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아버지의 깃발'의 그늘 속 이야기들

최윤필 2026. 8. 1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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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대를 땅에 꽂고 있는 맨 오른쪽 남자는 할론 블록(Harlon Block)입니다. 주 풋볼 대표선수였던 그는 개전 직후 동료 선수들과 함께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죠. () 21세의 그는 저 깃발을 꽂고 며칠 뒤 자신의 내장을 움켜쥔 채 전사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이 청동상 앞에서 전쟁의 영광을 읊어대는 장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오지마의 병사 대부분은 17~19세 소년들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 세 번째 병사는 나의 영웅이자, 동료 병사들의 영웅이던 마이크 스트랭크(Mike Strank) 병장입니다. 당시 24세여서 훈련소 시절부터 전우들이 '노인네'라고 불렀죠. 그는 '동생' 같은 전우들을 독려하며 '적을 무찌르자'거나 '조국을 위해 죽자'고 말한 적이 없었대요. 대신 이렇게 말했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모두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 앞줄 맨 마지막 병사는 애리조나주 피마 인디언 혈통인 이라 헤이스(Ira Hayes)입니다. 생존자인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서 영웅이란 찬사를 들은 뒤 기자들에게 이렇게 반문했어요. '함께 상륙한 내 부대원 250명 중 나를 포함해 고작 27명이 살아남았는데, 어떻게 내가 영웅일 수 있느냐'고요." "내 아버지는 1994년까지 사셨지만 평생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어요. 누가 찾아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게 했죠. '아버지는 캐나다로 낚시를 떠났고, 언제 돌아오실지 몰라요.' 해군 의무병으로 해병대에 차출됐던 아버지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숨져간 이오지마의 소년들을 수없이 지켜봤을 겁니다. 아버지는 '진짜 영웅들은 돌아오지 못한 녀석들'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브래들리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해병 약 7,000명이 숨졌다며 강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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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radley(1954.2.18~ 2026.6.5)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 이오지마에 상륙한 미 해병대가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촬영한 저 사진은 2차대전의 가장 상징적인 사진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 속 병사들 중 생존자 세 명은 곧장 귀국해 전쟁 채권 홍보요원으로 미국 전역을 돌며 영웅으로 환대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이내 잊혔던 그들의 그늘진 삶이 종전 65년 뒤인 2010년 한 작가에 의해 밝혀졌다. 영웅-꼭두각시처럼 웃었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전장에 남은 전우들과 전사자들에 대한 부채의식과 생존자 죄의식. 사진 속 병사 중 한 명을 자신의 아버지라 여겼던 작가 제임스 브레들리는 전쟁에 대한 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침묵의 사연이 궁금했다고 말했다. Joe Rosenthal, AP 연합뉴스

태평양 전쟁 막바지인 1945년 2~3월, 일본 본토 공습의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치른 이오지마(硫黄島) 전투에서, 미 해병은 2차대전 해병 전사자(2만4,511명)의 약 3분의 1인 6,821명을 잃었다. 부상자는 약 2만 명. 해병 역사상 단일 전투 최악의 피해였다.

상륙전 닷새째인 2월 23일, 가까스로 섬 남단을 점령한 미 해병이 수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촬영한 AP 종군기자(Joe Rosenthal)의 사진은 미국 거의 모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얼마 뒤 사진 속 주인공 중 생존자 세 명은 전쟁 채권 홍보요원으로 발탁돼 미국 전역을 돌며 영웅으로 떠받들렸다. 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워싱턴D.C 알링턴 미 해병대 전쟁기념관 광장에 그 사진을 입체화한 초대형 청동상을 건립했고, 섬 전체가 일본 자위대 기지가 된 이오지마섬 수리바치산 정상엔 지금도 미 해병대의 전공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2000년 10월, 수학여행차 알링턴 기념관을 방문한 위스콘신주 중학생 100여 명 앞에서 한 중년 남성이 짧은 즉석 강연을 했다. 우연히 현장에서 만난 그 남성이 동향인 위스콘신 출신으로 그해 5월 출간된 논픽션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의 저자인 제임스 브래들리(James Bradley)란 걸 알게 된 인솔자가 요청한 강연이었다. 며칠 뒤 학교 측은 브래들리의 동의하에 그의 강연을 채록해 인터넷에 올렸고, 그 글이 당시 이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였던 그의 책 못지않게 뜨거운 화제가 됐다.

