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의 유작은 왜 하필 수박일까, 게다가 '인생,만세'라니!
프리다 칼로 <비바 라 비다, 수박>
본격적인 여름이다. 인간이 만두처럼 쪄지는 한국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남은 두 달 가까운 기간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습도가 높아서 정말 헤쳐나갈 수밖에 없다!) 기댈 것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과일이 있다. 복숭아, 천도복숭아, 자두 등의 핵과류도 좋지만 그래도 여름엔 수박이다. 덩치가 커서 압도하는 맛이 있는 데다가 사각사각한 질감과 쏟아지는 과즙으로 더위에 맞서는데 제격이다. 이렇게 말하니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인다.
그런 수박의 빨간 속살을 유작으로 남긴 작가가 있다. 사실 설명이 필요 없는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 작품은 <비바 라 비다, 수박 (Viva La Vida, Watermelons / 인생이여 만세, 수박)>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그가 1954년 7월 13일 47세로 세상을 떠나기 불과 여드레 전에 완성한 마지막 작품이다. 왜 하필 수박이었을까? 필요 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설명을 좀 하는 게 도리일 것 같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작품 세계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이 잘 알려져 있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 판정을 받았고 열여덟 살에는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쇠 파이프가 골반을 관통하는 중상을 입었다. 그 탓에 의사의 꿈을 접었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결국 다리 한쪽을 절단해야만 했고 이후 거듭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누군가에게는 달콤한 사랑도 그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멕시코 미술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1886~1957)와 결혼했지만, 남편의 잦은 외도로 인해 이혼 및 재결합을 되풀이하면서 상처를 받았다. 한편, 초현실적인 작품 세계에 평단도 상당히 비판적으로 나섰다. 그렇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행에 그는 창작으로 맞섰으니, ‘인생이여 만세’가 마지막이 될 때까지 14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왜 하필 수박이었을까? 멕시코에서 수박은 죽은 이들을 기리는 ‘죽음의 날(Dia de los Muertos, 11월 1~2일)’의 제단에 자주 올라가는 과일이다. 멕시코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의 연장이자 축제이고 수박은 바로 그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상징이다. 껍질은 색이 어둡고 짙은 녹색이고 단단하지만 속살은 생기가 넘치는 붉은색에 베어 물면 달콤한 즙이 철철 넘친다.
한편 수박을 다 먹고 나면 생명의 상징인 씨가 남아 다음 대로 이어지기까지 하니, 생명은 바로 ‘인생이여 만세’의 정중앙 가장 잘생긴 수박처럼 둥근 원을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런 수박이 곧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칼로는 수박을 단지 그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중앙 아래쪽, 가장 먹음직스러운 조각에 ‘인생이여 만세’라는 글귀와 더불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죽기 고작 여드레 전, 자기 운명을 이미 알고 있지만 굴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표명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칼로의 수박에 대한 사연을 알고 나면 왠지 처연해진다. 대표적인 여름 과일로 마냥 활기차고 시원한 느낌만 드는 수박으로 누군가가 이렇게 강렬한 삶의 의지를 표명했다니. 이제부터 더 경건한 마음으로 수박을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수박을 더 맛있게, 열심히 먹는 게 결국 경건함의 표현 아닐까? 그러려면 아무래도 수박을 잘 고르는 요령부터 숙지하는 게 좋겠다.
사실 비파괴 당도 측정이 도입된 이후 수박을 고르는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다. 1963년 미국 농무부의 칼 노리스가 근적외선 분광분석법을 처음 개발했고 국내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산지유통센터 등에 본격적으로 보급 및 실용화되었다. 표면에 빛을 비춰 당도를 확인하므로 예전처럼 삼각형으로 잘라서 속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살펴보자면 일단 검은 녹색의 줄무늬가 굵고 뚜렷하며 끊김 없이 진한 것이 싹수(?)가 있다. 양분이 수박 자체에 몰려 꼭지가 적당히 시들고 가늘어진 것이 좋고, 바닥 또는 엉덩이 일부가 노랗다면 밭에서 충분히 잘 익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두들겨 보았을 때 맑고 청량한 ‘통통’ 소리가 나는 것을 고른다. 프리다 칼로의 삶과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며 수박을 맛있게 먹었다면 껍질은 잘게 썰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 배출한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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