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봇의 ‘빨간펜’에 구독을 끊었다 [프리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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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챗봇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올해 들어서다. AI 챗봇 유료 버전을 결제한 뒤 메일을 복사해 붙이고 이렇게 적었다.
숫자가 많이 등장하는 원고를 편집하던 어느 날, 문장 하나하나를 검색해보다 문득 AI 챗봇이 떠올랐다.
AI 챗봇을 별 고민 없이 쓰던 때를 돌이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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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챗봇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올해 들어서다. 해외 취재원에게 이메일을 보내려는데 영어에 자신이 없었다. 중등교육 수준의 직역은 가능하지만 공식 문서에 남기기엔 태부족하다. AI 챗봇 유료 버전을 결제한 뒤 메일을 복사해 붙이고 이렇게 적었다. “표현 자연스럽게 다듬어봐. 원어민이 쓴 것처럼, 직역 느낌 나지 않게.”
답변은 1분 만에 나왔다. 3인칭으로 쓴 문장을 1인칭으로 바꾸고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AI 표현이다)” 동사를 다른 걸로 갈았다. 확신은 없지만 어딘가 나아진 느낌이었다. 그 후로 외국인에게 메일을 보낼 때마다 ‘AI 검증’을 받았다. 상대를 이름으로 부를지, 성+직위를 쓸지, 표현이 무례하게 들리지 않는지 따위 ‘톤 앤드 매너’를 주로 물었다.
숫자가 많이 등장하는 원고를 편집하던 어느 날, 문장 하나하나를 검색해보다 문득 AI 챗봇이 떠올랐다. 문단을 붙여 검증시켰더니 불과 몇 분 후 지적 사항이 주르륵 화면에 떠올랐다. 빠른 속도와 간편함에 놀라며 스크롤을 내리던 중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이 문장은 주어가 반복됩니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이렇게 다듬는 게 낫습니다.”
아무 문제 없는 문장이었다. 뉘앙스를 따지면 오히려 원래 문장이 적확했다. AI가 대부분 일자리를 없앤다는 경고가 들려오는 시대에, 오히려 안도하는 게 온당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상한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순간적으로 ‘도구의 한계’가 아니라 인공지능의 ‘도전’ ‘시건방’이라고 여겨졌다.
AI 챗봇을 별 고민 없이 쓰던 때를 돌이켜봤다. 영어 구사나 숫자 검색 같은 건 거리낌없이 내맡겼다. 한국어 윤문을 조언할 때는 왜 느낌이 달랐을까. 일차적으로는 내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AI의 답변에 수긍이 갔다고 해도 만족스러웠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때는 불쾌함이 아니라 공포가 느껴졌을 듯하다. 선배에서 후배로 내려오는 ‘빨간 펜’의 시절은 끝났고, 내 숙련도 무의미해졌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챗봇에 원래 문장이 나은 이유를 설명하려다 지웠다. 앞으로 윤문은 필요 없다고 쓰려다 또 지웠다. 감정이 가라앉고 머리가 차가워지니 이런저런 걱정이 밀려왔다. 수많은 이용자의 피드백에 힘입어 AI는 더 똑똑해질 일만 남았다. 흐름을 되돌릴 재간은 없지만 거기 일조하지는 않기로 했다. 유료 챗봇 구독을 끊었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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