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27] 집이 없다면 ‘보트하우스’도 낭만 아닌 고통

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2026. 8. 10. 23: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 투룸에 산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월 55만원짜리 상가주택이다. 경기도 분당에서는 꽤 저렴한 편이다. 내 첫 자취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고시원이었다. 참 많이 좋아졌다. 고양이들과 사는 데 큰 불편함은 없다. 그런데도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왔나’ 자책할 때가 있다. 점점 더 멀어지는 집값과 목수 일을 하며 본 좋은 집들 때문이다.

지난 8일, 정부가 부동산 세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종부세 등 보유세와 양도세의 과세 기준과 공제 범위를 고치겠단다. 2024년 기준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고지 인원은 약 46만명이었으니, 집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종부세를 내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결국, 전부 ‘남 얘기’다. 모든 주제를 부동산으로 채운 뉴스를 집중력 없이 소비하던 중, 논란이 된 그 ‘아이디어’는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의 페이스북 글 제목은 ‘버스-하우스(Bus House) 제안’이었다. 폐기되는 버스를 주거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대학가 청년들에게 단기성 주거 공간으로 제공하자고 했다. 농담 같지 않았다. 비용 추계도 했다. 버스 1대의 개조비를 약 5000만원으로 가정하고, 1만대(세대)를 공급하는 데 5000억이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운하의 보트하우스를 본 기억에서 착안했단다.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안한 ‘버스하우스’를 풍자하는 인공지능(AI) 이미지. /SNS 캡처

홀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동료가 있다. 그 역시도 황희 의원과 같은 것을 봤다. 그런데 그는 보트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의 근심과 고단함을 봤다고 했다. 그리스 산토리니 절벽에 층층이 포개진 집들은 우리 옆 동네 산비탈 주택가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두 이방인의 눈이 다른 이유는 금방 넘겨짚을 수 있다. 그는 30대였고, 집이 없었다. 낭만이 아니라 현실이 보였던 것이리라.

황희 국회의원은 억울할지 모르겠다. “청년들이 안정된 주택을 마련하기 ‘전 단계’까지만 활용하자”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황 의원의 전 단계는 얼마간일까? 나의 경우 첫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던 2012년부터 지금까지 15년이다. 취업할 때까지만, 돈 모을 때까지만, 결혼할 때까지만이었다. 고시원도 잠깐, 반지하도 잠깐, 이어지는 잠깐은 끝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까지만’들과 ‘잠깐’들도 모두 삶이다. 내 삶은 임시방편이 아니다.

정부가 이제 ‘내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보유세나 양도세만큼 월세가, 중도금이나 잔금만큼 보증금이 중요하게 다뤄지면 좋겠다. 전·월세 부담을 낮추고,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청약과 대출이 더 튼튼하고 쉬우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다. 뒤로 밀릴 일이다. 아마 공급 대책이 먼저일 테다. 그렇다면 적어도, 중간 어디쯤에서 버스하우스 같은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자.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