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반토막에 집값 2억 뛰었다"…한국인 우울증 역대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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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로만 보면 한국 경제는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988억9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62.8% 급증했다. 우울증 환자는 역대 최다이고,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7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이 증권 계좌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109만6509명으로, 이 가운데 43.29%가 손실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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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도 불안, 없으면 초조
우리들의 '블루'스
롤러코스피에 "상투 잡았나" 우울증
집 없는 박탈감, 稅 걱정에 잠 못들어
정치권 짜증나 뉴스앱도 삭제
'블루 지옥' 갇힌 가혹한 여름

수치로만 보면 한국 경제는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988억90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62.8%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8%에 달했다. 한국은 ‘반도체 특수’로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다. 우울증 환자는 역대 최다이고,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주식, 부동산, 세금, 정치 등 이른바 ‘4대 블루(우울)’가 한국인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결과다.
7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달 실시한 설문에서 향후 1년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37%로 ‘좋아질 것’이라는 답(34%)을 웃돌았다. 이 조사에서 올 들어 처음 ‘비관’이 ‘낙관’을 앞섰다. 살림살이도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자가 26%로 ‘좋아질 것’(23%)보다 많았다. 악사와 입소스의 올해 정신건강지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 58.5점을 기록해 18개국 중 17위였다. 국내 우울증 환자는 지난해 역대 최다인 110만 명에 이르렀다.
불안감이 가장 크게 드러난 곳은 증시다. 강도형 강도형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주식 관련 스트레스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체감상 1년 전보다 두세 배 늘었다”고 했다. 유가증권시장 역사상 모두 15차례였던 서킷브레이커가 올해에만 9차례 발동될 만큼 증시 변동성이 극심한 영향이 컸다. 회계업계 임원 A씨는 주식 투자 때문에 최근 식사 자리에서도 수시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A씨가 투자한 SK하이닉스 등 주식의 평가손실은 한때 20억원에 달했다.
부동산 스트레스도 높아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9489만원이었다. 집 없는 사람이 근로소득으로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렇다고 집 있는 사람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선 비강남권에서 강남권으로 이동하려는 소위 ‘상급지 갈아타기’가 불가능해진 영향이다. 서울 목동에 사는 B씨는 “강남 집값이 급등하고 대출은 안 나와 강남 입성을 포기했다”고 했다.
정치에 대한 불만도 커졌다. 여야 할 것 없이 강성 지지자 위주로 ‘세몰이’를 하면서 국민 다수의 정서와 점점 멀어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입추인 7일 서울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는 등 사상 최악의 폭염까지 겹쳤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식·부동산 가격과 정책이 급격하게 바뀌고 이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태가 스트레스를 키운다”고 말했다.

종일 주식창 보며 한숨…매물·대출 보며 짜증
모두를 패자로 만든 자산시장…커지는 상대적 박탈감
11년차 직장인 이모씨(36)는 지난 5월 5000만원의 정기예금을 깨서 SK하이닉스와 한화오션 등 주식에 투자했다. 이씨는 “‘롤러코스터 장세’ 속에 하루에도 소형 중고차값에 해당하는 수백만원이 오르락내리락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현재 수익률은 -28%. 매수를 눈여겨보던 서울 구로동의 아파트는 최근 석 달 새 9000만원이 올라 투자 수익으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은 더 멀어졌다.
증시 불안과 부동산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면서 한국 사회에 우울감과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주식이나 부동산 미보유자는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혔고, 삼전닉스(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주와 유주택자도 가격 급변동과 세금 부담 등으로 불안감이 가득하다.
◇주식 우울증에 횡령·살인미수까지

7일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이 증권 계좌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109만6509명으로, 이 가운데 43.29%가 손실을 보고 있다. SK하이닉스 보유 투자자는 49만7037명이며 손실 투자자 비율은 60.21%에 달했다. 평균 매입 단가는 삼성전자가 20만4033원, SK하이닉스가 169만3536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돈암동에 사는 유모씨(60)는 올해 초 정년퇴직 후 반도체·2차전지·바이오주에 2억원을 투자했다가 5000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삼전닉스 반도체 종목은 거의 반토막이 났다. 유씨는 “은퇴 후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매일 증시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증권시장 역사상 15차례인 서킷 브레이커가 올해에만 9차례 발동됐다.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 손실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주식 우울증’ 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박종석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장이 좋았던 6월까지는 주식 투자 손실로 인한 우울감, 공황 증상 등 환자가 하루 평균 5명 수준이었는데 7월 들어서는 하루 평균 11명 정도로 늘었다”고 했다.
투자 손실을 만회하려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경북대에선 한 동아리 회장이 투자 손실을 메우기 위해 동아리 회비 677만원을 유용해 개인 주식 투자에 사용했다가 적발됐다. 부산남부경찰서는 투자 유튜버의 조언을 믿고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뒤 앙심을 품고 유튜버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미수)로 20대 남성 B씨를 지난달 27일 구속 송치했다.
◇1년 새 2억원 뛴 서울 아파트
다락같이 오르는 집값도 스트레스를 더하는 요인이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5억9490만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7월(14억572만원)과 비교하면 1년 새 약 2억원 뛰었다.
이를 지켜보는 무주택자의 속은 타들어간다.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내 집을 마련하고 싶어도 대출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작년 정부의 ‘10·15 대책’ 이후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최대 6억원(15억원 이하 주택 기준)으로 묶였다.
직장인 조모씨(37)는 “작년 초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를 9억원에 사려다가 계약 당일 집주인이 갑자기 가격을 5000만원 올려 매수를 접었다”며 “현재 이 아파트 가격이 13억원대 후반으로 급등했는데, 그때 어떻게든 5000만원을 마련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고 말했다. 느긋하게 기다리며 기회를 보려 해도 전세시장마저 불안하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올해 들어서만 6.53% 올랐다.
내 집 장만에 성공했더라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작년 8월 상암동의 구축 아파트를 매수한 결혼 5년차 이모씨는 유주택자가 된 이후에도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계속 느낀다. 이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에 맞춰 잠실로 이사간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잠실 집값은 30억원에 달하는데 현재 아파트값(14억원)과 대출 가능액(2억원)을 제외해도 14억원이 모자라 어떻게 모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장위동에 자가 신혼집을 마련한 김모씨(41)는 매달 280만원에 달하는 원금과 이자 상환액 때문에 삶의 질이 더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향후 변동금리로 바뀌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안재광/김영리/진영기/이인혁/우연수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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