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거침없어도 되는가, 질문한다

김혜진 2026. 8. 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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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메가특구특별법의 노동개악 내용은 매우 심각했다.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에 밀려 포기했지만 반도체특별법에는 주 52시간 상한 예외가 포함됐었다.

지금 메가특구특별법에서 제시된 노동개악안은 모두 노동유연화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메가특구특별법에서 노동개악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뭔가 그럴듯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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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정부와 여당이 추진한 메가특구특별법의 노동개악 내용은 매우 심각했다. 연구개발 인력과 관리직은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과 연장·야간·휴일수당 적용을 배제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도 현행 1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며, 기간제 2년 제한을 허물어서 서면 합의시 최대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행 32개로 제한된 파견허용업종을 완화하겠다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나 윤석열 정부가 시도했지만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막아온 이 제도를 이재명 정부가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계 반발이 거세자, 산업통상부는 다시 검토하겠다고 후퇴했지만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솔직히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반도체 기업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송전탑을 세우고, 농민을 쫓아내려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노동자들의 강한 반발에 밀려 포기했지만 반도체특별법에는 주 52시간 상한 예외가 포함됐었다. '5극3특'이라는 지역균형개발 정책에서도 기업 유치를 이유로 노동권과 환경을 희생시키는 온갖 특별법이 발의된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발의된 법안 중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예외, 최저임금 적용 예외 등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내용이 포함되기도 했다.

메가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반도체산업, 피지컬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면 얼마나 많은 전기와 물이 끌려 들어가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할까. 나라 전체의 자원이 여기에 집중되면 정작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이 투여되지 못할 텐데, 지금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해 있는 석유화학 업종 노동자들은 제대로 지원받을 수 있을까. 지역사회 통합돌봄이나 상병수당 등 새롭게 시작되는 복지제도, 새롭게 만들어져야 할 복지 일자리는 지금처럼 정부가 예산을 내놓지 않는 상황에서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 많은 우려에도 메가프로젝트는 거침없이 진행된다.

누군가 희생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 AI산업이 활성화되고 반도체 기업들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되면, 그때 수익을 사회 전체가 나누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반도체 초과이익 사용을 공론화하자고 정부가 나서는 것도 메가프로젝트에 의한 희생을 무마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노동자 권리를 언제라도 희생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과연 초과이익의 공론화와 공유가 가능한 일인가. 더 문제는 AI산업, 반도체산업에 대한 정부의 낙관론이다. AI에 대한 과잉투자 우려도 높고, 특히 중국산 인공지능과 반도체 메모리가 양산되는 상황에서 과잉투자 위험은 더 높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업종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것은 도박 아닌가.

지금 메가특구특별법에서 제시된 노동개악안은 모두 노동유연화를 위한 것이다. 정부는 AI산업이 긴 기간 동안 호황이 예상된다고 판단하고 배팅한 것 아닌가. 그런데 노동유연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 산업의 안정성에 대해 정부도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 인력을 충원하기보다 있는 사람에게 더 긴 시간 일을 시키겠다는 것, 파견과 기간제를 늘려서 언제라도 잘라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은 결국 이 산업이 언제라도 불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것, 그를 위해서 노동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왜 이토록 이 산업에서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확대하고자 하는가.

그런데 메가특구특별법에서 노동개악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뭔가 그럴듯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 노사정 대다수가 찬성한 국제노동기구(ILO) 플랫폼 협약에 단 8표의 반대가 있었는데, 그중 한 표가 한국경총이었다. 한국의 재계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 없이, 기회만 닿으면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고자 하는 투명한 욕심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번 메가특구특별법도 그런 욕심의 발로이고, 산업부는 그런 재계를 대변하고 정치권은 메가프로젝트라는 환상에 휩쓸려 재계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더 합당한 해석일까 봐 두렵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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