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지도 바뀌었다”…한국만큼 뜨거워진 ‘신흥 불지옥’ 국가들

이윤정 기자 2026. 8. 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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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전역에 폭염특보 최고 단계인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된 지난 4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 최고기온 분포도 모니터에 서울과 경기, 강원 일부 지역이 붉게 나타나 있다. 35도부터 분홍색으로, 그 이상은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강윤중 선임기자

서울이 방콕보다 더웠다. 지난 6일 오후 4시 서울은 37도를 기록해 일본 도쿄(30도)는 물론 대만 타이베이(33도), 태국 방콕(32도), 필리핀 마닐라(26도)보다도 높은 기온을 나타냈다. 물론 방콕이 갑자기 시원해진 것은 아니다. 북태평양고기압 영향으로 한반도에 뜨거운 공기가 갇히면서 나타난 이례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번 폭염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제 폭염은 ‘원래 더운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과 동북아까지 폭염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세계의 ‘폭염 지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한국이 지구에서 가장 더운 나라일까. 답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변화는 있다. 폭염의 지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중동이나 인도, 동남아시아처럼 원래 더웠던 지역이 폭염의 상징이었다면, 최근에는 비교적 온화한 기후로 알려졌던 유럽까지 40도를 넘나드는 ‘신흥 불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북부 바냐카발로는 최근 42.8도를 기록했고, 정부는 로마를 포함한 전국 27개 주요 도시에 최고 단계인 적색 폭염경보를 발령했다. 관광객들은 분수대와 냉방시설을 찾아 몰렸고, 일부 지역에서는 한낮 야외활동 자제령이 내려졌다.

중부유럽도 예외가 아니었다. 슬로바키아는 남부 카메니차 나드 흐로놈에서 41.4도를 기록하며 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경신했고, 오스트리아 역시 41.2도로 국가 최고기온 기록을 새로 썼다. 두 나라 모두 과거에는 ‘40도’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지역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다.

폭염이 바꾼 것은 기온만이 아니다. 헝가리는 다뉴브강 수위가 크게 낮아지면서 원자력발전소 냉각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고, 독일에서는 라인강 수위 저하로 화물 운송에 차질이 빚어졌다. 프랑스와 그리스, 알바니아에서는 대형 산불이 잇따랐고, 이탈리아에서는 의료진이 온열질환 환자 급증에 대응하느라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폭염이 단순한 날씨를 넘어 사회 기반시설과 경제까지 흔드는 재난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역시 이번 폭염이 유난히 심한 이유가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이 겹친 가운데 태풍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는 뜨겁고 건조한 공기가 머물렀다. 반면 일본은 고기압 가장자리로 북쪽의 비교적 선선한 공기가 유입되면서 같은 시기 도쿄의 최고기온은 서울보다 7~9도 낮았다. 평소 더운 도시로 꼽히는 방콕이나 타이베이보다 서울이 더 뜨거운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된 이유다.

그렇다고 ‘원래 더운 나라가 시원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운 곳은 계속 덥고, 덜 덥던 곳이 더 빠르게 뜨거워지고 있다. 실제로 중동과 남아시아 일부 지역은 여전히 45~50도 안팎의 극심한 폭염이 반복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영국 등 과거에는 폭염이 드물었던 지역까지 연이어 최고기온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기상예보 플랫폼 WFY24의 설립자인 기상학자 요안나 베르지니는 최근 유로뉴스 인터뷰에서 “이베리아반도와 이탈리아, 그리스, 발칸반도 등에서 ‘폭염 클러스터(heat clusters)’가 반복되고 있다”며 유럽의 폭염이 특정 지역이 아닌 여러 권역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중동이나 남아시아처럼 일부 지역에 집중됐던 극한 고온이 이제는 중부·북유럽까지 확산하면서, 전 세계 ‘폭염 지도’ 자체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WMO와 유럽연합(EU) 산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가 발표한 ‘2025 유럽 기후현황 보고서’는 유럽의 기온 상승 속도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평균의 약 두 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폭염이 남유럽을 넘어 중부·동유럽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이제는 특정 국가의 일시적 이상기온이 아니라 새로운 기후 패턴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의 셀레스트 사울로 사무총장은 “극한 폭염은 더 이상 예외적인 기상이변이 아니라 인류가 적응해야 할 새로운 현실”이라며 “기후변화로 폭염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각국 정부에 폭염을 태풍이나 홍수처럼 하나의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응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 연구 네트워크 월드웨더어트리뷰션(WWA)은 이번 서유럽 폭염을 두고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사실상 발생하기 어려웠던 수준”이라고 결론 내렸다. 로이터통신은 이제 기후변화 연구의 관심이 ‘폭염이 발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강하게 나타날 것인가’를 규명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폭염이 전통적으로 ‘더운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라 발생 지역과 강도가 함께 재편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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