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한 달에 한 번 섬에도 주치의가 생긴다···‘법 밖의 의료기관’ 병원선을 아시나요?

남쪽 끝 작은 섬마을에도 한 달에 한 번 주치의가 생긴다. 꼬박 반나절이 걸려야 다녀올 수 있는 육지 병원 대신, 의사와 진료실을 실은 배가 바다를 건너온다. 지난달 23일 경남 남해군 상주면 노도 마을 앞바다에도 한 달 만에 ‘병원선’(경남511호)이 닻을 내렸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에는 병원선 방문 소식이 울려 퍼졌다. “아아 반장입니다. 오후 2시에 병원선 들어온다 카네요. 신분증 챙겨서 늦지 않게들 나오이소.” 전체 주민 20명 가운데 15명이 65세 이상인 노도 마을에는 방금 들은 소식도 깜빡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행여나 진료 기회를 놓칠까, 이날 마을 반장은 같은 당부를 거듭 방송했다.

오후 2시 마을 선착장에 작은 배 한 척이 닿았다. 162t급인 병원선은 수심이 얕고 비좁은 노도 마을 선착장에 접안할 수 없어 의료진이 보조정을 타고 섬으로 들어왔다. 약이 든 대형 캐리어 두 개와 혈압계·혈당측정기 등 진료 장비가 담긴 가방을 나눠 든 이들은 그늘 한 점 없는 오르막길을 걸어 진료실이 차려질 노도 문화관으로 향했다. 이날 남해군 체감온도는 35도가 넘었다.
의료진이 들고 온 가방을 열자 문화관은 곧바로 병원이 됐다. 주민들은 차례로 혈압과 혈당을 재고, 감기와 피부질환, 오래된 통증을 상담하고 필요한 약을 받았다. “덥은데 온다꼬 욕봤습니다.” 약을 손에 든 한 어르신이 땀에 젖은 의료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진료가 끝나자 병원은 다시 평범한 문화관으로 돌아갔다.

이날 노도 마을을 찾은 배처럼 섬마을을 도는 병원선은 전국에 다섯 척이 있다. 경남과 충남, 인천이 한 척씩, 전남이 두 척을 운영한다. 진료 대상은 257개 섬, 주민 3만4066명이다. 반세기 넘게 운영되며 섬 주민들에겐 이미 대체 불가능한 ‘병원’이지만 섬 밖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르는 배, 병원선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섬에 닿기 전, 병원선 진료는 시작된다
지난달 24일 오전 9시 경남511호가 통영항을 빠져나와 통영시 사량면 상도 내지마을로 항해를 시작했다. “멀미약 미리 드셨어요? 큰 바다로 나가면 우리 직원들도 멀미해요.” 병원선 운영을 책임지는 박경숙 사무관이 웃으며 말했다.
이날 진료팀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박 사무관과 간호 업무를 보는 김은년·고은미 주무관, 내과 고원규·한의과 이휘운 공중보건의사가 배에 올랐다.

병원선 안은 그 자체로 작은 종합병원이었다. 좁은 복도를 따라 대기실과 접수대, 내과·한의과·치과 등 진료공간이 이어졌다. 복도 한편에는‘환자 본인이 방문하지 않으시면 약이 처방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인 ‘약국’도 있었다. 알약을 칸칸이 채워 넣으면 복용법이 인쇄된 약봉지에 한 포씩 나눠 담아주는 자동조제포장기까지 갖춰져 있었다.
병원선은 진료부터 처방, 조제가 한자리에서 가능했다. 의약분업 원칙상 이는 불가능하지만 약국이 없는 지역에서는 의사나 치과의사가 약을 조제할 수 있도록 예외가 적용된다. 병원선이 방문하는 섬 대부분이 약국이 없다.

