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과민증, 한국의 불감증

일본 주재원들은 초기에 정착할 때 일본 특유의 매뉴얼 문화 때문에 난관을 겪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셋집을 구하려고 맨션 관리회사에 심사를 신청하면 현지 휴대폰 번호를 요구한다. 그래서 휴대폰을 개통하러 가면 주소와 계좌를 요구한다. 일단 계좌를 만들러 은행에 가면 주소와 휴대폰 번호를 요구한다. 각 기관이 내국인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똑같이 요구해 발생하는 일명 ‘무한 삼각 루프’다. 주재원들은 현지 부동산 전화번호를 빌리는 등의 우회로로 문제를 해결한다. 민원 창구에서 목청을 높인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매뉴얼에 적힌 요건과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곳이 일본이다.
지나친 매뉴얼 집착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오지만, 최근 일본은 매뉴얼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하는 중이다. 구마모토 지진으로 폭발 사고가 난 이온몰에서 4500명이 매뉴얼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해 대참사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아 7명이 사망했다.
이번 지진 이후 일본은 과민해 보일 만큼 매뉴얼을 새로 보완하고 있다. 이온몰에 귀중품을 가지러 돌아갔던 직원 3명을 잃은 의류회사 온워드는 전국 직원들에게 휴대폰과 열쇠 등 귀중품은 항상 몸에 지니도록 의무화했다. 공장 굴뚝이 붕괴된 일을 계기로는, 활성 단층대 위 건물의 내진 기준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일본의 긴장감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최근 도쿄도는 외국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지하 방공호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도쿄역 지하 주차장과 아자부주반역 비축 창고를 폭격 시 폭풍과 파편, 건물 붕괴 위험까지 고려해 개조한다는 계획이다.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대는 북한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북한 미사일에 피폭될 가능성이 훨씬 높은 한국에서는 이를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다. 한국에서 북한 미사일 뉴스는 무관심 속에 묻힌다. “잃을 게 많은 북한이 설마 전쟁을 하겠어?”라는 불감증과 함께, 민방위 훈련도 존재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전국 주차장이 유사시 대피소로 지정돼 있다지만, 일본처럼 붕괴 위험까지 고려한 방공호를 만든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카이치 정권이 ‘비핵 3원칙’까지 바꿔 안보 전략을 대전환하려는 배경에도, 일본 특유의 긴장감과 대비 의식이 깔려 있다. 중국의 군사 활동 확대, 북·중·러 군사 협력 등 주변은 급변하는데, 미국은 이란 전쟁에 힘을 빼며 동맹국 안보는 각자 책임지라는 태도다.
하지만 정작 더 위험한 한국에선 이런 국제 정세에 대한 논의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방 ‘빈총 경계’, 미군 무인기 오인, 국방 장관의 탈영 의혹, 정치보복성 육해공 사관학교 통합 같은 황당한 뉴스만 넘쳐난다. 일본의 과민증과 한국의 불감증 중 어느 쪽이 소중한 가족과 나라를 지켜줄지, 답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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