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참치왕의 ‘인생 항해’, AI 다큐에 담았다

이영관 기자 2026. 8. 1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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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첫 다큐
청춘에 전하는 ‘인생의 파도 넘는 법’
1969년, 서른 다섯의 나이로 동원그룹의 첫 어선인 ‘제31동원호’ 출정식에 참석한 김재철 명예회장의 모습. 10일 동원그룹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다큐멘터리에서 김 명예회장은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과 고민을 담담히 말한다./동원그룹

까까머리 소년 수십 명이 검정 교복 차림으로 수업을 듣는 1950년대 한 고등학교 교실. 한 학생의 명찰에 ‘김재철’이라고 적혀 있다. 10일 동원그룹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애니메이션 영상의 한 장면이다. AI(인공지능)로 재현한 김재철(92)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학창 시절이다. 서울대 농과대 장학생에 뽑히고도 담임 교사의 권유로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어로과에 진학했던 소년은, 곧바로 이어지는 실물 영상에서 아흔두 살 지금의 모습으로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남 탓을 하지만 챌린지(도전)를 어떻게 하느냐, 체인지(변화)를 어떻게 하느냐에 운명이 결정됩니다.”

1958년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의 무급 항해사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뒤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일군 김 명예회장의 삶과 경영 철학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이날 공개됐다. 1969년 동원산업 창업 이래 50년 넘게 방송사 등의 다큐 제작 제안을 모두 사양해온 그의 첫 영상 기록이다. 2분 안팎 영상 11편으로, 12일까지 사흘에 걸쳐 동원그룹 유튜브 채널에 차례로 공개된다.

AI(인공지능)를 이용해 만든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과거 모습./동원그룹

영상 제작비는 김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과 김남정 동원그룹 회장 형제가 전액 사비로 부담했다. 지난해 4월 아버지가 출간한 경영 에세이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의 메시지가 더 많은 젊은 세대에게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자서전의 영상판’이다.

김남정 회장은 이 프로젝트가 자칫 김 명예회장을 위인화하는 헌정 영상으로 보일 수 있다며, 인물이 아니라 메시지에 초점을 맞춰 달라고 거듭 주문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영상도 두 차례나 전면 수정됐다. 제작을 맡은 제일기획이 동원그룹 1~2년 차 신입 사원과 조직문화 담당자들을 상대로 사전 설문을 진행하며 콘텐츠 방향을 여러 번 다듬은 것도 같은 이유다. ‘요즘 세대에게 정말 가닿는가’를 고민하느라 제작 기간은 당초 예상보다 길어졌다.

영상은 ‘청춘에게 전하는 이야기’라는 콘셉트다. 가난한 소작농의 11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회사를 일구는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과 고민을 청년에게 담담히 들려주는 구성이다. 1982년 한신증권 인수로 금융업에 진출하고 2008년 세계 최대 참치 브랜드인 미국 스타키스트를 인수하며 영토를 넓혀온 과정에 대해 김 명예회장은 “기업은 다른 말로 환경 적응업”이라며 “환경에 맞춰서 적응을 해야지 옛날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 동원그룹

92세 창업주의 이야기를 젊은 감각으로 전달하는 도구는 AI다. 남아 있는 과거 사진과 영상을 보존·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 애니메이션으로 학창 시절을 재현하고 옛 사무실 풍경 같은 자료 사진도 AI로 만들었다. 여기에 김 명예회장이 대학과 사내 강연에서 남긴 실제 영상과 육성을 엮었다.

마지막 편은 청년 세대를 향한 김 명예회장의 당부로 끝난다고 한다. “이 세상 경험한 것은 다 부모님을 비롯한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서 되는 것이지 혼자 있어서 되는 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에는 늦었지만 AI에서는 선진국이 되자는 생각으로 AI에 지원을 하고 있고, 기술 집약적인 분야에 도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김 명예회장은 201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카이스트·서울대·한양대 등에 AI 인재 양성을 위해 지금까지 883억원을 기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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