어 지나갔다. 내가 타격을 입기는커녕, 아버지가 남겨 놓은 후광으로 아들은 세상에서 더 빛나 보였다.

해바라기 씨앗들처럼 구멍이 뚫린 은빛 샤워기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방울방울 머리에서부터 발끝으로 흘러내렸다. 비누의 몽글몽글한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숨죽이고 있던 세포가 조금씩 눈을 뜨며 살아났다. 동그란 비누에서 나오는 거품의 가벼움이 몸에 붙어 있던 무거움을 벗겨냈다. 그렇게 잠 구덩이에 빠지게 했던 무기력증이 씻겨나가고 있었다. 비누의 산뜻한 향기가 온전히 구덩이 냄새도 제거하고 있었다.

타인의 악의적인 모함 때문에 명예가 크게 실추되었을 때, 아버지가 ‘마른 구덩이에 빠졌다’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셨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빠졌던 구덩이의 기억에서 연유한 절망적인 표현이라고 여겼다. 10년쯤 뒤에, 아버지가 근무하던 나라에서 문화적 오해를 받아 외교관으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때도, 아버지는 ‘마른 구덩이에 빠졌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표현의 의미를 묻게 되었고, 그 출처는 예상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은 산악지대여서 물이 귀했고,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많은 구덩이를 팠다. 물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병 모양으로 만들었기에 입구는 좁은 편이었다. 그 안으로 실수로라도 빠지면 결코 스스로 빠져나오기는 힘든 구조였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런 구덩이를 가장 어둡고 깊은 죽음의 구덩이로도 비유하기도 했지. 그런데, 요셉을 그의 형들이 그런 구덩이에 빠뜨린 것이다.”

나는 독실한 크리스챤의 아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요셉의 영웅담은 잘 알고 있었다.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었다. 야곱은 삼촌의 계략에 의해 원하는 여자가 아니라 그 언니와 결혼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다시 삼촌을 위해 7년 동안 양치기로 봉사해야만 했다. 그렇게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몸종에게서 얻은 아들이 12명이었고, 노년에 사랑하는 여자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이 요셉이었다. 야곱은 요셉을 편애했다. 형들은 광야에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옮겨 다니며 양을 쳤지만, 요셉은 채색된 옷을 입고 아버지 곁에 머물면서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루는 형들과 양들이 잘 있는지 살펴보고 오라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요셉은 길을 떠났다. 일종의 감시를 하라고 보낸 것이다. 멀리서 요셉이 오는 것을 본 형들은 그를 죽이자고 모의했고, 광야의 구덩이에 요셉을 빠뜨렸다. 그런데 요셉이 빠진 구덩이는 물이 없었고, 비어 있었다.

나는 보송한 수건으로 온몸을 닦고, 먹을 것을 챙겼다. 어머니로부터 배달되어 온, 하지만 먹지 않고 아무렇게나 쌓아둔 비상식량이 처음으로 감사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면서 식욕이 올라왔다. 붉은 토마토즙이 뜨겁게 데워졌을 때 올리브 오일을 넣고 저었다. 나는 피같이 붉게 끓은 토마토 수프를 양손잡이가 달린 수프 그릇에 담아서 식기를 기다렸다. 귀리 가루에도 뜨거운 물을 부어서 알갱이가 불어나도록 기다렸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미움을 산 점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고자질쟁이였고, 자신의 꿈 이야기로 잘난 척을 했다.

마른 구덩이라고 해도 누가 꺼내주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갑작스러운 폭우로 물이 넘쳐 요셉을 삼킬 수도 있었다. 동생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형들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수프 그릇의 양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마셨다. 온기를 머금은 토마토즙과 올리브 오일이 뒤섞이며 몸속을 데웠다. 몸 안으로 편안함이 찾아들었다. 음식을 먹던 요셉의 형들은 고개를 들고 지나가는 한 무리의 행렬을 보았다. 미디안 상인들이 낙타에 향품과 유황과 몰약을 가득 싣고 지나가고 있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보다 상인들에게 팔아버리기로 마음을 바꾼다. 은을 주고 요셉을 산 미디안 상인들은 애굽(이집트)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요셉을 노예로 팔았다. 야곱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이집트의 종이 된 것이다.