“깃대를 땅에 꽂고 있는 맨 오른쪽 남자는 할론 블록(Harlon Block)입니다. 주 풋볼 대표선수였던 그는 개전 직후 동료 선수들과 함께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죠. (…) 21세의 그는 저 깃발을 꽂고 며칠 뒤 자신의 내장을 움켜쥔 채 전사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는 게 아니라 이 청동상 앞에서 전쟁의 영광을 읊어대는 장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오지마의 병사 대부분은 17~19세 소년들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 세 번째 병사는 나의 영웅이자, 동료 병사들의 영웅이던 마이크 스트랭크(Mike Strank) 병장입니다. 당시 24세여서 훈련소 시절부터 전우들이 ‘노인네’라고 불렀죠. 그는 '동생' 같은 전우들을 독려하며 '적을 무찌르자'거나 '조국을 위해 죽자'고 말한 적이 없었대요. 대신 이렇게 말했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럼 모두 엄마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 앞줄 맨 마지막 병사는 애리조나주 피마 인디언 혈통인 이라 헤이스(Ira Hayes)입니다. 생존자인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서 영웅이란 찬사를 들은 뒤 기자들에게 이렇게 반문했어요. ‘함께 상륙한 내 부대원 250명 중 나를 포함해 고작 27명이 살아남았는데, 어떻게 내가 영웅일 수 있느냐’고요.”
그러곤 마지막으로 자기 아버지 존 브래들리(John Bradley)를 소개했다. “내 아버지는 1994년까지 사셨지만 평생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어요. 누가 찾아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게 했죠. ‘아버지는 캐나다로 낚시를 떠났고, 언제 돌아오실지 몰라요.’ 해군 의무병으로 해병대에 차출됐던 아버지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숨져간 이오지마의 소년들을 수없이 지켜봤을 겁니다. 아버지는 ‘진짜 영웅들은 돌아오지 못한 녀석들’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브래들리는 이오지마 전투에서 해병 약 7,000명이 숨졌다며 강연을 맺었다.

이오지마의 깃발의 진실, 특히 자신의 아버지 존 브래들리를 비롯한 깃발 주역들의 사연과 운명을 추적해 2000년 5월 논픽션 '아버지의 깃발'(오른쪽)을 출간한 작가 제임스 브래들리. 생존자 증언과 일기, 미 해병대 공식 자료 등을 토대로 한 책이었지만, 수년 뒤 6명 중 2명이 실제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Jamesbradley.com

사실 저 짧은 강연이 500쪽 넘는 그의 책 요지이자 주제였다. 물론 책에는 깃발 게양 이후 전개된 전투의 지옥도와 깃발 주역들의 비극적 사연이 더 상세하게 담겨 있다. 저 강렬한 AP 사진은 사실 전투 직후 게양한 깃발을 큰 걸로 바꾸라는 명령에 따라 다음 날 깃발을 교체하는 장면이어서 그리 위험하거나 극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는 사실, 며칠 뒤 사진 속 6명 중 3명이 전사했고, 생존자들은 전장을 벗어났다는 사실, 그렇게 살아남아 ‘영웅’이 된 헤이스가 자괴감과 생존자 죄의식에 시달리며 알코올 의존증으로 고통받다 1955년 한 빈민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연, 또 다른 병사(르네 개그넌) 역시 불안정한 삶을 살다 79년 54세에 심장마비로 숨진 사연….

