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단순 보상 넘어 빠른 일상 복귀로…기후위기 시대, 기후보험이 뜬다
상시화된 재난 피해 2.6조…사후 복구 넘어 경제 완충판 역할
해외선 이미 제도화…공공 재정과 민간 보험의 역할 분담이 핵심

기후위기로 폭염·폭우·산불 등 기상재난이 상시화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단발성 지원만으로는 재난 이후의 사회·경제적 충격을 흡수하기 힘들어지자, 기후재난을 전제로 설계된 기후보험이 사회안전망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사후 손해 보상을 넘어 가계와 지역경제의 연쇄 붕괴를 막고 빠른 일상 복귀를 돕는 구조적 완충 장치로 기능할 수 있어서다.
◇기후재난, 상시 위험으로 바뀌다
지난달 하나금융연구소가 발간한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안전망, 기후보험’ 보고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이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복지, 지역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2024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약 1.55도 높았다. 이는 기후재난이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상시적 위험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난의 양상도 점차 복합화되고 있다. 한 번의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농업 피해, 주거 피해, 영업 중단, 인프라 훼손으로 연쇄 확산되면서 손실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손실 규모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자연재해 관련 피해액은 9107억원에 달했고, 2020~2024년 누적 피해액은 2015~2019년보다 12.7배 늘어난 2조6669억원으로 집계됐다.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1960년대 18억 달러 수준이었던 연평균 경제적 손실은 2010년대에 들어 1670억 달러로 50년 만에 89배 폭증했다. 피해 규모의 폭증과 함께 자연재해가 단발성 충격이 아닌 ‘상시 위험’으로 바뀌며 바야흐로 기후재난의 시대가 됐다. 기후재난이 반복되면서 피해는 더 이상 예외적 사고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상시 비용이 되고 있다.

◇'보상'을 넘어 ‘안전망’으로
보고서는 작금의 ‘기후재난’ 시대에 기후보험이 재난 피해를 보전하는 데서 나아가 사회적 회복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단순한 보상 수단이 아니라, 생활 안정과 소비 회복, 영업 재개 등 사회적 활동을 빠르게 복구해 지역경제와 가계의 붕괴를 막는 완충 장치로 기능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기후재난과 보험을 결합한 다양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1968년 도입된 홍수보험 프로그램(NFP)을 통해 민간보험사가 보장하기 어려운 홍수 위험을 공적 개입의 형태로 보장해 왔다. 뉴질랜드는 공공기관 자연재난위원회(NHC)를 통해 민간 화재보험에 가입한 주택 소유자에게 자연재해보험을 자동으로 적용한다. 대규모 재난 발생 시 조성된 재난기금과 재보험을 활용해 손실을 보상하고, 초과 손실은 정부가 보전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아이슬란드 역시 정부 산하의 자연재난보험(NTI)을 통해 화산·지진 등 복합 재난에 대응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보험사의 역할을 결합한 민간협력형 기후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도 있다. 일본은 민간 보험사들의 공동 출자로 설립된 JER(Japan Earthquake Reinsurance)을 통해 정부와 재보범 체계를 구축하고 대형 지진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보험업계와 정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재보험 제도를 운영해 재해 발생 시 생기는 큰 충격은 정부가 함께 흡수하는 형태로 민간이 함께 자연재해와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보험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재산보험 가입 시 보험료 일부를 특별부담금으로 납부하도록 하고, 해당 재원을 활용해 자연재해로 발생한 피해를 정부 산하 기관이 직접 보상한다.
국가 간 공동 재난보험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들도 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기후 재난 공동 대응을 위해 ARC(African Risk Capacity)를 설립해 기후 재난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각국 사례는 제도 설계는 달라도 결론은 같다. 기후재난처럼 손실이 크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은 민간보험만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과 재보험, 공공기금, 국가 간 위험분담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기후보험은 정책과 제도를 결합한 ‘새로운 안전망’의 모습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정책 현실, 현재의 조건과 과제
국내에서도 기후보험 논의는 더 이상 낯선 얘기가 아니다. 다만 국내 기후보험은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자연재해 피해를 보장하는 정책보험 중심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재난지원금·복구 지원·민간보험이 각각 따로 움직이는 구조에 가깝다. 때문에 보상 시차가 길고, 피해 규모에 비해 실제 회복 자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보험 가입률도 저조하다. 지난해 기준 소상공인의 풍수해·지진보험 가입률은 5%에 불과했고,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은 54%에 머물렀다. 앙식수산물재해보험 가입률도 39.8%로 절반보다 낮았다.
보장 대상과 품목도 제한적이어서 보장 사각지대가 큰 부분도 문제다. 현재 재해관련 기후보험은 정부와 지자체가 보험료의 50% 이상을 부담하고 있지만, 실제 가입률과 보장 항목을 고려하면 위험분산이라는 기존의 정책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높은 손해율도 해결이 시급한 과제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풍수해보험 손해율은 236.4%에 달했다. 기후보험의 장기적인 확대를 위해서라도 상품의 구조 개선, 위험예측 고도화 등 지속가능성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농업, 주거, 소상공인 등 취약 부문에서 기후 리스크가 집중되는 데다, 지역별 피해 편차도 크다. 침수와 산사태, 폭염, 산불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만, 이를 전담하는 보험·재정 장치의 설계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이다. 보고서는 이런 환경에서 기후보험이 단순 민간상품이 아니라, 정부 재난지원 제도와 민간 보험을 연결하는 보완적 안전망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다양한 과제 중 가장 시급한 부분은 기후보험의 ‘위험 산정’이다. 기후재난은 과거 통계만으로 미래 위험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고, 지역별 편차도 크다. 보험료를 너무 높게 책정하면 가입이 어렵고, 너무 낮게 책정하면 손해율이 급격히 악화된다. 결국 보험사 단독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정부의 재정 지원과 재보험 구조, 공공 데이터 활용이 함께 필요하다. 기후보험이 정책상품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부처의 과제가 아니라 금융과 보험, 복지, 재난관리 전반을 아우르는 구조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의 재난은 특정 계절에만 발생하는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상시 리스크로 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기후보험은 정부 재난지원금, 지자체 복구 지원, 민간 보험을 연결하는 새로운 보완 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기후보험의 핵심은 결국 재난 피해를 얼마나 많이 보상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게 하느냐에 있다. 피해 보전이 늦어질수록 가계와 소상공인의 회복은 지연되고, 지역경제의 충격도 길어진다. 이런 점에서 기후보험은 재난 뒤의 보상 장치를 넘어, 피해를 사회 전체가 분담해 충격을 흡수하는 재난 시대의 인프라로 볼 수 있다. 재난 이후의 보상에 머무는 기존 보험의 틀에서 벗어나, 재난 시대의 생활과 경제를 지탱하는 안전망으로 기후보험을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도움 = 이기홍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
정리 = 정회훈 기자 yohan@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