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 장비 주실 줄은”… DB하이텍, 공공반도체 연구에 통 큰 기증
과거 테스트베드 구축, 장비 확보 난항 겪어… 공공팹 ‘숨통’
컨설팅 등 협력 확대…정부, 2033년까지 750억 원 투입

“장비를 받아가는 저희가 자리를 만들고 모셔야 하는데…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새 장비를 받은 것 같아 정말 감사합니다.”
6일 충북 음성 DB하이텍 상우캠퍼스에서 열린 ‘DB하이텍-모아팹(MoaFab) 중고장비 이전 협약식’에서는 감사 인사가 연신 이어졌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장비를 무상으로 이전받는 정부가 오히려 환대까지 받았다며 DB하이텍에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정부가 과거 공공 반도체 테스트베드 구축에 나섰을 당시에도 핵심 장비 확보는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난제였다. 공공 테스트베드는 기업과 연구기관이 반도체 공정을 시험하고 시제품의 성능을 검증할 수 있도록 마련한 연구시설이다. 하지만 신규 장비 가격이 수백억원에 달하고 중고 장비마저 시장에 좀처럼 나오지 않아 해외 기업의 매각 결정을 기다리거나 대·중견기업에 유휴장비 제공을 요청해야 했다.
과거의 뼈아픈 경험을 고려하면 DB하이텍의 이번 장비 기증은 공공 연구 인프라를 보강하는 의미 있는 민관 협력 사례로 평가된다. 기업이 생산 현장에서 활용해 온 8인치 파운드리 장비 3대를 공공 연구기관에 무상으로 이전하면서 정부 예산만으로 제때 확보하기 어려웠던 연구 장비를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확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구 차관은 이날 “장비를 보니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새것을 주신 것 같다”며 “양산 측면까지 고민하고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어 조기석 DB하이텍 대표를 향해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기술을 하나하나 쌓아오며 산전수전을 겪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엔지니어이자 산업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DB하이텍이 무상 이전하는 장비는 나노종합기술원과 나노융합기술원에 구축돼 핵심 공정 연구개발과 기술 실증에 활용된다. 지난해 3월 과기정통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이 체결한 반도체 생태계 협력 업무협약의 후속 조치다.
이중 나노종합기술원에 들어서는 ‘8인치 고온 열처리 증착장비’는 초소형 정밀부품과 음향 마이크, 압력센서, 적외선센서 등의 구조막을 얇고 균일하게 형성하는 설비다. 20년 이상 된 기존 장비를 교체해 작업 안전성을 높이고, 한 번에 처리하는 웨이퍼도 25장에서 50장으로 두 배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노융합기술원에는 ‘8인치 건식 식각 및 표면 코팅 장비’가 구축된다. 차세대 피지컬 인공지능(AI)에 쓰이는 초미세 센서 부품의 받침막을 제거하고 부품끼리 달라붙지 않도록 보호막을 입히는 장비다. 기존 공정보다 초미세·초박막 부품을 손상 없이 분리할 수 있어 공정 단계를 줄이고 부품의 품질과 완성도를 높이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정부도 DB하이텍의 장비 기증을 계기로 기업 유휴장비를 공공 연구자산으로 활용하는 협력 체계를 확대한다. 이를 위해 전국 공공나노팹을 연계하는 ‘모아팹(MoaFab)’ 플랫폼을 기반으로 2033년까지 총 750억 원 규모의 ‘모아팹 중고장비 활용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사업을 통해 모아팹 참여기관에 기업 유휴장비의 이전·구축 비용을 지원해 공공 연구 인프라의 연구개발과 기술 실증 역량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외에도 DB하이텍은 올해 하반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공공팹을 대상으로 운영 컨설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구 차관은 “이번 장비 이전이 단순한 무상 기증을 넘어 미래 반도체 경쟁력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조기석 DB하이텍 대표는 “오늘날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와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결정하는 핵심 전략자산이 됐다”며 “이번 장비 기증이 두 기술원의 연구 인프라 확충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산학연의 연구개발과 시제품 제작 문턱을 낮춰 국내 팹리스와 스타트업의 기술 검증과 상용화를 앞당기는 사다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한 장비 기증에 그치지 않고 정부와 모아팹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이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든든한 민간 파트너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성현 기자 andy04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