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추리문학의 별이 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산

박영서 2026. 8. 7.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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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대장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그를 들여다보면 일본 추리문학 생태계의 힘, 그리고 한국 문단이 되새겨야 할 과제까지 함께 읽힌다.

일본 추리문학은 두 개의 큰 축 위에서 발전해 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렇게 '본격파'의 추리적 재미와 '사회파'의 인간 드라마를 한데 녹여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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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가 대장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8세. 천재 작가가 바람처럼 세상을 떠나면서 전세계 독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순한 베스트셀러 작가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한 사람의 천재성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를 들여다보면 일본 추리문학 생태계의 힘, 그리고 한국 문단이 되새겨야 할 과제까지 함께 읽힌다.

◆추리의 끝에서 인간을 만나다

일본 추리문학은 두 개의 큰 축 위에서 발전해 왔다. 하나는 에도가와 란포로 대표되는 ‘본격파’다. 밀실, 알리바이, 반전과 추리라는 정교한 퍼즐을 통해 ‘누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가’를 파고든다. 다른 하나는 마쓰모토 세이초가 확립한 ‘사회파’다. 범죄를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시대의 모순 속에서 바라보며 ‘왜 그런 범죄가 일어났는가’를 묻는다.

히가시노는 이 두 전통을 절묘하게 융합했다. 공학도답게 치밀한 논리와 과학적 사고를 소설 속에 녹여냈지만, 그의 작품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트릭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완벽하게 설계된 범행보다는 한 인간의 희생이 더 큰 여운을 남겼고, ‘백야행’에서는 범인의 정체보다 두 남녀가 평생 어둠 속을 걸어야 했던 이유를 응시했다.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가 활약하는 ‘갈릴레오’ 시리즈는 과학의 힘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지만, 마지막에는 인간의 욕망과 사랑, 죄책감이 자리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 상처 입은 사람들의 삶을 치유하는 휴먼드라마를 완성했다.

독자들은 범인을 찾기 위해 책장을 넘겼지만 마지막에는 인간을 이해하면서 책을 덮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렇게 ‘본격파’의 추리적 재미와 ‘사회파’의 인간 드라마를 한데 녹여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책 싫어하던 소년의 반전 인생

히가시노 게이고의 삶 자체도 한 편의 소설이다.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오사카 부립대(현 오사카 공립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자동차 부품회사인 일본전장(현 덴소)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다. 낮에는 전기회로를 설계하고 밤에는 원고를 쓰는 생활을 이어가다 27살 때인 1985년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정식 등단했다.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원래 독서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그 시절 우리는 바보였습니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싫어했다. 여동생들이 세계 아동문학 시리즈를 읽는 걸 보면, ‘그게 뭐가 재미있냐’고 놀리기도 했다. 당시는 TV가 모든 가정에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나는 흑백 TV 앞에 앉아 ‘철완 아톰’, ‘철인 28호’에 빠져 지냈다. 책 읽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읽은 고미네 하지메의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가 인생을 바꿔 놓았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가 등장하는 미스터리에 매료된 그는 추리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6개월 만에 300쪽이 넘는 원고를 완성했다. 책 읽기 싫어하던 소년이 작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등단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집필에 집중하기 위해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주하며 분투했지만 10여 년 동안 이렇다 작품을 내지 못했다.

상복도 없었다. 나오키상 후보에 다섯 번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고, 2006년 여섯 번째 도전 끝에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마침내 영예를 안았다. 그는 “떨어질 때마다 술을 마시며 심사위원들을 욕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때가 즐거웠다”고 웃으며 회고했다. 실패를 견디는 유쾌함 역시 그의 매력이었다. 낙천성과 끈기가 그를 일본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만들었다.

생전 그는 “책을 싫어했던 나 같은 사람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를 향한 그의 집념은 수많은 걸작으로 이어졌다. 데뷔작 ‘방과 후’부터 유작 ‘영원한 기억’까지 41년 동안 발표한 작품은 모두 106편(공동 저술 제외)에 달한다. 그의 소설은 일본에서만 1억900만부 이상이 판매됐고, 41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그의 소설은 영화와 드라마, 연극으로도 끊임없이 재탄생했다.

책을 싫어하던 한 소년은 결국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책의 세계로 이끈 작가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남긴 가장 놀라운 반전이다.

◆왜 한국에는 ‘히가시노’가 없나

히가시노 게이고를 세계적인 추리작가로 만든 것은 그의 재능만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거장은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독자, 출판, 문학 전통이 함께 어우러진 생태계가 위대한 작가를 만든다.

일본에는 에도가와 란포상, 나오키상,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본격미스터리대상 등 신인부터 거장까지 아우르는 등용문이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고본 시장은 작가들이 꾸준히 독자를 만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여기에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이 원작의 생명력을 확장하면서 저변을 넓히고 있다. 미야베 미유키, 혼다 테츠야, 다카노 가즈아키, 요네자와 호노부, 히가시가와 도쿠야, 나카야마 시치리 등 추리·미스터리 작가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은 이 같은 건강한 생태계 덕분이다.

그는 떠났지만, 독자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와 작가를 길러내는 일본 문학계의 힘은 다음 세대의 히가시노를 키워낼 것이다.

반면 한국 추리문단은 김성종 이후 세계 시장에서 통할 만한 작가를 배출하지 못했다. 해외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독자는 늘었지만, 이것이 국내 창작으로 제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부족한 것은 독자가 아니라 작가를 키우는 시스템이다. 오랜 시간 작품을 발표하며 성장할 수 있는 시장과 출판, 영상화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한국 추리문학이 세계로 나아가려면 작가를 키우는 생태계부터 갖춰야 한다.

박영서 기자 py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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