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사실무근’으로 지워지지 않는 親日 기록[배우근의 롤리팝]

배우근 2026. 8. 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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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 측이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황상익 서울대 교수는 2010년 근대 의료사를 다룬 글(친일파 의사들의 생존법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프레시안)"에서 안상호를 직접 언급했다.

황 교수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의료인들을 살펴본 뒤 "1916년에 결성된 친일단체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한 유병필과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수록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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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측 “증조부 친일 사실무근”이라는데 사료엔 ‘친일단체 평의원’
배우 하영. 사진|넷플릭스


[스포츠서울 | 배우근 기자] 배우 하영 측이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런데 100여 년 전 기록을 따라가면 그렇게 간단히 닫을 문제는 아니다. 안상호가 친일단체로 평가받는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10일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안상호의 친일 행적 등 온라인상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논란은 하영이 최근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이어진 의사 집안을 소개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증조할아버지는 양의학을 일본에 가서 배워오셨다. 한양에 개원을 하신 첫 의사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증조부가 고종을 진료했고 이후 할아버지와 아버지, 언니까지 의사의 길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방송 이후 온라인에서는 하영의 증조부가 근대 서양의학을 공부한 의사 안상호라는 추정이 나왔다. 소속사도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점은 인정했다.

그리고 안상호의 일제강점기 행적이 다시 소환됐다. 황상익 서울대 교수는 2010년 근대 의료사를 다룬 글(친일파 의사들의 생존법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프레시안)”에서 안상호를 직접 언급했다.

황 교수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의료인들을 살펴본 뒤 “1916년에 결성된 친일단체 대정친목회에서 활동한 유병필과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거론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신중하게 선을 그었다.

안상호가 대정친목회에 몸담았다는 기록은 조금더 구체적이다. 황 교수는 1916년 11월29일 대정친목회가 결성될 당시 안상호가 윤치호, 유병필 등과 함께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는 내용도 언급했다.

대정친목회의 성격도 가볍지 않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역사자료에서는 대정친목회를 일제강점기 친일단체로 다룬다. 이후 이 단체는 다른 친일단체들과 함께 ‘내선융화’ 등을 내건 친일단체 연합에도 참여했다.

안상호 개인의 생활상을 전한 당시 기록도 눈길을 끈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한 안상호의 생활상이 소개됐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안상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나는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안 입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고 말했다. 일본식 생활과 자녀 양육 방식도 함께 소개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속사의 “사실무근”이라는 해명 이후 설명이 더 필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안상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수록자가 아니다. 황 교수 역시 안상호의 행적을 거론하면서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따라서 현재 확인된 자료만으로 안상호를 ‘친일인명사전 수록자’와 동일한 범주에 놓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그 반대 논리도 성립하지 않는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친일 성격의 단체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했다는 기록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친일인명사전 미수록’과 ‘친일 행적을 의심하게 하는 역사 기록의 존재’. 두 사실은 동시에 성립한다.

그럼에도 이 문제를 하영 개인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증손녀가 100여 년 전 증조부의 삶에 책임질 이유는 없다. 하영이 자신의 의료인 가족사를 소개했다는 이유만으로 선대의 선택까지 대신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후손과 선대를 분리해서 보는 것과 역사적 기록 자체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안상호가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더불어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는 당시 보도는 어떤 맥락이었나.

안상호의 이름은 ‘친일인명사전’에 없다. 그러나 사전에 이름이 없다고 사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간극의 사이를 “사실무근”이라는 네 글자로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kenn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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