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 가족사의 반전...‘의사 집안’ 증조부 안상호·조부 안부호까지 불붙은 논란
일본 유학부터 대정친목회까지 안상호 행적 다시 조명
고종 진료 기록까지 등장한 의혹...역사적 사실 검증 필요
가족사·역사 평가는 구분해야?…온라인 확산 논란 과제

방송에서 언급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가 온라인에서 증조부 안상호의 이름과 연결되면서 친일 의혹이 제기됐고, 소속사는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다만 안상호의 일본 유학과 의사 활동, 대정친목회 참여, 고종 진료 기록 등을 놓고 해석이 엇갈리고 있어 관련 자료를 차분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의 출발점은 하영이 방송에서 증조부가 일본에서 양의학을 배운 뒤 한국에서 의사로 활동했다고 언급한 데서 비롯됐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해당 인물이 안상호라는 추정이 확산됐고, 그의 과거 행적을 둘러싼 각종 기록이 다시 주목받았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온라인에서 확산한 친일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안상호의 의학 이력 자체는 근대 의료사에서 살펴볼 대목이 있다. 그는 일본에서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한 뒤 귀국해 의료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의학을 배운 조선인 의사들이 국내 의료 발전에 기여한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일본에서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친일 행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반면 일본 제국주의 통치가 강화되던 시기에 어떤 조직에 참여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특히 대정친목회 참여 기록은 논란의 핵심으로 꼽힌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안상호는 1916년 결성된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단체의 성격과 당시 활동 내용을 친일 행위와 연결해 해석하는 연구가 있는 만큼 관련 기록은 친일 논란의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 또 1918년 매일신보에는 안상호가 일본인 아내와 결혼하고 자녀들을 일본식으로 양육했다는 내용이 실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인과의 결혼이나 일본식 생활문화 수용, 일본 유학이라는 개인의 이력만으로 친일 행적을 확정하는 데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정 단체에서 맡은 직책과 활동 내용, 당시 발언과 사회적 영향력, 식민 통치에 협력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역사적 평가의 근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지만, 등재 여부 하나만으로 모든 행적을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종의 사망을 둘러싼 의혹도 논란을 키운 요인이다. 안상호가 1919년 일본인 의사와 함께 고종을 진료했다는 기록이 알려지면서 고종 독살설과 연결됐지만, 진료 사실과 독살 의혹은 별개의 문제다.
독살설은 명확한 증거가 부족해 학계에서 사실로 확정된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진료에 참여했다는 기록만으로 독살에 관여했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하영의 가족사에는 의료계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기록도 이어진다. 조부 안부호 교수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전남의대 병리학 교실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센병 연구와 치료에 힘쓴 의학자로 소개된다.
특히 1949년부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고 연구한 경력이 알려지면서 국내 의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부친 안병문 역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거쳐 정형외과 전문의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하영의 친언니도 의료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하영이 언급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표현은 증조부에서 조부와 부친, 언니로 이어지는 가족의 의료계 활동을 의미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유명인의 가족사가 온라인에서 빠르게 소비되면서 역사적 사실과 추정, 평가가 뒤섞일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가족의 혈연관계와 조상의 행적은 구분해 바라볼 필요가 있으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당시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후손에게 연결하는 방식은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논란은 한 배우의 가족사를 둘러싼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식민지 시대 인물의 행적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라는 역사적 질문까지 던지고 있다. 안상호의 행적에 대한 판단 역시 추가 자료와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소속사의 해명과 온라인에서 제기된 의혹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확인된 기록과 해석을 구별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