평범한 기업 홍보영상 제작자였던 브래들리는 아버지의 유품에서 발견한 한 통의 편지를 읽고 취재를 시작한다. 깃발을 게양한 직후 아버지가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여기 전투 상황은 다 아시죠. 저는 수리바치산 정상에 가장 먼저 오른 5중대(Easy Company)와 함께 있었고, 성조기를 게양하는 데 조금 기여했습니다. 그건 제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제대 후 고향 마을 장의사로 살면서 전쟁에 관한 한 "다 잊었다"며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버지의 50년 전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 침묵과 환호의 아득한 간극이 궁금해진 거였다. 이후 4년여간 그는 아버지와 함께 참전한 부대원-베테랑들을 수소문해 만나고, 그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등을 찾아 읽고, 해병대 공식 문건 등 전쟁 사료를 뒤져 사진 속 6명의 사연과 전후의 삶을, 퓰리처상 수상 작가 겸 저널리스트 론 파워스(Ron Powers)와 함께 재구성했다.

그의 원고는 “늙은이들이 전화기에 대고 흐느끼는 소리를 읽고 싶어 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등의 이유로 무려 27개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뒤 '반탐(Bantam)’이란 작은 출판사를 통해 2000년 5월 출간됐다. 그의 책은 46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6주 1위)에 올랐고, 2차대전 논픽션 문학서 중 가장 뛰어나고 또 성공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2006년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브래들리는 여러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 전쟁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참혹한 대가들, 국가가 낭만화한 전쟁의 선전 도구(영웅)가 돼야 했던 이들이 감당한 중압감과 생존자 부채의식, 죄의식 등 파괴적인 후유증을 함께 폭로했다. "진짜 영웅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란 말은 그들에겐 결코 겸양의 수사가 아니었다. 베트남전 포로 출신 정치인 존 매케인이 그에게 해준 말- “당신은 아마 영웅이란 칭호를 수용하는 영웅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할 것”-을 한 매체 칼럼에 인용하기도 했다.

AP 종군기자가 촬영한 이오지마 성조기 게양 사진은 전투 당일 꽂은 성조기가 너무 작으니 더 큰 걸로 교체하라는 명령을 수행하던 장면이었다. 수리바치산 정상 정복 직후 처음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담은 저 사진은 해병대 사진병의 작품이다. 깃대를 쥔 중앙의 병사 세 명 가운데 맨 오른쪽 철모와 얼굴 일부가 보이는 병사가 그의 아버지 존 브래들리인 것으로 2016년 해병대 조사 결과 확인됐다. Louis Lowery, wikipedia

반전이 시작됐다. 2014년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의 아마추어 역사가 등이 이오지마 전투 당시 기록사진과 영상, 군복의 세부와 장신구 등을 대조해 브래들리의 아버지 존은 첫 번째 성조기 게양에는 참여했지만 두 번째 사진 속 실제 주인공은 미시건 출신 해병 해럴드 슐츠(Herold Schultz)라는 주장을 한 지방지에 알렸다. 미 해병대는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 FBI 등과 함께 당시 사진과 영상 등을 정밀 분석해 2016년 명단을 공식 수정했다. 2019년에도 사진 속 또 다른 인물이 해병대 공식 발표 속 르네 개그넌(Rene Gagnon)이 아니라 아이오와 출신 해병 헤럴드 켈러(Herold Keller)란 게 확인됐다. 개그넌도 성조기 교체 과정에는 참여했지만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다.
제임스는 성조기 게양 당시의 어수선함과 이후의 세월 속에서 베테랑들의 기억과 진술이 왜곡됐을 가능성을 인정하며 해병대 공식 조사 결과를 흔쾌히 수용했다. 하지만 말했다. "내 아버지 등 그 청년들은 영웅 대접을 받으려고 그 섬에 가지 않았다. 그들이 사진 속에 있었든 없었든, 그들이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본질과 그 전쟁이 남긴 상흔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실제 주인공으로 확인된 이들의 유족들은, 종전 후 각각 우체국원과 전화선 가설기사로 살았던 슐츠(1995년 별세)와 켈러(1979년 별세) 역시 전쟁에 대해선 평생 언급하길 꺼렸다고 말했다. 켈러의 아들(Wayne)은 “주민들이 아버지를 기려주니 기쁘긴 하지만, 아버지라면 이 모든 관심을 부끄러워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슐츠의 의붓딸(Dezeen MacDowell)은 “아버지가 딱 한 번 ‘내가 그 사진 속 사람들 중 하나’라고 말해서 내가 ‘그럼 영웅이시네요’라고 했더니 ‘아니, 나는 그냥 해병이었어’라고 답했다”고 회고했다.

