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지시에도… 노란봉투법 시행령 안 만든 노동부
법적 구속력 없어 혼란 이어질 듯

고용노동부가 일명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에서 허용하는 ‘노동 쟁의’의 구체적 범위를 시행령으로 정하지 않기로 했다. 법 시행 이후 파업 등 ‘쟁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범위를 놓고 혼란이 이어지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구체적 기준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런데 노동부는 시행령 신설보다 기존의 해석 지침을 보강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1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노동부는 노란봉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노동 쟁의’와 관련한 판단 기준을 시행령에 담지 않고, 기존에 냈던 해석 지침에 구체적인 사례와 설명을 추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부는 이달 중 지침 보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시행령 작업은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위해선 지침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행정 지침은 법원과 노동위원회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없어 혼란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적 논란 우려에 노란봉투법 시행령 포기” 말 나와
삼성전자 등에서 촉발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N%)을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하는 이른바 ‘N% 성과급’과 ‘전남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문제는 노란봉투법으로 대폭 확대된 노동 쟁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댕겼다. 두 사안 모두 노사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우리(행정부)는 입법을 단순히 집행하는 심부름꾼이 아니다. 시행령, 시행규칙, 노동부 지침으로 명확하게 미리 정해 놓는 게 좋겠다”며 기준 마련을 노동부에 지시했다.

노란봉투법 이전의 노조법은 노동 쟁의 범위를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으로 제한했다. 기업의 투자나 사업 이전·재편 같은 경영상 결정 자체는 원칙적으로 노동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경영상 결정에 대한 파업과 태업은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합법적인 노동 쟁의 대상에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을 추가했다.
문제는 어떤 사업 경영상 결정이 노동 쟁의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가 이미 한 차례 기준을 제시했다. 노동부는 법 시행 전인 지난 2월 노란봉투법 해석 지침을 내놓고 ‘합병·분할·매각 등 경영상 결정 자체는 원칙적으로 노동쟁의 대상이 아니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근로 조건에 실질적·구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 전환 등은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초기업 노조는 ‘공장이 새로 생기면 전보 등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로 삼성전자의 전남광주 반도체 공장 신설 투자가 노사 협의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노동 쟁의 범위를 놓고 노사 간 해석이 계속 엇갈리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이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진짜 사장은 누구인가’를 의미하는 ‘사용자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란봉투법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도 사용자(사장)로 볼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는데, 노란봉투법에서 말하는 실질적·구체적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모호한 정의 탓에 지난달 10일까지 중앙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사용자성 판단 신청만 458건에 달한다. 경영계는 당초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시행령에서 노동 쟁의와 사용자의 구체적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
노동부는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지시 이후 시행령에 관련 조문을 넣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에 ‘구체적인 내용을 대통령령(시행령)으로 정한다’는 위임 조항이 없는 점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에도 시행령을 만드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규정할수록 모법인 노란봉투법에서 정한 범위를 행정부가 새로 제한하거나 보충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생긴다. 한 노동법 전문가는 “‘영업이익의 특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주는 이른바 N% 성과급은 쟁의 대상이 안 된다’고 시행령에 규정할 경우, 행정부의 월권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노동부 안팎에선 ‘노동부가 이런 법적 논란을 우려해 시행령 개정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시행령에 하나하나 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예시를 들거나 설명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지침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부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행령으로 만들게 되면 입법 예고 등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하지만 해석 지침은 시행령과 달리 대외적 법규로서의 효력이 없다. 노동부가 사례와 판단 기준을 아무리 세밀하게 제시해도 노사가 지침과 다른 해석을 주장하면 결국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거쳐야 한다. 반면 시행령은 노사 등에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과적으로 법 시행 전 지침을 통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했다”고 밝혔던 노동부가 약 반년 만에 같은 지침을 다시 손질하게 됐다는 문제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애초 국회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이라는 폭넓은 문구를 법에 넣으면서 구체적 기준이나 하위 법령 위임 근거를 충분히 마련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노동부는 경영상 판단 중 정리해고와 배치 전환만 합법적인 쟁의 대상이 된다고 했는데, 어떤 경우에는 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인지 지침에서 또 설명해야 한다”며 “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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