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열의 AI 시대 문화 오디세이] ③ AI와 함께 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상주 2026. 8. 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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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작가는 『토지』를 25년에 걸쳐 썼다.

물론 이 소설은 AI가 일상에 침투한 근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이라, 등장인물이 AI에게 질문하는 대목에 실제 챗GPT의 답변을 그대로 녹인 '의도된 장치'였다.

소설가가 AI와 함께 쓴 글이 인간 작가들의 작품을 제치고 최고의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3년 중국에서는 AI와 함께 단 3시간 만에 완성한 소설이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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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밤샘은 무엇이었나
◇ AI와 함께 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박경리 작가는 『토지』를 25년에 걸쳐 썼다.
우리는 그 소설을 읽으며 문장만이 아니라 문장 너머의 시간을, 지우고 다시 쓴 밤샘의 흔적을 함께 읽는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만약 그 밤샘이 사라진다면. 단 몇 시간 만에 완성된 소설이 최고의 문학상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

2024년 1월,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시상식장이 술렁였다. 수상자인 서른세 살의 소설가 구단 리에가 담담하게 "이 소설의 5% 정도는 챗GPT(ChatGPT)가 만든 문장을 그대로 썼습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이 "완성도가 높아 흠잡을 데 없다"고 극찬한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의 원고 일부가, 치열하게 고민한 소설가의 영혼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의 손에서 나온 셈이었다.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구단 리에). 작가는 수상 후 "소설의 5%가량은 챗GPT의 문장"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 소설은 AI가 일상에 침투한 근 미래 사회를 그린 작품이라, 등장인물이 AI에게 질문하는 대목에 실제 챗GPT의 답변을 그대로 녹인 '의도된 장치'였다. 심사위원들도 "AI 사용은 문제 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대중의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소설가가 AI와 함께 쓴 글이 인간 작가들의 작품을 제치고 최고의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문학 세계는 이미 전선(戰線)이 되어 있었다. 2023년 미국의 SF 잡지 클락스월드는 창간 이후 처음으로 신인 투고 접수를 중단했다. 챗GPT 등장 이후 AI로 쓴 소설이 하루 수십 편씩 쏟아져 들어와 편집부가 마비된 탓이다.

아마존 킨들에는 AI가 찍어낸 전자책이 범람했고, 결국 아마존은 한 사람이 하루에 출간할 수 있는 책을 세 권으로 제한하며 AI 사용 여부를 신고하게 했다. 하루 세 권. 이 제한선 자체가 이미 인간 작가의 속도가 아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2021년 국내에서는 AI가 집필하고 인간이 기획을 맡은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가 출간된 바 있다. 당시에는 신기한 실험으로 소비됐지만, 챗GPT와 제미나이(Gemini) 같은 생성형 AI가 대중화된 지금, 그 실험은 일상이 됐다. 웹 소설 플랫폼들은 하루에도 수백 편씩 올라오는 AI 표절 시비로 몸살을 앓는 중이고, 클로드(Claude) 같은 도구로 초고를 쓰고 다듬는 작가도 더는 드물지 않다.

AI 투고 폭주로 사상 처음 신인 투고 접수를 중단한 미국 SF 잡지 클락스월드.


여기서 오래된 질문이 되살아난다. 소설가의 밤샘은 대체 무엇이었나. 지우고 다시 쓴 문장, 버려진 원고, 작가가 통과한 삶이 책값에 포함되어 있다고 우리는 믿어 왔다. 그런데 2023년 중국에서는 AI와 함께 단 3시간 만에 완성한 소설이 문학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독자가 감동한 것은 문장 자체였나, 아니면 그 문장을 낳았을 밤샘이었나.

흥미롭게도 문학은 이런 날이 올 것을 미리 말해 둔 적이 있다. 반세기 전 프랑스의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책의 의미를 완성하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는 뜻이다.

같은 소설을 읽고도 누군가는 위로를 얻고 누군가는 화를 내듯, 이야기의 주인은 결국 읽는 쪽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문학 이론이었던 이 말이, AI 시대에는 눈앞의 현실이 됐다. 서점에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책이 꽂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야기는 남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이야기를 여전히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느냐다.

구단 리에의 실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신작에서 반대로 챗GPT가 95%를 쓰고 자신은 단 5%만 손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I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창의력을 더 발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문학은 죽은 것이 아니라, 저자의 자리가 넓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누가 썼는가"라는, 문학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질문의 답을, 이제 독자는 표지가 아니라 스스로 눈으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도열 웹케시그룹 미디어전략 이사 [정리 MBN 문화부 이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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