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로 확대되는 미·중 경쟁… 한국의 탈출구는?
세계 무역 증가세 둔화 속
AI·디지털 분야 무역 약진
미·중간 경쟁 전선도 확대
한국, 신뢰·실용 전략 필요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은 한국의 수출이 수입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한국의 무역흑자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화의 주제를 더 키워 세계무역 동향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빠르게 느는 서비스 무역
—세계무역 추이는?
“WTO(세계무역기구)에 따르면 2025년 세계 상품수출은 약 26조3000억달러, 서비스 수출은 약 9조6000억달러이다. 서비스가 전체 상품·서비스 수출의 약 27%를 차지한다. 특히 디지털 방식으로 제공되는 서비스 수출은 2025년 5조2600억달러로 전년보다 10% 증가해, 세계무역의 무게 중심이 상품 판매를 넘어 데이터·클라우드·소프트웨어·금융·전문서비스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도 제조상품 선적 중심에서 제품에 결합된 소프트웨어·운영서비스·지식재산까지 함께 수출하는 구조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올해 세계무역 전망은?
“지난해보다 크게 둔화하겠으나,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WTO는 세계 상품교역량 증가율이 2025년 4.6%에서 2026년 1.9%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무역이 예상보다 견조했던 데에는 관세 인상 전 조기구매, 공급망 조정, AI(인공지능) 투자, 무역 상대국 다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올해 상품과 서비스를 합친 실질교역물량 증가율 전망치는 세계은행 2.9%,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1%, IMF(국제통화기금) 3.5%이다. 기관별 수치는 다르지만, 모두 2025년보다 둔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품무역이 둔화하는 이유는?
“첫째, 지난해 관세 인상 전 조기 수입의 기저 효과 때문에 올해 상대적 증가율이 둔화됐다. 둘째, 고율관세가 누적된 영향이 크다. 셋째,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운송비가 상승했다. WTO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올해 상품교역 증가율이 1.4%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상품무역 지표도 기준선 100을 웃돌고는 있지만 상승세는 약화되고 있다.
다만 AI 투자는 세계무역의 버팀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AI 관련 제품은 2025년 세계 상품무역 증가분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올해에도 반도체·컴퓨터·데이터센터 장비가 세계무역을 견인하고 있다.”
—서비스 무역 전망은?
“상품무역보다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무역 증가세도 세계 평균을 웃돌 전망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올해 세계무역의 핵심은 ‘교역 침체’보다 ‘성장률 둔화’이며, AI·디지털 서비스·아시아 공급망이 전통 제조상품 무역의 둔화를 방어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화는 아직 진행 중
—세계화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나?
“세계화가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용 최적화와 대량생산 중심의 ‘세계화 1.0’에서 회복력·안보·표준을 중시하는 ‘세계화 2.0’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WTO에 따르면 세계 상품무역의 약 72%가 여전히 최혜국대우, 즉 다자무역 규범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기업은 가격뿐 아니라 공급망 중단 위험, 특정국 의존도, 강제노동·탄소배출 규정, 데이터·원산지 추적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고차 방정식에 직면해 있다.”
—한국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 기업은 미국·유럽·아시아에 생산기지와 공급망을 갖고 있고, 반도체·배터리·조선·방산처럼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한 분야에 강점이 있다. 해외생산 확대 과정에서도 국내 연구개발과 부품 생태계가 약해지지 않도록 핵심 기능을 함께 키워야 한다.”

—미·중 간 경쟁은 어떻게 될까?
“이미 장기적·구조적 경쟁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단기간에 끝나기는 어렵다. 경쟁 전선은 관세에 더해 반도체·AI·클라우드·배터리·희토류·통신장비·기술표준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첨단기술·자본·동맹 네트워크를,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제조능력·원자재·중간재 공급망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교류를 끊어버리는 디커플링 가능성은?
“낮다.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분리가 진행되더라도 범용 제조·소비재·에너지·기후 분야에서는 제한적 거래와 협력이 유지되는 ‘관리된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전략 필요한 한국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나?
“미국과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투자 파트너’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위기 때 공급 가능한 생산능력, 투명한 원산지, 노동·환경 기준을 충족하는 공급자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조선·방산·전력기기 분야에서 미국의 산업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 대미 투자가 생산기지의 미국 이전에 그치지 않도록, 미국에는 현지 생산·고객 대응 기능을 두고, 한국에는 핵심 연구개발·장비·소재·부품·소프트웨어·인력양성 기능을 남기는 이중 거점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과의 관계는?
“중국과는 ‘거래하되 의존하지 않고, 경쟁하되 단절하지 않는’ 관계가 바람직하다. 중국은 여전히 큰 인접시장이자 중요한 중간재 공급처임과 동시에 중국 기업은 한국의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

—두 나라 사이에서 경제안보를 어떻게 지켜야 하나.
“경제안보형 다변화는 특정 국가나 품목의 공급망에 문제가 생겨도 생산이 멈추지 않도록 대체공급처·재고·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규범과 신뢰, 중국에는 시장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접근하되 한국 기업의 자율성과 국내 부가가치를 지켜야 한다. 또 미국의 기술통제는 중국의 추격을 늦추는 동시에 자립 투자를 촉진하는 측면이 있다. 한국 기업은 어느 한쪽의 완전한 승리를 전제로 하기보다 기술·시장·공급망별 위험 수준을 나눠 대응해야 한다.”
세계무역 5대 변수
—세계무역이 한국 무역에 영향을 미칠 변수를 다섯가지 꼽는다면?
“첫째, AI·반도체 경기이다. 현재 메모리와 서버 수요가 수출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미국의 AI 투자 조정이나 메모리 가격 상승세 둔화 시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차세대 HBM(고대역폭 메모리), 첨단 패키징, 장비·소재, 서버·네트워크·전력기기·냉각장치로 수출 기반을 넓혀야 한다.
둘째, 주요국의 관세·통상 정책이다. 미국의 강제노동 관련 301조 조치뿐 아니라 원산지·보조금·과잉생산·현지조달 규정이 강화될 수 있다. 현지 생산, 공급망 다변화, 원산지 관리, 국내 연구개발과 핵심 부품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
셋째, 중동 사태의 장기화이다. 원유·가스 가격, 해상 운임, 보험료 상승이 주요 위험인 만큼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장기 계약, 대체항로 확보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넷째, 중국의 공급과잉이다. 중국의 내수 부진과 저가 수출로 한국의 화학·철강·배터리 산업이 압박받고 있다. 범용 제품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고 인도·아세안·중동 등 제 3시장을 확대해야 한다.
다섯째, 탄소·디지털 규범이다. 탄소국경 조정제도, 공급망 실사, 데이터 규제는 중소 수출기업의 비용을 늘리게 된다. 제품별 탄소·원산지 데이터 지원 체계와 중소기업 공동 대응 플랫폼을 강화해야 한다.”

☞ ④ 편에 계속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