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서 대구를 읽다] 혼자 빛나는 도시는 없다

김상진 기자 2026. 8. 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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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즈파크의 함성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퍼트넘이 말한 사회적 자본 역시 저절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서고 함께 사는 법을 익힐 때 비로소 두터워진다. 마당이 넉넉한 도시일수록 낯선 이들이 이웃이 되고, 흩어져 있던 재능이 서로를 알아본다.

그러나 세대와 세대가, 낯선 이와 이웃이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내미는 도시는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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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지역과인재 연구위원
이재인 지역과인재 연구위원

라이온즈파크의 함성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홈런이 터지는 순간, 이름도 모르는 관중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서로 손뼉을 마주친다. 서문시장 야시장에서는 처음 보는 이들이 어깨를 맞댄 채 같은 좌판 앞에서 정감있는 음식을 나누고, 종로의 오래된 골목에서는 노포와 단골 사이에 말이 필요 없는 정이 흐른다.

모습은 저마다 다르지만, 세 풍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름도 계약서도 없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보이지 않는 끈이, 그 북적임을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쌓인 신뢰와 호혜의 관계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 불렀다. 눈에 보이지 않고 돈으로 환산하기도 어렵지만, 위기의 순간 가장 먼저 도시를 지탱하는 자산이다.

한 사람이 도시에 뿌리내리는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나'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바라는지 더듬어 아는 일이다. 그 앎이 '일'을 만나 하나의 진로가 되고, 진로가 쌓여 비로소 '삶'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삶은 반쪽에 그친다. 나에게서 일로, 일에서 삶으로 이어진 길은 끝내 '공동체'에 가닿아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나다운 일을 찾았다 한들, 그것을 알아봐 주고 함께 나눌 이웃이 없다면 그 삶은 오래 지탱되지 못한다.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을 두 결로 나누었다. 하나는 안으로 단단히 묶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밖으로 다리를 놓는 힘이다. 오래된 사이의 깊은 정과 같은 학교라는 유대가 앞의 것이라면, 처음 만난 사람과도 손을 잡고 낯선 세계로 이어지는 개방성이 뒤의 것이다. 대구는 앞의 힘이 유난히 강한 도시다. 한 번 맺은 인연을 오래 지키고 어려울 때 곁을 떠나지 않는, 그 단단함이 오래도록 대구의 저력이었다. 다만 한 사람의 삶이 공동체에 가닿으려면, 그 든든한 안쪽의 유대에 밖으로 향하는 다리를 하나씩 더 놓아야 한다.

다리는 세대 사이에도 놓인다. 먼저 길을 걸어 본 중년의 경험과, 새 길을 열어 갈 청년의 패기는 본래 서로를 채우는 짝이다. 인생의 후반을 다시 설계하려는 이의 지혜가 첫발을 떼는 청년에게 이정표가 되고, 청년의 낯선 감각이 앞선 세대에게 새로운 눈을 틔워 준다. 한쪽이 가르치고 한쪽이 배우는 일방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스승이 되는 호혜의 관계다. 이런 세대 간의 연결이 촘촘한 도시에서는, 나이 들어 밀려나는 사람도, 젊어서 외따로 떨어지는 사람도 줄어든다.

그렇다면 이 연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거창한 제도나 큰 예산이 아니라, 사소해 보이는 몸짓들이 한 올씩 모여 짜인다. 퇴근길에 후배의 서툰 계획서를 함께 들여다보는 선배, 처음 온 청년에게 밥 한 끼를 청하는 어른, 자신이 걸어온 길의 굽이를 숨김없이 들려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작은 마음들이 한데 쌓여, 누군가 홀로 고립되지 않도록 붙드는 도시의 그물이 된다. 사회적 자본은 거대한 구조물이기 이전에, 이런 사소한 신뢰가 오래 쌓인 결과다.

물론 마음만으로 공동체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당신은 연결되어 있습니까』에서, 혼자는 외롭고 같이는 괴로운 시대일수록 "연결에도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퍼트넘이 말한 사회적 자본 역시 저절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서고 함께 사는 법을 익힐 때 비로소 두터워진다. 그래서 사람이 만나고 섞이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할 자리가 있어야 한다. 골목과 시장, 도서관과 광장, 세대가 함께 앉는 작은 배움의 자리가 그런 마당이다. 마당이 넉넉한 도시일수록 낯선 이들이 이웃이 되고, 흩어져 있던 재능이 서로를 알아본다. 대구가 새로 그릴 미래에도 산업단지와 연구소 못지 않게, 청년과 중년이 마주 앉을 자리를 함께 설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도시가 하는 일도 한 사람의 생애와 닮았다. 나를 알아가고, 일을 만나고, 삶을 꾸리고, 마침내 서로에게 가닿는다. 지역은 혼자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나 세대와 세대가, 낯선 이와 이웃이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내미는 도시는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리라 믿는다. 지금까지 세 번의 글로 필자가 내건 큰 방향은 대강 그린 듯하다. 이제부터는 그 길 위에서, 양서가 건네는 조언에 기대어 저마다의 '사람책'을 한 사람씩 찬찬히, 그리고 다정하게 읽어 가려 한다.

이재인 지역과인재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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