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트족과 노숙자, 영국 청년의 위기

안진이 2026. 8. 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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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23세 영국 청년 조시는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력서를 냈다.

밀번 보고서는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 보건부 장관을 지낸 앨런 밀번이 영국 정부의 의뢰로 청년고용 위기를 진단한 결과물이다.

영국의 청년고용은 왜 이렇게 심각한 위기 상태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청년고용의 절반은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보건사회복지업의 세 업종에 집중된다.

영국의 청년고용 위기를 한국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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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이 독립연구자
▲ 안진이 독립연구자

어느 날 밤, 23세 영국 청년 조시는 6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력서를 냈다. 지난 2년간 수백 개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6개월에 한 번 정도만 답장을 받거나 면접 기회를 얻었다. 면접까지 가더라도 마지막 단계에서 매번 떨어졌다. 구직만 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나중에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현재 영국에서는 16~24세 청년 약 100만명이 니트(NEET, 일하지 않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도 않는 상태)로 집계된다. 100만명 중 40만명 정도가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60만명은 건강 등의 이유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다. 니트 청년 10명 중 6명은 한 번도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적절한 개입이 없다면 지금의 청년 세대가 통째로 '잃어버린 세대'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지난 5월 발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밀번 보고서'에 수록된 내용이다. 밀번 보고서는 토니 블레어 정부 시절 보건부 장관을 지낸 앨런 밀번이 영국 정부의 의뢰로 청년고용 위기를 진단한 결과물이다. 5월 발표된 것은 중간보고서로서 문제 진단에 집중하고 있으며, 최종보고서는 향후 발표될 예정이다.

영국의 청년고용은 왜 이렇게 심각한 위기 상태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청년고용의 절반은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보건사회복지업의 세 업종에 집중된다. 그런데 이 세 업종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온라인 쇼핑이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소매점이 문을 닫았고, 숙박·음식점업은 팬데믹 충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했고, 보건사회복지쪽은 수요가 높지만 일이 힘든 데 비해 임금이 낮다.

청년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도 나빠졌다. 16~24세 청년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할 가능성이 다른 연령대보다 월등히 높다. 취업한 청년 10명 중 1명은 고용주의 수요에 따라 노동시간이 좌우되는 '0시간 계약' 형태로 일한다. 기그(Gig) 경제와 플랫폼노동이라는 새로운 영역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때그때 일감을 배정받는 플랫폼노동은 청년에게 일시적 수입원은 될지 몰라도 훈련이나 승진, 고용주와의 지속적인 연결을 제공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지역 간 격차도 작용한다. 청년 니트 비율이 높은 지자체 10곳 중 8곳이 중부와 북부에 위치한다. 탈공업화의 여파에서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지역들이다. 게다가 영국 경제는 런던의 금융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서, 사실상 런던과 나머지 지역이라는 2개의 경제권으로 분리돼 있다. 대학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찾아 런던으로 몰려드는 두뇌 유출이 심화할수록 지역 도시의 기술 기반은 더 약해진다.

런던 같은 대도시의 대졸 청년들에게도 현실은 냉혹하다. 대졸자 채용 규모는 전년 대비 8% 감소했고, 갈 곳을 잃은 졸업생들은 과거 비대졸자들이 가던 자리에까지 지원하기 시작했다. 밀번 보고서에서 한 청년은 "제가 이제 겨우 18살인데,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경력을 갖기를 바라는 건가요?"라고 항의했다. 청년의 잠재력을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국 사회는 실패하고 있다.

더 충격적인 수치는 영국의 청년 노숙자 통계에서 발견된다. 자선단체들의 추산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영국 전역에서 12만명 넘는 청년이 노숙 상태이거나 노숙 위기 상태였다. 친구나 친척의 집 소파에서 자는 청년이나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 머무는 청년처럼,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이른바 '숨은 노숙' 청년도 존재한다. 그런데 청년들의 노숙 문제도 본질적으로는 노동 기회 부족에서 비롯된다.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영국의 비싼 민간 임대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주거 불안정에 시달리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조시도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주거시설에서 살고 있다.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돼야 할 청년들에게 보금자리조차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영국 사회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

영국의 청년고용 위기를 한국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니트와 '쉬었음'은 개념이 다르므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한국의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최신 통계로 42만6천명이다. 정부는 일시적 지원이나 교육·훈련, 인턴 기회 제공 같은 정책을 반복해서 꺼내지만, 청년 고용지표는 좋아질 기미가 없다. 한국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청년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한국 청년들은 아직 영국 청년들보다 건강하고, 노숙 문제도 덜 심각하다. 더 늦기 전에 실질적인 위기 해소 방안을 고민하자.

독립연구자(livewith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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