배가 섬에 닿기 전, 이미 진료는 시작됐다. 이날 경남511호가 찾아갈 곳은 사량면 상도의 내지·답포마을과 하도의 먹방마을 등 세 곳이었다. 진료대기실에 놓인 긴 탁자 위에는 세 마을 주민 명단이 펼쳐졌다. 의료진은 마을별 진료 대상과 지난 처방을 훑고, 섬에 들고 갈 약과 장비를 챙겼다.
경남511호가 찾는 51개 섬마을 가운데 본선이 선착장에 닿을 수 있는 곳은 단 두 곳뿐이다. 그런데 전체 진료 대상 주민 2379명 가운데 1333명(56%)이 65세 이상이다. 고령의 주민들을 보조정에 태워 병원선으로 데려오는 것이 쉽지 않다 보니 주로 의료진이 약과 장비를 들고 마을로 들어가 임시 진료실을 차린다. 준비물을 빠뜨리면 보조정을 타고 본선까지 다시 와야 한다. 그러면 일정이 지연될 수 있어 배에서 내리기 전 주민별 약과 진찰 장비 확인이 필수다.

이러한 준비가 매달 반복되면서 의료진은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게 됐다. 누가 무슨 약을 먹는지, 지난달 혈압·혈당 수치는 어땠는지, 어떤 약을 삼키기 어려워하는지까지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 그렇게 경남 일대 섬마을 주민 2379명에게 매달 찾아오는 ‘주치의’가 생겼다.
‘얼굴’을 알아보고, ‘토마토 연고’를 알아듣고

오전 10시 배가 내지마을 앞바다에 도착했다. 의료팀은 진료장비와 약을 보조정으로 옮겨 싣고 섬으로 건너갔다. 내지마을 경로당에는 이미 병원선 방문 소식을 듣고 모인 주민들로 가득했다.
경로당 방 두 칸이 각각 내과와 한의과 진료실로 바뀌었다. 가운데 주방 겸 거실은 접수처와 대기실이 됐다. 접수대에 앉은 김 주무관은 이름을 묻기도 전에 주민들 얼굴을 알아보고 접수를 마쳤다. “아버지 오셨길래 접수해놨어요. 한의과도 보고 가실 거죠”라는 인사에 “하모, 침 한 대 맞고 갈라꼬”라는 답이 돌아왔다.
같은 시각 내과 진료실에서는 고 공보의가 ‘약 찾기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와, 그 토마토 연고 있잖아. 그거 하나 받아갈라꼬” “토마토 연고요? 어머니, 그게 뭘까요?” 바르는 약인지 넣는 약인지, 어디가 불편한지를 되물은 끝에 마침내 답을 찾았다. 실제로 토마토처럼 붉은색 포장 상자에 싸인 약이었다.
옆방 한의과에서는 부산 출신 이 공보의가 사투리로 어르신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어무이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라는 물음에 어르신이 무릎과 허리를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면서 “내는 딱 안 죽을 만치 일하는 갑다”라는 농담에 방 안에 웃음이 터졌다.
병원선이 맡은 진료는 이처럼 주민의 일상적인 병을 살피고,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데서 시작한다. 감기와 피부질환, 오래된 통증을 진료하고 혈압과 혈당을 재며 고혈압·당뇨약이 제대로 듣는지 확인한다. 육지의 동네 의원이 하는 1차의료를 맡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주기적인 확인이 때로는 더 큰 병을 잡아내기도 한다. 최근 사량면 덕동마을에서는 한 주민의 혈압 이상을 발견해 육지 병원으로 연계한 일이 있었다. 병원선이 방문하지 않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위험 신호였다. 김 주무관은 “그 뒤로 병원선이 들어갈 때마다 어르신이 ‘느그 때매 내가 살았다’고 하신다”며 웃었다.