태평양 전쟁을 다룬 실화 기반 HBO 미니시리즈 ‘더 퍼시픽(The Pacific)’에는 과달카날 전투에서 명예훈장을 받고 전쟁 채권 홍보요원으로 활동한 해병대 하사관 존 바실론(John Basilone, 1916~1945)의 사연이 비중 있게 담겨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그는 심리적 압박감을 겪다 복무기간을 연장하고 전장에 복귀한다. 해병 5사단 27연대 1대대 C중대 기관총 분대장이 된 그의 첫 전장이 이오지마였다. 그는 상륙전 첫날 전사했다.

하지만 2차대전을 다룬 그 어떤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보여주지 않는 진짜 끔찍한 사연은 따로 있다.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초상화가 걸려 있던 히틀러의 집무실 장면이 상징적인 예다. 포드를 영웅시했다는 히틀러는 '인종주의'의 동지이자 독일 재무장화를 도운 포드에게 전쟁 전 ‘독일 독수리 대십자 훈장’을 수여했고, 포드사는 GM 등과 함께 독일 현지 법인과 공장에서 전쟁포로와 수용소 수감자를 동원해 종전 직전까지 군용 차량과 군수장비 등을 공급했다. IBM 독일 자회사(Dehomag)가 유대인 인구조사 및 수용소 관리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인종 청소를 효율화한 사실, 엑손 모빌의 전신인 스탠더드오일이 독일 기업(IG Farben)과 협력해 항공유와 탱크 연료 등 고급연료 합성 기술을 전수하고 다양한 우회 경로로 완제품을 공급한 사연, ITT(국제전신전화)사가 나치 통신장비 현대화에 기여하고 코카콜라 독일 지사가 원액 공급이 어려워진 콜라 대신 ‘환타’를 만들어 돈을 번 사연 등. 수많은 청년들이 ‘대의’에 목숨 바친 그 전쟁이 자본가에겐 대박 시장이었고, 그 덕에 미국이 대공황의 후유증을 말끔히 극복했다는 사실.(자크 파월의 책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서.)

