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편의점 알바 18년이 소설로…중년 재취업의 로망을 묻는다

아르떼 2026. 8. 6.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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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정소연의 탐나는 책
스스로 조직의 '부품'이 되길 바란 사람
『편의점 인간』,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살림

유튜브에 언젠가부터 ‘중년 취업 베스트 자격증’이 뜬다. 남자에게는 굴삭기 자격증이 유망하다는데,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탓도 있다고 한다. 여자에게는 한식조리기능사를 추천한다. 손재주 없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다. 전에는 퇴직 후 치킨집이나 빵집을 차렸다면, 지금은 경기가 좋지 않으니 소소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물론 생각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주위 지인들에게 다양한 부업 경험담을 들어봤다. 어떤 사람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하루하고 며칠 근육통을 앓았다고 ‘앓는 소리’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고 배달 일을 하는 게 꿈이라고 한다. 실제로 야간 편의점에서 일해 본 사람은, 힘든 건 몸이 아니라 무례한 손님들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취객에게 봉투를 구매하라고 하자, “그냥 줘”라며 억지를 부렸다고 한다.

출처. Ismail Othman/Pexels

『편의점 인간』은 편의점 일이 할 만하다고 말할까

『편의점 인간』의 후루쿠라는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일이 서른여섯 살까지 이어졌지만, 정작 회사 생활은 영 부담스러워 시급을 받는 삶을 고수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대충 일하지는 않는다. 매뉴얼을 숙지하고 신입을 교육하며, 계절 캠페인에도 전투적으로 참여한다.

평범한 직장에서 일할 나이에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가족과 친구들의 질문 공세가 끊이지 않는다. 왜 여전히 편의점이냐는 것이다. 한 번쯤 독기 있게 “보태줬냐?”라고 반문할 법도 한데, 후루쿠라는 몸이 안 좋다는 말로 둘러댄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질문은 줄어들 틈이 없다.

지겨워진 나머지 후루쿠라는 일탈을 감행한다. ‘얹혀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진 남자를 집에 들인 것이다. 쇼윈도 커플로 보이면 서로 남는 장사일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뒤늦은 계산은 엉성했고, 그녀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편의점으로 돌아간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는 그 투명한 유리 상자를 생각한다. 가게는 청결한 수조 안에서 지금도 기계장치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으면, 가게 안의 소리들이 고막 안쪽에 되살아나 안심하고 잠들 수 있다.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 『편의점 인간』 중에서


누군가에게는 ‘편의점에서라도 일할까?’이지만, 후루쿠라의 설명을 듣다 보면 만만한 일이 아니다. 물건을 정리하는 틈틈이 손님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여야 하고, 단골의 취향을 파악해 상품을 권하기도 한다. 조직 생활도 마찬가지다. 후루쿠라는 18년 동안 여덟 명의 점장을 거치며 그때마다 다른 방식에 적응해왔다.

인간을 부품으로 만드는 노동, 인간을 구해주는 부품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 노동 과정에서 분리되는 상태를 ‘소외된 노동’이라 불렀다. 산업화가 심해질수록 노동자는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에 종속된 존재가 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는 이 모습을 잊기 어려운 장면으로 남겼다.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나사를 조이던 노동자가 기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거대한 톱니바퀴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다.

영화 ‘모던 타임스’의 한 장면. / 출처. 한경DB

『편의점 인간』은 이 오래된 비판을 묘하게 뒤집는다. 후루쿠라는 스스로 세계의 톱니바퀴가 되길 원한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유니폼을 입고, 정해진 인사말을 하고,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자신의 감정이나 개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오히려 편안하게 한다. 편의점과 택배 알바를 하고 싶다는 중년들의 로망도, 복잡한 판단 과정 없이 레고 블록 쌓기처럼 일하고 싶다는 소원에 가깝지 않을까.

후루쿠라가 노동 소외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에게는 편의점 밖의 세계가 더 소외된 곳이다. 그곳에는 무엇을 해야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지 알려주는 매뉴얼이 없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라는 규칙은 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반면 편의점의 규칙은 적어도 솔직하다. 손님이 화를 내면 점원으로서 응대하면 되고, 상품이 비면 채우면 된다. 후루쿠라에게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반복 노동이 아니라, 알 수도 없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자의적인 인간의 세계다.

이 책을 쓴 무라타 사야카 역시 대학 시절부터 약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2016년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뒤에도 한동안 그 일을 계속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편의점을 관찰한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살아온 시간이 소설이 된 셈이다.

마르크스와 채플린에게 인간을 기계의 부품으로 만드는 노동은 비극이었다. 하지만 후루쿠라에게 부품은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질서였다. 물론 무례한 손님을 만나고, 오래 서서 일하고, 박한 급여를 받는 현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편의점 인간』은 조금 이상한 질문을 남긴다. 인간은 언제나 조직의 부품이 되는 것을 싫어할까. 정해진 역할 안에서 정확하게 움직이는 일이 때로는 사람을 억압하는 대신 구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정소연 에프엔미디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