한바탕 왁자지껄한 진료가 끝나고 마지막 주민이 진료실을 나서자 병원도 다시 경로당으로 돌아갔다.병원선이 내지마을을 다시 찾는 건 한 달 뒤다. 그 사이 약이 떨어지거나 몸이 아프면, 섬마을 주민들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폭염을 뚫고 육지 병원을 찾거나 아픔을 참거나.
섬마을에서 아프면
내지마을에서 육지로 나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고성 용암포행으로, 배로 20분이면 닿는다. 다른 하나는 통영행인데 마을버스로 사량도 금평항까지 간 뒤 배를 타고 통영 가오치항으로 건너가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용암포행을 택해도 병원에 바로 닿는 것은 아니다. 항구에서 병원이 모여 있는 고성읍까지는 25㎞, 차로 33분 거리다. 오히려 반대편 사천 삼천포까지가 12㎞, 차로 21분으로 더 가깝다. 주민들이 육지에 볼일이 있으면 주로 삼천포로 가는 이유다.

천둘자씨가 다니는 병원도 삼천포에 있다. 오전 8시 반 배를 타고 고성 용암포로 가서 택시로 삼천포까지 이동한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왔다 갔다 하면 택시비로만 한 3만원 드는 기라. 교통비 지원? 그런 거 없다.”
그런데 돈보다 빠듯한 건 시간이다. 천씨는 병원 진료와 약국 방문, 장까지 보고 오후 1시 내지로 출발하는 배를 탄다. 한 번 놓치면 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한 시간씩 밀린다. 서둘러도 최소 반나절은 통째로 사라지는 일정이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지역 섬마을이라고 다르지 않다. 남해군 노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노도 주민들이 병원에 가기 위해선 가까운 벽련항으로 향하는 도선을 타야 한다. 배는 하루 딱 여섯 차례 바다를 건넌다. 선착장에 내린다고 끝이 아니다. 택시를 불러 남해 시내까지 17㎞, 편도 20분 거리를 달려야 한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시간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대기 줄이 길면 섬에서 왔다고 사정을 말하고 순서를 양보받기도 한다. 아파도 링거 한 병 맞는 일은 포기하는 게 다반사다. 진료도, 약을 사는 일도, 밥을 먹는 일도 모두 돌아가는 배 시간표에 맞춰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섬 주민들에게 병원선은 한 달에 한 번 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다. 답포마을에서 만난 김석세씨는 “이런 날씨에 배 타고 육지 병원 갈라쿠먼 힘들지. 근데 병원선이 오면 약도 주고 얼마나 고맙노”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김씨는 병원선이 더 자주 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는 “병원선이 다른 섬도 가고 할 거 아이가. 마이 오믄 우리야 좋아도 저 사람들(의료진) 힘들어서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틀 동안 만난 섬마을 주민들은 병원선을 ‘생명선’ ‘우리 병원’이라고 부르며 아꼈다. 그러나 한평생 병원선을 이용해 온 이들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현행 의료법 체계 어디를 뒤져봐도 병원선은 ‘의료기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법에 자리가 없자, 예외가 쌓였다
병원선에는 주소가 없다. 지난달 23일에는 노도 문화관이, 하루 뒤에는 내지마을 경로당이 병원이었다. 의료기관을 열려면 소재지를 정해 신고하고 그 자리에 시설 기준을 갖춰야 한다. 매달 자리를 옮기는 배는 어느 쪽도 충족하지 못한다. 지역보건법이 열거한 지역보건의료기관은 보건소와 보건의료원, 보건지소, 건강생활지원센터 넷이다. 그 목록에도 병원선은 없다.
그렇다고 배 위 진료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의료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해 요청하면 의료기관 밖에서도 진료할 수 있도록 예외를 뒀다. 병원선 진료는 배 안 진료실에서 하든 마을 회관에서 하든 모두 이 예외에 기댄다. 배를 띄우는 근거도 있다. 보건복지부 훈령 ‘병원선 및 쾌속후송선 관리운영 규정’과 각 지자체 조례다. 진료할 근거도 배를 띄울 근거도 있는데, 그 어디에도 병원선이 무엇인지가 적혀 있지 않다.
배가 법 밖에 놓인 것은 역사가 짧아서도 아니다. 경남의 첫 병원선은 1973년 ‘섬돌보기호’라는 이름으로 출항했다. 1978년에는 마산항에서 120t급 병원선 5척이 취항해 의사가 없는 전국 640여개 섬을 순회한 기록도 있다.