미국 해병대에서 만 33년을 복무하고 1931년 예편한 전설적 해병 장군(소장) 스메들리 버틀러(왼쪽)와 2차대전 연합군 총사령관 출신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예편 후 버틀러는 "병사들의 목숨을 팔아 금융-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전쟁의 진실을 폭로하며 맹렬한 반전운동가로 변신했고 아이젠하워는 1961년 퇴임 고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권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workersvoiceus.org, 위키피디아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란 용어를 맨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2차대전 연합군 총사령관 출신 미국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다. 그는 1961년 1월 퇴임 연설에서 “정부 의사결정 과정에 군산복합체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잘못된 권력이 재앙적으로 커져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 '잘못된 권력'이 가능태가 아니라 현실태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만 33년 4개월을 해병으로 복무하며 명예훈장만 2개를 받은 전설의 미 해병 퇴역 장군 스메들리 버틀러(Smedley D. Butler)가 자신의 군 경력을 금융가와 자본가를 돕는 '고위급 깡패(High -class muscle man)'로 산 세월이었다고 자책하며 ‘전쟁은 사기다(War is a Racket)’란 책을 출간한 건 전간기인 1935년이었다. “1914년에는 미국 석유회사들을 위해 멕시코(탐피코)를 안전하게 다져주었고, 워너브라더스의 이익을 위해 아이티와 쿠바를 돈 벌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 1909~12년에는 브라운 브라더스 투자은행을 위해 니카라과를 정화했고, 1916년에는 설탕기업들을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을 해방시켰다. 1927년에는 스탠더드오일의 이익을 위해 중국에서 길을 닦았다.” 화학기업 듀폰, 철강기업 베들레햄과 US스틸, 가죽·신발·의류 회사들이 1차대전으로 거둔 막대한 수익과 그 과정에서 기업들이 동원한 원가 부풀리기 등 기만적 수법들, 군수품 과다 납품과 장부 조작을 통한 세금 포탈 행태 등도 함께 까발렸다.
그는 '전쟁 사기'를 종식하기 위해선 전쟁-군수 이윤의 전면 국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참전 여부를 정치가나 자본가가 아닌 직접 총을 들어야 하는 청년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투표로 결정하게 하고, 모든 군사력을 자위용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했다. “청년들은 월 9달러를 받으며 참호 속에서 사지가 잘리고 목숨을 잃었는데, 후방의 자본가들은 의자에 앉아 월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사기극이 바로 전쟁이다.”
버틀러는 33년 한 매체(Common Sense) 칼럼에 이렇게도 썼다. “그 시절 나는 암흑가의 범죄자들이 말하듯 ‘근사한 사기극(swell-racket)’을 벌이고 있었다. 훈장과 메달을 받았고, 진급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알 카포네에게 몇 가지 힌트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고작 시카고 3개 구역에서 사기극을 벌였지만, 우리 해병대는 3개 대륙에서 그 짓을 했다.

물론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쟁은 다르다'는 선악의 선전전과 자유민주주의의 애국적 호소,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지역적 이해, (미국)모병제에 따른 정서적 단절과 무관심이 '전쟁 사기'를 가리는 병풍들이다. '영웅 서사' 역시 전투 양상이 기술-특수전 형태로 전환된 지금도 꾸준히 생산-가공되고 있다. 군산복합시스템은 더욱 정교해졌고, 외주화-민영화로 더 확장됐다. 국방장관과 다국적 유전 개발회사 ‘핼리버튼(Halliburton)' CEO를 지낸 뒤 부통령이 된 딕 체니의 이라크전쟁 직후 핼리버튼은 이라크 석유시설 복구 프로젝트를 무입찰로 따냈다.

아이슬란드 해병 영화 '아버지의 깃발' 촬영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오른쪽)와 제임스 브래들리. 오른쪽 글씨는 이스트우드가 "위대한 이야기를 써준 제임스에게 감사한다"는 문구와 함께 남긴 그의 서명이다. Jamesbradley.com

제임스 브래들리는 위스콘신주 앤티고(Antigo)에서 장의사 아버지와 주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977년 위스콘신-매디슨대(동아시아사 전공)를 졸업했다. 기업 홍보영상 기획 제작자로 미국과 일본 영국 등 5개국에서 자회사를 운영하던 그는 첫 책 성공 이후 전업 작가 겸 강연자로 변신, 이오지마 인근 치치지마(Chichi-jima) 폭격전에 희생된 미군 조종사들의 사연을 담은 ‘플라이보이스(Flyboys, 2003)'와 20세기초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고발한 책(‘The Imperial Cruise', 2009) 등을 썼다. 2001년 ‘제임스 브래들리 평화 재단’을 설립, 베트남전 피해자 및 양국 청년 교류 프로그램 등을 지원해왔다. 지난해 출간한 소설 ‘Precious Freedom’ 홍보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 서사에 대한 해독제로서의 역사의 가치를 부각하며 “만일 대중이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 개입에 대한 진정한 역사를 알았다면 자녀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하는 걸 결코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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