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백년]아버지 따라 막장으로…형제 광부가 꿈꾸는 탄광박물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은퇴 광부 박창희(76)씨와 동생 박정희(73)씨는 광부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막장을 지킨 '형제 광부'다.
■여덟 살 선탄장에 선 형열여덟 살 막장 들어간 동생=박창희씨가 처음 탄광 일을 접한 것은 8살 때다.
■진폐 증명하려 모은 월급봉투어느새 탄광의 역사가 되다=박창희씨는 훗날 진폐 판정을 받거나 광부 경력을 증명할 때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월급봉투와 건강검진 결과표, 광업소에서 받은 각종 서류를 보관하기 시작했다.
■"광부의 삶 기억했으면"마지막 꿈은 박물관= 박창희씨에게 남은 바람은 평생 모은 탄광 소장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는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숱한 사고 나는 탄광…동료 잃은 기억 가슴 아파
발파기·드릴·화석 등 석탄유산 개인창고에 수집
탄광 물품 40점…전시 열어 광부 삶 알리기 원해

은퇴 광부 박창희(76)씨와 동생 박정희(73)씨는 광부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막장을 지킨 ‘형제 광부’다. 형은 8살부터 선탄장에 나섰고, 동생은 18살에 막장 생활을 시작했다. 형제가 탄광에서 보낸 세월을 합치면 53년에 달한다.
강릉시 강동면의 한 시골마을. 박창희씨 집 앞에 자리한 4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창고에는 두 형제가 살아낸 막장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낡은 안전모와 캡프(안전등), 발파기, 착암기부터 탄광에서 캐낸 고사리·대나무 화석과 삼엽충까지 진귀한 물건들이 빼곡하다.
■여덟 살 선탄장에 선 형…열여덟 살 막장 들어간 동생=박창희씨가 처음 탄광 일을 접한 것은 8살 때다. 그의 아버지는 임곡리 인근 광업소의 갱 하나를 맡아 광부들을 이끌던 ‘오야지’였다. 당시 농촌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농사일을 거들었듯, 탄광 오야지였던 아버지를 따라 선탄장에 나가 석탄에 섞인 돌멩이를 골라내곤 했다.
본격적인 광부 생활은 20살 때 동암광업소에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갱 밖에서 탄과 돌을 가르는 선탄부에서 일했지만, 갱내 작업의 월급이 더 많다는 말을 듣고 채탄 후산부로 옮겼다. 기술을 익힌 뒤에는 직접 발파하고 동발을 세우며 작업을 이끄는 선산부가 됐고, 33년 동안 일했다.
동생 박정희씨도 형과 같은 길을 걸었다. 18살 때 강릉광업소 2구에 들어가 굴진 후산부로 일하며 보타(폐석)를 처리했다. 한동안 농사를 지으며 지낸 적도 있지만, 결혼해 두 아들을 낳은 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다시 탄광으로 돌아갔다. 탄광에 다닌 것을 모두 합하면 20년이다.

■더 나은 벌이 찾아 떠돌았지만…막장은 ‘사람 사는 곳’ 아니었다=박창희씨는 동암광업소를 시작으로 신일광업소와 강릉광업소, 관서광업소 하청, 흥일광업소, 화성광업소, 한보탄광 등을 거쳤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광업소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주저 없이 짐을 쌌다.
동생 박정희씨 역시 지암탄광과 흥일광업소, 화성광업소, 흥국탄광, 영동탄광, 강릉광업소 등을 옮겨 다녔다. 당시에는 더 나은 조건의 광업소가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한곳에서 1년 또는 3년가량 일한 뒤 자리를 옮기는 광부들이 흔했다고 한다.
광부 일은 다른 직종보다 벌이가 나았지만, 그만큼 목숨을 담보로 해야 했다. 형제는 각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천반이 무너지며 쏟아진 탄에 묻히거나 동료들과 갱도에 갇혔고, 낙석에 어깨를 맞아 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박창희씨에게 특히 잊히지 않는 것은 1996년 자신이 일하던 탄광에서 발생한 지하수 유출 사고다. 박씨를 포함, 100여명으로 구성된 구조대가 149시간 동안 필사의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막장에 갇힌 광부 15명은 끝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평생 광부로 살아온 자긍심은 컸지만 가장 또렷하게 남은 기억은 역설적이게도 막장 사고의 공포와 동료를 잃은 슬픔이다. 박씨가 탄광에서 일하며 사고로 떠나보낸 동료만 70여명이다.
형제는 “탄광에서 일하는 것은 사람 사는 게 아니었다”며 “사고가 숱하게 났으니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 53년 막장 생활을 마치고 형제에게 남은 ‘진폐’=두 형제 모두 퇴직할 무렵에는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형 박창희씨는 2019년께 진폐 11급 판정을 받았다. 더 탄광에 다니다가는 몸이 더욱 나빠질 수 있다는 걱정에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오랜 기간 착암기를 사용한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폐 건강도 악화됐다. 그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에 광업소 신체검사에서는 늘 괜찮다고 답했다”며 “몸이 아파도 의사에게까지 거짓말하며 광업소에 다녔다”고 회상했다.
동생 박정희씨는 형보다 2년 빠른 2017년께 진폐 11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가족을 건사하고 먹고살아 보겠다고 귀가 먹는 줄도 모르고 굴속에서 일했다”면서 “지금은 일상적인 대화조차 잘 들리지 않고,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숨이 턱턱 막힌다”고 했다.

■진폐 증명하려 모은 월급봉투…어느새 탄광의 역사가 되다=박창희씨는 훗날 진폐 판정을 받거나 광부 경력을 증명할 때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월급봉투와 건강검진 결과표, 광업소에서 받은 각종 서류를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각지의 탄광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모습을 보며 수집 범위를 넓혔다. 탄광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남겨야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쓸 만하거나 값비싼 장비를 가져오기는 어려워 동료들이 못 쓰게 됐다며 내놓은 물건들을 하나씩 얻어 모았다.
그렇게 모은 탄광 관련 물품만 40여점에 달한다. 캡프와 발파기, 착암기, 오거드릴, 콜픽, 작업복, 안전장화, 보안수첩, 불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수집품 중에는 막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귀한 물건도 있다. 한보탄광에서 캐낸 고사리·대나무 화석과 태백 동해광업소 폐석장에서 찾은 국화 화석·삼엽충 등 10여점이다. 박씨는 화석이 나온다는 말을 들으면 쉬는 날에도 폐석장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광부의 삶 기억했으면”…마지막 꿈은 박물관= 박창희씨에게 남은 바람은 평생 모은 탄광 소장품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는 것이다.
박씨는 “젊었을 때는 광업소 장비와 탄광 유산을 모아 강릉에 박물관을 세우는 것이 꿈이었다”며 “탄광 물건을 하도 주워 모으니 아내가 ‘귀신 나오는 것만 가져온다’고 해 이혼할 뻔한 적도 있었다”고 웃었다.
그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 직접 박물관을 운영하기 어렵겠지만, 석탄박물관 등에 물건을 기증해 전시회라도 열고 싶다”며 “직접 사용했거나 동료들에게 얻은 물건들이어서 유래와 얽힌 사연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물건과 이야기를 함께 전한다면 소장품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아이들이 내가 모은 물건을 보면서 광부들이 어떻게 일하고 살아왔는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생 박정희씨도 “형님이 모은 물건들은 나 역시 막장에서 늘 보고 사용했던 것들”이라며 “물건 하나하나를 바라보면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탄광에서 보낸 세월이 떠오른다”고 했다. 이어 “석탄산업의 유산이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소개되고, 광부들이 어떻게 일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Copyright © 강원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