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마지막 순간마다 '병원'으로…요양시설 임종 돌봄 ‘사각지대’
임종 앞두고 병원으로 옮겨지는 노인 57%…의료비 부담도 크게 늘어
가족 80.6% 요양시설 임종 돌봄 필요성 공감…현장 인력은 턱없이 부족
연명의료 결정부터 사망진단까지 제도 공백…시설 임종체계 마련 시급
[지데일리] 병원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이 노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선택일까.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디에서 맞이할 것인지를 두고 우리 사회의 노인 돌봄 체계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요양시설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노인 상당수가 임종을 앞두고 다시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지만, 정작 가족과 시설 관계자 상당수는 익숙한 생활공간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의 ‘노인요양시설 임종기 돌봄 체계 마련을 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65세 이상 사망자는 28만6149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77.4%에 해당하는 22만1462명이 의료기관에서 숨졌다.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사망한 비율은 7.1%로 2013년 5.1%보다 높아졌지만 의료기관과는 여전히 큰 격차를 보였다.
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노인의 임종 장소를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뚜렷해진다. 사망 3개월 전 노인요양시설을 이용했던 수급자 2만7760명을 분석한 결과 시설에서 임종한 비율은 40.5%에 그쳤다. 57%는 임종이 가까워진 시점에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랜 기간 머물던 요양시설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보다 급성기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임종 장소는 의료비에도 상당한 차이를 만들었다. 사망 한 달 전 기준 1인당 월평균 총의료비는 요양시설에서 숨진 노인이 142만5000원이었지만 병원에서 사망한 노인은 614만5000원으로 약 4.3배 높았다.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노인은 임종이 임박할수록 입원과 응급실 이용이 증가하면서 의료비 지출도 크게 늘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임종기 의료 이용이 집중될수록 건강보험 재정 부담 역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모든 노인이 시설 임종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사 결과 상당수 가족과 시설 관계자는 요양시설에서의 임종 돌봄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입소자 가족 보호자 530명 가운데 80.6%는 요양시설 내 임종기 돌봄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88.3%는 연명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는 데 동의했다.
시설에서 임종을 희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한 직원들의 돌봄을 받으며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어서’로 45.3%를 차지했다. 시설장과 간호책임자의 68.1%, 계약 의사의 63%도 시설 내 임종기 돌봄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문제는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현장의 구조적 제약이다. 요양시설은 병원과 비교해 의료서비스 제공 범위가 제한돼 있고, 임종 환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대응할 의료 인력도 충분하지 않다.
사망진단서 발급을 둘러싼 절차적 어려움과 의료적 판단에 따른 법적 분쟁 가능성도 시설 관계자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면 시설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병원 이송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원하는 임종 장소를 충분히 선택하기 어렵다. 특히 고령 환자의 마지막 시간이 반복적인 응급실 방문과 병원 입원으로 채워진다면 환자에게 신체적 부담을 줄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경제적·정서적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필요한 것이 적극적인 치료인지, 통증과 불안을 줄이는 돌봄인지 판단할 수 있는 체계도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연구진은 요양시설에서 임종기 돌봄이 가능하도록 서비스 지침을 마련하고 관련 수가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 범위를 요양시설을 비롯한 지역사회로 확대하고 계약 의사, 가정간호 등 의료 인력과 시설 간 연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요양시설은 치료와 생활 지원을 제공하는 공간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돌봄 공간으로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서는 시설에 임종을 맡기라는 요구보다 먼저 의료진 연계, 응급상황 대응체계, 사망진단 절차, 종사자 교육, 가족과의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노인의 마지막 선택이 병원 이송이라는 관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환자의 의사와 가족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안전한 임종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