법적 지위가 없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역보건법은 국가와 시·도가 지역보건의료기관 운영비를 절반까지 보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병원선은 그 목록에 없어 이 지원을 받지 못한다. 배를 띄우는 돈도, 배에 태울 사람도 전부 지자체 형편에 달렸다.
또 진료 기록은 어떻게 남길지, 다른 기관 기록과 어떻게 연결할지, 새로운 보건의료 제도가 생기면 병원선이 포함되는지 등은 사안마다 별도 판단이 필요하다.
그 결과, 병원선 운영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외가 등장했다. 2024년 사량면 보건지소 인근에 약국이 문을 열자 사량면이 의약분업 예외지역에서 빠졌다. 병원선이 약을 조제할 수 없게 되며 사량면 일대 운항 중단을 결정하자 주민 반발이 이어졌다. 이에 복지부는 도서지역은 별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고, 사량면이 다시 의약분업 예외지역으로 지정됐다.
이러한 일 처리는 최근에도 발생했다. 병원선은 지역보건의료기관이 아니어서 보건소, 보건지소들이 쓰는 진료정보시스템(PHIS)을 사용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병원선은 주민이 다른 의료기관에서 받은 약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없어 중복 처방 위험을 안고 있다. 경남도는 병원선에도 PHIS를 쓰게 해달라고 복지부에 거듭 건의했지만 최근까지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병원선이 지역보건법상 지역보건의료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막혔던 문이 열렸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복지부는 적극행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병원선의 PHIS 사용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그 방식이 또 예외다. 병원선이 오늘 A군 섬에 가면 그날은 A군 보건지소로, B군 섬에 가면 그날은 B군 보건지소로 지위를 인정해 주는 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선이 의료기관이라는 명시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적극행정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지에선 대책, 바다에선 사업
정부가 예외를 덧대는 동안 국회는 병원선의 법적 지위를 확정할 기회를 흘려보냈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병원선을 지역보건의료기관과 건강보험 요양기관, 국가건강검진기관에 넣는 이른바 ‘병원선 3법’이 발의됐지만 심의를 마치지 못한 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지난 6월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이 지역보건법 개정안을, 지난달 16일에는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이 다시 ‘병원선 3법’을 발의했지만처리될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전국 병원선 5척은 지자체 집계상 실인원 3만8853명을 진료했다. 경향신문이 병원선을 운영하는 경남·충남·전남·인천 4개 시·도에 각각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선 5척의 전체 운영비는 45억8551만원이었다. 이중 60.5%인 27억7372만원이 유류비였다. 병원선은 어선이나 여객선과 달리 면세유 지원도 받지 못했다. 운영비는 전액 지자체가 감당했다. 운영에 관한 국비 지원은 네 곳 모두 한 푼도 없었다.

지자체들이 정부와 국회에 개선을 요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경남도는 지난해 9차례, 올해 2차례에 걸쳐 법적 근거 마련과 국비 지원, 면세유 적용 등을 건의했다. 전남도는 2024년 9월, 11월 한덕수 국무총리가 방문했을 때, 충남도는 지난 5월 12일 복지부 간담회에서 같은 요구를 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정작 복지부는 올해 공보의를 ‘지역 일차의료의 최후 보루’라 부르며, 공보의가 배치되지 않은 200개 보건지소를 보건소 공보의가 주기적으로 도는 ‘순회진료’를 의료공백 대책으로 내놨다. 병원선도 그 공보의를 태우고 섬을 돈다. 같은 순회진료인데 육지에선 국가 ‘대책’이고, 바다에선 지자체 ‘사업’이다.
박 사무관은 ‘병원 아닌 병원선’의 현실을 이렇게 설명했다. “병원선을 띄우는 곳이 경남과 전남, 충남, 인천 네 곳뿐이다 보니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섬 주민들에게는 생명선이라 불릴 만큼 지역 의료를 떠받치고 있지만, 지금 상태라면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남해, 통영 |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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