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리포트]27년째 미뤄진 '조건부 석방', 검찰개혁에 또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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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피의자 구속 자체를 수사 성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조건부 석방은 법원이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보증금 공탁 ▲위치추적 전자장치 착용 ▲주거지 제한 등 여러 조건을 걸어 구속영장을 발부와 동시에 석방하는 제도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구속되면 직장생활도, 자녀 양육도 중단되고 피해자와의 합의금 마련도 어려워진다"며 "조건부 석방은 판사의 재량으로 피의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해 직장과 집을 오갈 수 있게 해주되,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공범과의 연락 금지 등 여러 조건을 붙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1주일 앞둔 지난달 24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조건부 석방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여지도 많지만, 입법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인신구속에 관한 문제를 검찰 개혁에 관한 문제(검사 수사권 폐지 등)에 묻어서 함께 처리하는 것을 부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것으로 조건부 석방 논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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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과 기각, 그 사이에 있는 '조건부 석방'
피의자 인권, 피해자 보호 모두 강화 가능
불구속 재판 원칙 보장할 절충 장치임에도
이번에도 검찰 권한 축소 논의에 밀려 좌절
[편집자주]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피의자 구속 자체를 수사 성과로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런 풍토 속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불구속 재판 원칙은 교과서 속 얘기다. 오는 10월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은 높은 재범 가능성 등 예외적 경우에만 구속하는 새로운 수사 관행을 마련할 기회다. [시대]는 '피의자 인권을 말하다' 시리즈를 통해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를 구속의 만능키로 활용하는 수사 행태 ▲반복되는 압수수색과 여러 기관의 동시 수사 등 유독 가혹한 기업 수사 ▲아무런 통지 없이 참고인까지 출국금지부터 하는 수사기관의 전횡 ▲유명무실한 발달장애인의 방어권 보장 제도 등을 고발했다. 이번에는 피의자 인권과 피해자 보호를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인 '조건부 석방' 제도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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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판사는 청구된 구속영장을 발부 또는 기각하는 양자택일만 할 수 있다. 구속과 불구속 사이 중간 선택지가 없다 보니 피의자의 다양한 사정은 고려하지 않는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면 여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 미성년 자녀를 혼자 양육하는 한부모, 피해자와 합의를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도 구속할 수밖에 없다. 박성현 변호사(법률사무소 유)는 "치매에 걸린 부모를 홀로 부양하는 사람이 구속되자 방문요양원 관계자들이 나서서 탄원서를 쓴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미 선진국에선 조건부 석방과 유사한 제도를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조건부 석방과 유사한 '사법 통제'를 운영한다. 피해자 접근금지, 거주지 제한, 정기 출석 등 의무를 부과한 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도록 하는 방식이다. 프랑스 법무부에 따르면 2023년 재판 전 예심 단계에서 내려진 자유 제한 조치 3만767건 가운데 사법 통제가 53%로 가장 많았고, 미결구금(구속) 44%, 가택 전자감시 3%였다.
미국도 재판 출석과 사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피고인을 조건부 석방한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2011~2018년 연방지방법원의 불구속 피고인 중 79%가 조건부로 석방된 이들이었다. 이들 중 법원 심리에 출석하지 않은 비율은 1%에 그쳤다. 수사기관은 흔히 원활한 재판을 위해 구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사례를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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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수사권을 완전히 없앤 이번 형소법 개정을 주도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형소법 개정안에도 '조건부 석방' 제도가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11차례 열리는 동안 조건부 석방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전체 소위 회의 시간은 46시간 12분에 달했는데, 조건부 석방 논의는 단 2차례,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진행되다가 결론 없이 끝났다.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검사 수사권 폐지를 포함한 검찰 권한 축소에 할애됐다.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1주일 앞둔 지난달 24일 법안심사소위에서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조건부 석방이) 긍정적으로 검토할 여지도 많지만, 입법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인신구속에 관한 문제를 검찰 개혁에 관한 문제(검사 수사권 폐지 등)에 묻어서 함께 처리하는 것을 부적절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것으로 조건부 석방 논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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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조건부 석방 주장이 힘이 실린 계기는 역설적으로 2022년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었다. 당시 범인 전주환은 피해자인 동료 역무원의 고소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적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던 그는 1심 선고 전날 피해자를 찾아가 살해했다.
만약 당시 조건부 석방 제도가 있었다면 그를 풀어주는 대신 전자발찌 부착과 피해자 접근금지 등의 조건을 붙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구속 요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보복 우려가 있을 때 조건부 석방 제도를 활용하면 오히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보호관찰소의 전자발찌 관리 인원도 확충해야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전자장치 감독관 1인당 관리 인원은 2021년 17.7명에서 2025년 20.7명으로 늘었다. 법무부 내부 규칙에선 '1인당 10명'을 권고하고 있는데, 실제 관리 인원은 두 배가 넘는 셈이다. 조건부 석방 제도가 도입되면 전자발찌 관리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는 만큼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
일각에선 모든 범죄에 조건부 석방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 범죄 유형에 따라 적용 범위를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교제 폭력, 스토킹, 가정폭력 같은 관계성 범죄는 조건부 석방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승 기자 hsc@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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