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아야' 구제되는 피해자들… 형소법 유감, 부디 행운을 빕니다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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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8월, 기자에게 '세종시 여중생 집단성학대 사건' 피해자 정연수(가명)씨가 던진 의문이다. 연수씨는 중학생 때 잔혹한 성범죄를 겪고 수년 뒤 용기 내 고소했지만, 경찰에선 '운 나쁘게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불송치로 사건이 묻힐 뻔했으나, '운 좋게도' 검사 재수사로 1년 5개월 만에 기소돼 결국 가해자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런 몇 사건들이 전체적인 수사와 기소 분리 원칙을 흐트러뜨릴 명분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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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운 좋아야 구제되는 제도 정상이냐"
"그런 몇 사건 때문에" 개혁 주도 인사의 말
'그런 몇 사건' 억울함 없게 하는 게 검찰 일
文 '수사지휘권', 李 '보완수사권' 폐지 반복
'정치검찰' 사라졌나… 범죄 피해자들 '울분'

"피해자 운이 좋아야 문제가 해결되는 이 제도 자체가 정말 잘못된 것 아닌가요?"
1년 전 8월, 기자에게 '세종시 여중생 집단성학대 사건' 피해자 정연수(가명)씨가 던진 의문이다. 연수씨는 중학생 때 잔혹한 성범죄를 겪고 수년 뒤 용기 내 고소했지만, 경찰에선 '운 나쁘게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 불송치로 사건이 묻힐 뻔했으나, '운 좋게도' 검사 재수사로 1년 5개월 만에 기소돼 결국 가해자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연수씨는 총 8번이나 조사를 반복해 받으며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야 했다.
"그런 몇 사건들이 전체적인 수사와 기소 분리 원칙을 흐트러뜨릴 명분이 되는가."
올해 2월, 기자가 '검찰개혁'에 앞장선 한 여권 국회의원에게 성폭력 등 민생범죄에서의 초동 수사 오류 피해 등 검사 직접 보완수사 폐지 부작용 우려를 표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당시 그는 "그런 예외적인 사건들은 잘할 수 있게 다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검사의 보완수사, 불송치 재수사를 대신해 만들어진 장치는 '경찰 1개월 내 보완수사' '보완수사 요구 횟수 무제한' '제대로 안 될 시 다른 기관에 요구' '법정 증거로 쓸 수 없는 사실관계 확인' 등이다.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에 울분하는 피해자들

연수씨 건을 비롯해 부산 돌려차기, 광주 여고생 살해 등은 '그런 몇 사건'이다. 당초 검찰 제도는 '그런 몇 사건'을 법률가가 한 번 더 제대로 꼼꼼하게 들여다보라고 만들어졌다. 1차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고문,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 공정성 훼손 등에 제동을 걸도록 한 것이다. 꾸며진 기록만 보고 사건 실체를 파악하거나, 수사관이 스스로 내린 결론을 바꾸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보니 직접 수사권이 주어졌다.
'그런 몇 사건' 피해자들은 개정 형사소송법이 결국 1차 수사기관 통제를 약화해 국민 보호를 강화하지 못하는 건 물론, 사건 핑퐁에 끼어들 기관만 더 늘어날 것이라고 호소한다. '다른 장치'로 추가한 '7대 범죄 전건송치'도 범위가 제한돼 총체적으로 살필 수 없고, 기록만 보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점은 매한가지다. 개정 법 195조 2항엔 '검사는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라는 선언이 삽입됐지만, 정작 이를 구현할 196조가 통째로 지워져버렸다.
진단 같은데, 처방 늘 엉뚱한 '검찰개혁'

시민을 위해 부여된 검사의 권한이 왜곡돼 쓰이는 건 분명한 병폐다. 문제는 검찰개혁 의제만 등장하면 진단과 다른 처방이 나온다는 데 있다. 진단은 바뀐 적이 없다. '정치검찰'.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재임 시절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의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손에 잡고 흔들며 물었다. "무엇이 흔들리나. 옷이 흔들린다. 흔드는 것은 어디인가."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총장 인사를 하기도 전에 윤석열 전 대통령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히며 검찰에 메시지를 던졌다.
권력 입맛에 따라 수사·기소하거나, 권력이 되길 자처하는 검사들을 도려낼 필요성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허나 처방은 늘 엉뚱했다. 2021년 문재인 정권은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탄생시켰다. 2022년 윤석열 정권은 시행령으로 '검사 직접수사 개시 범죄'를 되레 확대했다. 2026년 이재명 정권은 '검사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고, 곧 '중대범죄수사청'을 출범시킨다. '수사·기소 일원화' 특별검사는 6개째로 역대 정권 중 가장 많고,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산하다. 손엔 검찰 대신 새 옷이 쥐어졌다. 이 옷은 흔들리지 않을까.
노무현의 숙제? 제물이 된 건 무엇인가

개혁의 명분으로 호명된 것들은 연일 신문을 도배한 '대장동 개발비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 정치권력 관련 특별수사들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재명 대통령 등에 대한 몇 사건. 그러나 99%의 형사사건은 이름을 가진 적이 없다.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와 사건 지연 일상화를 부른 수사지휘권 폐지, 1차 수사기관의 미비·오류 또는 조작·은폐 교차 검증을 약화하는 보완수사권 삭제로 삶이 달라지는 쪽은 후자다.
여당 일부는 "내주신 숙제를 끝냈다"며 개정 형소법을 노 전 대통령 묘에 바쳤다. 정작 그의 유족인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인의 뜻과 다르다, 국민의 고통이 눈에 보인다"며 반대했다. 약자의 편에 섰던 노 전 대통령 앞에 바쳐진 제물은 무엇인가. 도려내야 하는 환부는 이름을 바꿨고, 피해자는 제도 그 자체로 보호받지 못하고 수사관과 검사 등 각 주체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개정 형소법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이 대통령이 지금은 법을 완독했을까.
연수씨의 1년 전 질문에 대해 '걱정 말라'는 답을 해주지 못한 채, 새로운 제도에 적응해야 할 피해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7일 "안타깝지만 저처럼 혼자 수사기관에 찾아가지 말고, 돈을 모아서 꼭 변호사를 선임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이 제도를 둘러싼 모든 우려가 정녕 기우이길, 설계자들의 뜻대로 잘 운영되길 바란다. 아울러 억울함을 풀어나가야 하는 범죄 피해자들에게도 부디 행운이 따르길 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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