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억 수주 따내고도 '쉬쉬'…소부장 업계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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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산시에 거점을 두고 반도체 장비·부품을 납품하는 A사는 올 들어 1500억원에 가까운 수주를 따냈다.
9일 한국경제신문이 DART 공시를 분석한 결과 코스닥 상장사 중 '반도체 제조용 기계 제조업' 업종에서 공시한 단일판매·공급계약(기재 정정 제외)은 올 상반기 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6건)보다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는 최근 사업연도 매출의 10% 이상이면서 3억원 이상인 단일판매·공급계약을 수주하면 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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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은 “왜 주가 못 올리나” 성토
정부는 PBR 낮으면 상속·증여세 강화
소부장 “실적 알려야 가치 인정받는데” 하소연

경기 안산시에 거점을 두고 반도체 장비·부품을 납품하는 A사는 올 들어 1500억원에 가까운 수주를 따냈다. 지난해 연 매출이 500억원도 채 못 미쳤던 점을 감안하면, 리드타임을 고려해도 벌써 실적이 세 배 이상으로 뛰어오른 셈이다. 하지만 A사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한 계약은 다섯 건도 되지 않는다. 회사에 물량을 주문한 대기업이 “수주 사실을 공시하거나 알리지 말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의무공시 대상이 아닌 계약은 자율 공시는 물론 보도자료도 낼 수 없다”면서 “요즘은 아예 의무공시 기준에 걸리지 않도록 계약을 여러 건으로 쪼개 발주하는 사례까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계가 대기업의 ‘비(非)보도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반도체 업황이 회복되면서 대기업들이 보안을 이유로 협력사에 “우리와 거래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9일 한국경제신문이 DART 공시를 분석한 결과 코스닥 상장사 중 ‘반도체 제조용 기계 제조업’ 업종에서 공시한 단일판매·공급계약(기재 정정 제외)은 올 상반기 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6건)보다 네 배 가까이 증가했다. 업황 회복으로 수주가 늘어난 영향이다.
그러나 의무공시 대상이 아님에도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개한 자율 공시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37.5%에서 올해 상반기 31%로 오히려 낮아졌다. 만일 의무공시를 하더라도 계약 상대방을 공개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국내 반도체 관련 제조업체’ 같은 식으로 상대를 모호하게 표기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는 최근 사업연도 매출의 10% 이상이면서 3억원 이상인 단일판매·공급계약을 수주하면 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기업의 성과를 알리고,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수주업체는 이 기준에 미달하는 계약도 판단에 따라 자율 공시할 수 있다. 공시에는 계약 상대방과 금액, 기간 등 계약 전반에 관한 사항이 담긴다.
대기업에 반도체 소재와 부품, 장비를 납품하는 협력 업체들은 요즘 들어 자율 공시는 커녕 보도자료 배포도 사실상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소부장 업체 대표는 “보도자료에 ‘S사’나 ‘L사’처럼 알파벳 이니셜만 적는 것조차 불편하다고 말하는 고객도 많다”면서 “과거에도 보안 요구는 있었지만, 최근 국면에서 훨씬 심해졌다”고 말했다.
협력사들은 이 같은 관행이 기업가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공급망에 진입해 실적이 크게 늘어도 이를 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해 투자자들의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증시에서 자금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로 집중되면서 코스닥 시장에 포진한 상당수 소부장 기업은 탄탄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최근 주가 상승 흐름에서도 소외된 곳이 많았다.
최근 발표된 세제개편안도 업계의 고민을 키우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3일 코스닥 상장사 가운데 최근 6년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업종별 하위 10%인 기업은 상속·증여세 평가 시 현행보다 최소 30% 높은 가격으로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의도적인 저평가를 통한 세금 회피를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소부장 업계는 “실적을 적극적으로 알릴 수 없는 현실을 외면한 제도”라는 반응도 많다. 한 업체 대표는 “주주들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를 걸어 ‘주가를 왜 못 올리느냐’고 항의한다”며 “탄탄한 실적을 시장에 보여주고 싶어도 고객사 눈치를 봐야 하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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