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논술형인가…30년 만에 흔들리는 ‘오지선다 수능’[뉴스 깊이보기]

김지혜 기자 2026. 8. 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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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객관식 중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망치는 것 같다”며 문제를 제기하면서 대입제도 개편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수능 서·논술형 문항 도입과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검토 중입니다.

교육당국은 인공지능(AI) 시대에 맞춰 ‘정답을 고르는 시험’에서 ‘생각을 표현하는 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은 다르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왜 지금 수능 서·논술형이 다시 논의되는지, AI가 정말 해법이 될 수 있는지, 현장이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주요 쟁점을 짚어봤습니다.

왜 지금 서·논술형인가

서·논술형에 대한 논의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6차 교육과정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까지 30여년 동안 서·논술형 평가는 꾸준히 확대해야 할 교육정책 방향으로 제시돼 왔습니다.

하지만 입시 부담과 채점의 어려움 등으로 수능은 객관식 중심 체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이후 학교에서는 질문하고 탐구하는 수업이 강조됐지만 평가는 여전히 객관식 위주에 머물렀습니다. 박종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수업·평가혁신연구본부 연구위원은 “평가 방법을 바꾸지 않고 학생들에게 깊이 있게 사고하고 질문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요구”라고 지적합니다.

30여 년간 이어져 온 논의가 최근 다시 힘을 받는 배경에는 생성형 AI의 등장이 있습니다. AI는 이제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은 물론 긴 글을 요약·번역하고 논술 초안까지 작성합니다. 교육계에서는 AI도 쉽게 수행하는 객관식 문제풀이 능력을 평가하기보다 학생이 자료를 분석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보다 질문하고 사고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서울 노원구 강북청솔학원에서 열린 2026학년도 수능 가채점 분석 및 설명회에서 김병진 이투스교육평가연구소 소장이 분석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관건은 채점 신뢰성…AI가 해결책 될까

서·논술형 평가가 ‘정답 없는 시험’이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학생이 자유롭게 아무 말이나 쓰는 시험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근거가 타당한지, 주장과 근거가 논리적으로 연결되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결국 답 자체보다 사고 과정과 논증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관건은 채점입니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는 55만명에 달했습니다. 같은 결론에 도달하더라도 학생마다 논리 전개와 근거 제시 방식이 다른 만큼, 채점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지 않도록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로 꼽힙니다.

교육당국은 AI를 보완책으로 제시합니다. AI가 채점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만든 루브릭(채점기준표)을 바탕으로 평가를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학교 현장도 이미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채움AI’, 경기도교육청은 ‘하이러닝’을 활용해 서·논술형 평가 지원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경기도교육청은 AI 채점과 교사 채점의 상관계수가 0.9 이상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만 AI 역시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교육계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최종 평가는 여전히 교사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성급한 시도는 아닐까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된 지난해 11월13일 서울 용산구 용산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준비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7일 성명을 내고 논술형 평가를 전면 도입할 경우 논술·글쓰기 사교육 확대와 채점 공정성 논란, 평가 민원 증가가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학교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논술형이 확대되면 학생의 글쓰기 역량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이나 가정환경에 더 크게 좌우돼 교육격차가 심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AI 채점의 신뢰성 검증과 대규모 채점 체계 구축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습니다.

충분한 검증 없이 추진된 교육정책은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은 문·이과 통합을 추진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이후 ‘문과 침공’ ‘사탐런’ 등 새로운 입시 현상이 나타난 사례를 거론하며, 수능 개편 역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시범 운영을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2017년부터 대학입학공통시험에 국어와 수학 서술형 문항 도입을 추진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민간업체가 8000~1만명의 채점자를 동원하는 방안을 마련했고, 채점 업무를 위해 약 62억엔 규모의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채점 오류와 채점자 간 편차, 수험생이 가채점을 하기 어려워 대학 지원 전략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채점자 가운데 학생 아르바이트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채점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까지 불거졌습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수험생이 안심하고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체제를 조기에 마련하기 어렵다”며 2019년 말 서술형 도입을 보류한 바 있습니다.

결국 수능 서·논술형 도입의 성패는 ‘왜 바꿀 것인가’만큼이나 ‘어떻게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것인가’에 달려 있는 셈입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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