종!

붉은 토마토 수프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 마시고, 빈 수프 그릇을 탁자 위에 탁 놓았다. 아버지는 내가 빠진 함정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힌트를 주신 것이다. ‘마른 구덩이’라는 표현으로 나를 깨우신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과녁을 잘못 알고 있다고 어머니께 말했다고 들었다. 내가 살던 화려한 삶이 계속되기를 원하신 것은 아니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세상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항상 알려주려 하셨다.

나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진리의 길을 걸어보고 싶다.

진리로 향한 감정은 간절했지만, 진리로 향한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행동이 변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었다. 나는 서재로 들어갔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성경은 놔두고, 나는 아버지가 남긴 하얀 가죽 장정의 성경을 처음으로 손에 들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세상의 동산이나 부동산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고, 아들에게는 책 한 권 달랑 남긴 것에 서럽거나 상처를 입어서도 아니었다. 그런 결정은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무서웠다. 아버지가 남겨 놓은 유산이 무서웠다. 아버지가 남긴 저 거대한 유산을 내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몰라서 무서웠다. 여태 가지고 있던 모든 생각과 명분과 직관을 모두 내려놓고……진리의 길을 찾아갈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일단 길을 찾아 나서면 『천로역정』 못지않게 고난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런데, 성경책 첫 페이지 빈칸에 아버지가 친필로 적어 놓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담자야! / 한 구절을 이해하면, 성경의 다른 구절들도 잘 이해할 수 있다. /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 (고린도전서 7장 23절)>

아버지의 뇌경색에 의해 굳은 손으로 쓰신 필체였다. 나는 떨리는 손끝으로 고린도전서를 찾았다. 고린도……전서……7장 23절. 나는 23절을 그 앞 구절과 같이 읽어 보았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 또 그와 같이 자유인이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라 /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고린도전서7:22-23)

나는 이마를 탁자 위에 대고 몸을 구부렸다. 병실의 침대에서 아들의 ‘실패한 세계적인 대담’을 본 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언이었다. 나를 무너뜨린 ‘한 문장’을 통해, 내가 다른 성경 말씀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셨다. 나는 갑자기 잠잠해졌다.

나는 그동안 ‘한 문장’에서 나를 떼어낼 수 없었다.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수십 번 수백 번 곱씹었다. 너무나 각인된 탓인지 그 문장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 문장은 분명 내 안으로 들어와 있었고, 뜻을 몰라도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어떤 생명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성경의 한 문장이 나를 영혼의 구덩이 속에 처박을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성경의 한 문장이 내가 믿었던 정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을. 성경의 한 문장이 여태 살아온 나의 삶을 모든 기준과 습관과 세계를 흔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나는 무너질 것을.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말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두려워서 중얼거렸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엎드린 상태에서 아버지를 부르며 처음으로 눈과 코와 입에서 온통 물이 흘렀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 help, help me.

당시 아버지는 당신이 교만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셨다. 주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여 타인에게 질투나 분노를 샀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만을 무릎 꿇렸으니, 하나님이 구덩이에서 건져줄 도움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했다.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이 도움을 예비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우리를 돕는 것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셨다.

당시 요셉이 구덩이에서 나와서, 다시 애굽의 지하감옥으로 간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구덩이보다 더 어둡고 더 깊은 감옥. 그러자 아버지는 대답하셨다. 마른 구덩이는 나중에 예수님이 죽어서 묻혔다가 사라진 빈 무덤과 같다고. 나는 당시에도 지금도 이 비약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엎드린 채 기도했다.

하나님! / 아버지의 유언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 급합니다. / 성경의 ‘한 문장’을 읽을 수 있는 빛을 제게 허락하소서!

김다은은 ‘당신을 닮은 나라’가 1995년 제3회 국민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다. ‘덕중의 정원’ ‘훈민정음의 비밀’ ‘쥐식인 블루스’ 등 20여권 소설책을 출간하고, 다수 번역돼 해외 소개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한 폴란드 바르샤바대학 작가 레지던시를 비롯, 청송 객주 문학관,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레지던시, 해남 인송문학촌 토문재 레시던시에 참가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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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선임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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