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대란에…엔비디아는 HBM ‘스펙’ 낮추고, 애플은 중국산 칩 테스트

김유진 기자 2026. 8. 1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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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반도체를 필두로 반도체 값이 폭등하는 ‘칩플레이션’이 글로벌 빅테크들의 메모리 전략까지 바꿔놓고 있다.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을 주도하는 엔비디아까지 최신 제품에 탑재할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양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메모리 공급난 속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 것이다. PC·노트북 제조업체들이 저사양 메모리로 눈을 돌리는가 하면, 애플은 중국산 칩 적용을 위한 테스트까지 진행하고 있다. HBM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우위’가 한동안 유지될 전망이지만, 범용 D램·낸드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세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7월29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덜레스 국제공항 현대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는 동안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10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내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차세대 AI 가속기 ‘루빈 울트라’에 탑재할 고대역폭메모리(HBM) 스펙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엔비디아는 12단으로 구성된 HBM4E(7세대)를 넣을 예정이었으나, 그보다 사양이 낮은 8단 HBM4E나 HBM4(6세대) 탑재를 고려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12단 HBM4E와 비교하면 데이터를 처리하는 속도와 직결된 대역폭이 느리고 저장공간인 용량도 적다.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으로부터 최고 사양인 HBM4E 12단 샘플을 공급받은 엔비디아가 ‘스펙 하향’을 검토하는 것은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D램 수요 폭증으로 물량 확보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HBM 생산능력(캐파)은 제한적인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 ‘대항마’를 자처하는 AMD도 AI 가속기 모델에 따라 메모리 사양을 조정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일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더 큰 용량과 대역폭을 갖춘 메모리의 총소유비용(TCO) 이점이 크지 않다면 메모리 구성을 조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HBM과 고성능 D램 등 AI 서버향 메모리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비용 절감을 위해 저전력D램(LPDDR) 채택을 늘리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메모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AI칩 공급업체들이 공급 부족과 높은 비용으로 인해 저용량 HBM을 채택할 유인이 커질 것”이라며 “메모리 업체들이 내년까지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빅테크들의 메모리 조정은 수급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전력 효율과 비용, AI 추론 모델 적합도 등을 고려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엔비디아는 AI칩 성능 저하 우려에 “고객에게 최고의 성능과 효율성을 제공하기 위해 컴퓨팅, 네트워킹 및 메모리를 지속적으로 최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메모리 공급난이 심화하자 델, HP 등은 올해 초 PC·노트북에 탑재하는 메모리 사양을 낮추기도 했다. 애플은 아예 중국산 범용 메모리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9일(현지시간) 애플이 중국에서 판매하는 아이폰, 맥북 등 일부 제품에 중국 창신메모리(CXMT) 칩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초기 단계 공급을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산 메모리 사용은 미 정치권의 ‘중국 견제’ 분위기를 고려하면 민감한 문제임에도 메모리 원가 부담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풀이된다. 애플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과의 가격 협상을 위해 중국산 칩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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